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항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찬반논의가 뜨겁고 제주 도민들의 관심 또한 대단하다.

그러나 정치권을 비롯해 제주도나 제주도의회 모두 '꿀 먹은 벙어리'다.

군사보호구역 지정에 따른 생활권 제약과 경제적인 효과, 국책사업 추진여부를 놓고 해군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지역주민들이 연일 난타전을 벌이고 있는 데도 청와대와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 제1야당 한나라당, 제주도의회 모두 침묵이다.

이 과정에서 속 타는 것은 주민들이다.

김태환 지사는 지난 7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통해 논의중단을 선언했다.

김 지사는 "지금 우리 앞에는 제주특별자치도 실현이라는 중차대한 현안이 있고, 또한 계층구조와 관련해 주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문제가 있다“면서 ”제주특별자치도 추진과 행정계층구조 개편이 마무리될 때까지, 해군본부에서 어떠한 제안이 들어오더라도 화순항 해군기지에 대한 도 차원의 논의는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화순항 해군기지 건설계획은 백지화된 게 아니며 여전히 유효한 해군의 중기 전략이다.

정치권의 침묵이나 도지사의 이 같은 발언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난 2002년 해군기지 주민반대 상황처럼 논쟁의 회오리에 휘말리는 게 부담스럽다는 얘기로도 해석된다.

그리고 해군기지 건설계획은 2002년과 2005년에 이어 다시 2005년 지방선거가 끝난 시점에서 다시 재론될 게 분명하다.

그래서 화가 난다. 왜 이렇게 질질 끌어야 하는가? 왜 이렇게 소모적이어야 하는가?

5·31 지방선거 표심을 의식한 때문인가? 그렇다면 정치권이나 지사 모두 우유부단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묻고 싶다. 2002년 화순항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제주도의 여론조사와 최근 제주발전연구원의 실시한‘화순항 해군기지 건설계획’에 대한 대도민 여론조사 결과는 무엇을 말하는가?

논란의 종지부를 찍고자 함이 아니었던가?

해군이 참 불쌍하다. 해군 계획대로라면 해군기지사업은 화순항 인근 12만평에 8000억원을 들여 2014년까지 전략기동함대기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중장기 사업이다. 대한민국 해군의 미래가 걸린 그야말로 중차대한 사업이다. 더욱이 이미 문민정부 때 결정된 국책사업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과거 정권의 국책사업을 폐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청와대나 집권여당의 지원사격은 없다. 청와대는 말이 없고 국방부 장관은 국책사업이 아니라고 한다.

이 보다 더 불쌍한 것은 지역주민이다. 해군기지 건설계획으로 인해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상황인데도 2002년에 이어 2005년, 그리고 다시 내년에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야 한다. 사는 게 고단하다.

물론 상황이 복잡하면 단순하게 갈 필요도 있다.

해군기지 건설이 매우 민감한 사안이고, 표심을 의식한 정책결정이라고 치자. 해군기지에 관한 한, 도지사의 판단이 옳았다면 지지하는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정치권도 결코 비켜 갈 수 없다. 이 모든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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