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신축제주항쟁(속칭 이재수의 난) 102주년기념, 역사 미술전이 열렸다.이번 전시회는 30일까지 계속된다.<김영학 기자>

20세기 초입에 빚어진 1901년 신축년 제주항쟁(일명' 이재수의 난).

발생한지 백 년이 된 사건을 마무리하지 못한 후손으로서 심한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던 제주토민들은 2년전 뜻 있는 제주지역의 역사가들과 지인들이 모여 작지만 의미있는 100주년 기념식을 조촐히 치렀다.

당시 '진실과 화해'라는 이름으로 꾸린 학술.문화사업을 통해 지난 100년전의 역사적 진실을 재발견하고 지난한 역사 청산을 위한 화해의 길을 모색했다.

그리고 두번째 열린 올해 102주년 신축제주항쟁 기념 사업.

100년이 넘도록 갈등과 반목의 골을 메우지 못햇던 제주도민과 천주교인인들은 과거사에 대한 공식 사과를 통해 '제주공동체의 화합과 상생의 길로 나아가자'고 천명했다.

제국주의 열강의 힘을 등에 엎고 변방의 섬을 자극했던 천주교인들은 100년만에 처음으로 제주도민들에게 공식 사과함으로써 근현대사에 있어 중요한 역사의 전환점을 남겼다는 평가다.

▲  '100년전 역사의 기억과 재현'

▲ 8일 제주시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신축제주항쟁(속칭 이재수의 난) 102주년기념 학술문화예술제에서 김상철 (사)제주민예총 지회장이 이재수를 소재로한 시를 낭송하고 있다.

8일 오후 4시 제주시 교육문화회관 강당에서는 신축항쟁 102주년 기념식이 1901년 제주항쟁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김영훈 1901년 제주항쟁기념사업회 공동대표는  기념사를 통해 "지난 7일 기념사업회와 천주교 제주교구 간에 '화해와 상생의 미래선언'을 채택, 반목과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며 "이를 토대로 제주가 변방의식에서 벗어나 당당한 역사의 주역으로 미래를 선도해 가자"고 말했다.

이어 민중노래꾼 최상돈씨의 자작곡 '이제수야!', 무용가 고서영씨의 '위혼춤', 제주민예총 김상철 지회장의 '이제수'를 소재로한 시 낭송 등으로 외세와 봉건세력에 맞서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한 제주민의 '아름다운 저항'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이어 영상제작가 김동만씨(미디어텍 대표)가 직접 제작한 다큐멘터리 '바람의 전설(부제:1901년 제주항쟁. 30분)을 상영, 100년간 가려져왔던 항쟁의 역사를 재현해냈다.

▲  역사와 예술은 어떻게 만나는가

▲ 8일 제주시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신축제주항쟁(속칭 이재수의 난) 102주년기념학술 문화예술제에서 최상돈(민중가수)이 직접 만든 노래 '이재수야!'를 부르고 있다.<김영학 기자>
신축년 제주항쟁 기념 역사.미술전이 8일 오후 5시 30분 국립제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식을 갖고 오는 30일까지 장기 전시에 돌입했다.

(사)민족미술인협회 탐라미술인협회(회장 강요배)가 공동창작 작업을 통해 마련한 이날 전시는 별도의 작가의 이름없어 '항쟁'이라는 하나의 테마를 통해 짜임새 있는 기획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번 전시가 주는 역사성과 사실성에 주목한 이들은 단지 개개인의 작품성에 치우칠 수 있는 역사적 소재를 '사건배경'에서 부터 '전개과정' '역사적 해석'까지 시도, 관객과의 호흡을 끌어냈다.

탐미협 회원들은 이번 전시를 위해 대정 일대 답사를 다녀오고 영화 '이재수 난'을 함께 감상하기도 했다.

강요배 회장은 "예술을 통한 역사의 재현 방식은 각각 개개인의 몫이었지만 구체적 사료를 바탕으로 한 일련의 주제의식은 모두가 공동작업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모아진 것"이라며 "현재의 관점에서 본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저항과 항쟁'의 시각에서 재조명했다"고 말했다.

<1부-사건 배경>

제주지역에서 자주적 민중봉기가 일러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원인을 보여준다.

고지도 작품인'공물잡세진상도'는 조선말기 탐라지도에 나타난 호포세, 강전세, 목장세, 염세 , 전세, 진상귤, 진상전복 등의 공물 지도를 통해 생존기반을 위협하는 봉건적 수탈과정을 형상화했다.

동학의 잔류세력인 남학당에 의해 방성칠란에 이르는 과정 또한 나레이션 작품으로 꼼꼼히 묘사됐다.
 
<2부-전개 과정>

세금징수의 폐단(세폐.稅弊)과 천주교회의 폐단(교폐)에 저항하기 위한 상무사의 결성, 하지만 교회측의 한림민회소 습격으로 잡인 '명월-붙잡힌 사람들','대정-죽음'에 이른 함축적인 형상화는 죽음에서 공동체을 지키려는 민초들의 저항 의식으로 번져나갔다.
 
돼지의 피를 입술에 바르고 한날 한시에 죽기를 맹세한 '삽혈위맹(삽血爲盟)'은 당시 '삶을 지키려는 본능적 저항'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옛날 이형상 목사가 (神)당나무를 벨 적에 붉은 글씨로 써붙여 귀신을 제압했다는 '관령(官令)'보다 천배 만배 위력이 세다는 '십자가'의 이면을 풀어놓은 대목도 흥미롭다.

민군이 제주성을 습격하는 대형작품 '전투'는 제주성이 함락된 후 민군이 교인들을 관덕정 앞마당에 모아놓고 처참히 살해하는 '참극'으로 빚어진다.

<3부-역사적 해석>

결국 천주교인과의 무력충돌로 악회된 민란은 500-600여명의 천주교인이 사망하고 프랑스와의 국제적인 외교사안으로까지 비화된 역사적 사건으로 페이지에 기록된다.

당시 제주도민들은 손해배상명목으로 당시 돈 6315원을 프랑스 정부에 지불했으며 , 프랑스 정부는 그 댓가로 지금 천주교 공동묘지가 들어선 제주시 봉개동 '황사평' 일대의 토지를 매입했다.

역사적 해석의 막장에는 이재수의 누이동생인 이순옥(李順玉) 여사가 오빠 이재수를 신원하기 위해 1928년 2.26일 당시 조선총독부에 오빠의 억울함을 호소한 장문의 진정서가 내걸려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역사를 함부로 단정짓지는 않는다.

프랑스 국기와 군대 문양, 성경책을 하나의 작품으로 형상화한 '진리의 제단'은 당시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복음의 전파'가 얼만큼 '제주의 문화'와 만났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한 성경 귀절을 통해 일방적인 '문화우월주의'가 복음과 선교의 장에 숨어있지는 않은가, 역사를 통해 되묻고 있다.

'나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에게 갈수 없다'(요한복음 14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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