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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J(Jobless,실직)의 공포로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 사이에서는 이미 감원 바람이 한창이다.

17일 미국의 거대은행 그룹인 씨티그룹이 내년 초 5만2천명의 직원을 감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같은 날 홍콩 최대 은행인 HSBC는 450명의 홍콩 직원들을 전격 해고했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감원의 찬바람은 여의도 증권가에서 시작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이제 '연봉 삭감'은 특별한 뉴스도 아니다. 요즘 증권맨들의 최대 관심은 '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기불황 속에서 어떻게하면 자리를 지켜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이다.

가장 먼저 칼을 빼 든 곳은 내년 1월 하나IB증권과 합병을 앞두고 있는 하나대투증권이다. 하나대투증권은 18일까지 직원 150여명으로부터 희망퇴직신청서를 받았다. 신청자들은 대부분 나이 50이 넘은 부장급 중견간부들이다.

이들에게는 '20개월치 급여 일괄지급과 퇴직후 15개월동안 투자상담사로 일할 수 있다'는 좋은 조건이 제시됐지만 사내 분위기는 크게 술렁거렸다. 퇴직처리는 이달 말에 일괄처리될 예정이어서 부하 직원들과의 어색한 동거도 계속되고 있다.

희망퇴직을 신청한 A부장(50)은 "당장의 먹고 살 문제보다는 오랜기간 몸 담아온 증권사를 갑자기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 자체가 심적으로 큰 충격"이라며 "앞으로 집사람과 대학에 다니는 두 딸에게 비친 내 자신의 모습이 어떨지 솔직히 두렵다"고 속내를 털어났다.

미래에셋증권 직원들도 요즘 좌불안석이다. 회사가 19일 수익성이 낮은 지점 20개를 폐쇄하고 이 사실을 신문공고를 통해 고객들에게 알리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대내외적으로 '감원'대신 지점 직원들을 타부서로 '전환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직원들은 쉽사리 믿지 않는 분위기다. 실제로 금융 시장이 극도로 위축되어 있는 상황에서 지점을 20개나 폐쇄하면서 인력 감축이 전혀 없다는 것은 언뜻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계약직이 많은 창구 영업직원이나 업무직원, 그리고 전산직원들은 혹시 구조조정의 1차 대상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이규호 전국증권산업노조 위원장은 "아직까지 증권사들의 인력 구조조정 바람은 거세지 않지만 시장여건상 내년 1월부터는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그럴 경우에는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원들이 우선적으로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은행권도 사정은 마찬가지. 한국 씨티은행은 5만 2천명이라는 본사의 감원 계획에 따라 다음 달까지 희망퇴직을 받아 인력 감축에 나선다. 현재 구체적인 감축 규모와 조건을 놓고 노사가 협의 중이다. SC제일은행은 이미 지난 달 희망퇴직을 통해 193명을 줄인 바 있다.

시중은행들은 본점 조직을 축소하고 지점을 통폐합하는 등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간 상황이다. 신한은행이 지난달부터 100여 개 지점의 통폐합에 착수했고, 국민은행은 지점 증설을 중단했다.

모 은행 관계자는 “아직까지 희망퇴직 얘기 나오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은행들이 연말을 고비로 어떤 형태로든 인력 구조 조정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 은행원은 “앞서 나간 선배들 가운데 잘된 사람이 10명에 한명도 안 된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오지 말고 버텨야 한다는 것이 선배들의 충고”라며 직원들의 정서를 전했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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