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제일고 탁구선수들을 조련하고 있는 박창익 코치.
박창익(41)은 제주탁구 부활의 선발주자다. 86 아시안게임에서 남자탁구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 복식 동메달의 주인공인 그는 2002년 3월 고향에 내려와 지도자로 변신, 제일중과 제주제일고, 산업정보대에서 유망주 발굴과 육성에 힘쓰고 있다.

특히 최근 막을 내린 제84회 전국체전에서 남고부 개인전 은메달·단체전 동메달, 여고부 단체전 동메달을 수확함으로써 보람이 컸다. 고등부에서 메달을 딴 것은 체전 참가 6년만의 일이었다. 특히 은메달을 딴 강동훈(재주제일고 1)은 기량이 일취월장, 박창익 이후 대가 끊겨버린 국가대표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박창익은 80년대 한국 탁구의 간판 스타. 1984년 춘계 실업탁구연맹전에서 단체전과 개인단식·개인복식에서 우승해 3관왕에 올랐으며, 1987년, 1988년 1989년 전국종합탁구선수권대회에서 개인복식·혼합복식 우승을 일궈 3연패를 했다.

여기에다 전국 종별탁구선수권대회 개인단식 우승(1986년), MBC 전국탁구최강전에서 단체전 3연패(1987, 1988, 1989년), 추계실업탁구연맹전(1987년) 단체전·개인단식·개인복식 3관왕에 오르는 등 실업무대를 휩쓸었다.

제주시 용담동 출신으로 제서교 4학년 때 라켓을 잡은 박창익은 제주중을 거쳐 제주제일고에 진학한다. 중·고교에서 기량이 검증된 그는 다시 탁구명문 신진공고에 스카우트됐다. 특히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위력적인 스매싱과 공격적인 게임운영이 돋보이면서 국가대표 유망주로 도약하게 된다.

박창익은 81년 신진공고를 졸업한 후 대우중공업 탁구단에 입단, 전국 종합탁구선수권 개인단식에서 2위를 차지한다. 그는 83년 대우중공업을 나와 경기대로 진학했고, 84년 5월 국군체육부대 상무에 입대했다.

특히 상무 탁구단 시절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안게임에 김완, 안재형, 박지현, 유남규와 함께 참가해 사상처음으로 일본과 중국을 격파하면서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고, 안재형과 짝을 이룬 개인복식에서 동메달을 땄다.

박창익은 87년 군 전역 후 기존 실업팀인 제일합섬과 창단을 앞둔 대우 입단을 놓고 스카우트 파문에 휩쓸린다. 고심 끝에 결국 제일합섬과 인연을 맺은 그는 추계실업연맹전에서 단체전과 개인단식·개인복식 3관왕을 차지, 건재함을 과시한다.

89년 2월에는 경기대 관광경영과를 졸업, 군 입대와 실업팀 입단 때문에 중단했던 학업을 마무리했다.

박창익은 92년 호텔 신라에 입사, 직장선수로 활동하면서 96년 6월 제36회 전국남녀종별선수권대회 개인 단식 우승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이후 서울시탁구협회 이사를 거쳐 현재 제주도체육회에서 순회코치를 맡고 있다.

박창익은 강동훈과 고병승(제주제일중)을 통해 제주탁구의 부활 가능성을 확신한다. 박 코치로부터 집중 조련을 받고 있는 강동훈은 1학년임에도 고교 탁구의 주목받는 신인으로 성장했다. 회전 많은 커트가 최근들어 더욱 낮게 깔리며 위력을 발휘한 데다 적극적인 공격전환 기량도 무르익은 상태. 고병승도 올해 제41회 한국마사회장배 학생 종별 탁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 박 코치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박 코치의 꾸준한 뒷받침에 힘입어 백핸드 리시브와 스매싱, 자율훈련을 통해 체력보강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박 코치의 꿈은 제주탁구의 부활과 함께 고향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돼 아시아무대 뿐만 아니라 올림픽 무대에서 크게 활약하는 것이다.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크고 있기 때문에 그는 그 가능성을 열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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