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국 출신입니까?"

2월 1일 오후 두시 강연 시작과 동시에 김 예곤<金 禮坤.78>씨가 담당자에게 물었다.

<타카라쓰카(宝塚>시 산업문화부> 주최로 열린 인권문제연수회 강사로서 김 예곤씨가 당시청 연단에서 한 말이었다.
 
안내 자료에 김 예곤 강사는 한국 출신으로 기재됐었고 사회자로부터도 그러한 소개가 있었다.
 
"아닙니다." 약간 망설이다가 산업문화부장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타카라쓰카에서 태어나서 타카라쓰카시에 그 의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국적이 한국이고 본적지는 부산입니다."
 
"출신"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출생의 동의어로서  태어난 곳을 뜻하며 가정이나 학교 등 지역적 신분 관계를 말할 때도 사용한다.
 
김 예곤 씨가 "출신"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물었던 것은 자신이 타카라쓰카에서 태어난 재일한국인 2세인 것을 방청객들에게 재확인 시킨 후 강연을 시작하겠다는 의지가 역력했다. 
 
70대 후반의 연륜 속의 동포 2세는 흔하지 않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 가계<家系>, 즉 김 예곤 씨 가족의 재일 역사가 오래다는 의미이다.
 
재일 1세의 강연도 좋지만 70대의 2세로서 강연은 그 이상의 무게를 갖고 있다.
 
김 예곤 씨의 첫 마디의 이 질문은 신선한 긴장감을 장내에 감돌게 해서 좋았다.
 
강연 시간 50분 속에 김 예곤 씨는 1926년 경에 타카라쓰카에 정착하게 된 부친 이야기로부터 채석장과 레미콘 회사를 경영하는 과정에서 브라질인들과의 만남들을 들려주었다.
 
일계 브라질인들이라고 하지만 일상생활이나 문화가 전혀 다른 일본에서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20여년 전 일본인 기업들도 그들을 고용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해서 꺼려하고 있었지만 김 예곤 씨는 자신이 경영하는 <우미야마:海山광산주식회사 >에서 40여명을 고용했다.
 
일계 브라질인들이 타카라쓰카에서 살면서 겪는 고통을 김 예곤 씨는 회사의 고용주 관계를 떠나 생활환경부터 그들에게 맞게 하고 일본의 일상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뒷받침했다.
 
주택, 언어, 자녀의 교육 문제 등 모든 것을 회사가 전면적으로 밀어주면서 타카라쓰카시의 사회문제로 부각시키기 위해 <타카라쓰카시 외국인시민문화교류협회>를 발족 시켰다.
 
이 강연에서는 언급이 없었지만 당시 다른 강연회에서는 그들을 대했을 때 지금까지 재일동포들이 받아왔던 차별이 오버랩되고 그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것이 일본의 국제화이고 이것은 일본 국내에 있는 외국인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해서 장내를 숙연케 했다.

인권의 본질적인 문제를 추상적이고 미사여구로서 언어의 나열로 시작되고 끝난 강연이 아니었다.
 
직접 겪고 해결책을 강구하면서 그들과 일심동체가 되어서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마련해준 경험담의 보고였다.
 
바로 이것이 인권 문제의 핵심이다.
 
어디에 살던지 차별 없는 인간 대우를 받으면서 공생,공영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강연은 상기 협회에서 기관지 <지구인. 타카라쓰카> 발행과 일본인이 쓴 책이지만 적나라하게 파헤친 이조근대사 <이조멸망> 읽기 운동 등의 설명과 코베 대지진<한신대진재> 때 크게 기여한 우미야마광산이 허물어진 건축물들을 불철주야로 제거한 이야기와 동포들의 공헌한 예 등으로 50분이 모자랐다.
 
이 외에도 민단과 총련 활동, 3.8선 분단 원인 등의 이야기도 있었다.
 
이날 강연은 타카라쓰카시 직원에 대한 연수회여서 40여명이 참석했지만 필자도 텐리(天理)대학에서 인권 문제를 강연하는 카와세 슌지<川瀨 俊治. 63> 씨와 같이 참석했다.
 
강연을 마치고 5반으로 나눠서 참석한 사람 모두 감상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었다.
 
그 후에 각 반 대표가 앞에 나와서 반에서 나온 의견들을 종합적으로 보고하고 마지막에는 그 보고를 듣고 총괄 평이 있었고 강사의 평이 있었다.
 
이 기획에 대해서 카와세 씨가 전체 총괄에서 말했는데 다른 강연회는 강연이 끝나면 감상과 질문도 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참 좋은 진행이라는 평을 했다.
 
필자도 처음 경험했는데 동감이었다.
 
필자는  반에서 강연에 대한 감상을 말할 때 <이문화:異文化>라는 단어보다 <다문화:多文化> 라는 단어의 사용을 제의했다.
 
이문화의 "이:異"가 주는 단어의 의미가 긍정적인 예보다 부정적인 의미로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변, 이취, 이물질, 이질감, 이상, 이의, 이복, 이방인,이심 등의 단어이다.

물론 이채, 이색적 등의 단어는 긍정적이지만 부정적 요소가 압도적이다. 
 
김 예곤 씨의 강연 내용이 참 좋았고 재일동포에 대하여 잘 몰랐었다면서 타카라쓰카시에서는 계속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다고 김 예곤 씨가 알려주었다.
 
타카라쓰카시는 여성만으로 편성된 <타카라쓰카가극단>으로 유명하고 이 가극단은 일본만이 아니고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효고현 타카라쓰카시로서 인구는 금년 1월 1일 현재 약 22만 7천명이고 외국인은 2010년 12월 말 현재 약 3,228명 중에 동포가 약 2,156명이다.
 
김 예곤 씨는 조선대학교를 졸업하여 동대학 총동창회장을 초대로부터 몇 대째까지 역임했고 총련 활동에서는 완전히 손을 끊고 기업인으로서만이 아니고 많은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타카라쓰카시 외국인시민문화교류협회> 상담역 등을 맡고 있으며 필자는 졸저 <이쿠노아리랑> 소설집에 김 예곤 씨를 주인공으로 <타카라쓰카 우미야마> 단편을 수록했다.
 
당협회에서는 매년 강사를 초빙해서 인권과 외국인 문제에 대해서 강연회를 개최하는데 평일에도 불구하고 정원 약 4백명의 홀이 언제나 만원이다.
 
올해도 2월 28일 화요일 오후 두시부터 타카라쓰카시에서 <한글의 탄생>이라는 강연회를 연다.
 
강사는 노마 히데키<野間 秀樹> 씨로서 한국언어학의 전문이며 그 공로로 2005년 한국 정부로부터 문화상과 2010년 마이니치신문에서 아시아,태평양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국제교양대학 객원 교수이다.
 
김 예곤 씨와 토쿄외국어대학에서 같이 교편을 잡은 친분이 있어서 이번 강연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 예곤 씨에 대해서는 이 난 <김길호의 일본 이야기>에 2007년 8월 6일자에 <우미야마 김 예곤 회장>이라는 제목 속에도 썼었다.<제주투데이>


   
     
▶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1973년 병역마치고 도일,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료(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가로 추천 완료,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6년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발간, 2007년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16회 해외한국 문학상 수상, 1996년 일본 중앙일간지 <산케이신문 주최 <한국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소논문 1위 입상. 2003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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