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관보 국장.
강관보 제주도 농축산식품국장이 수필가로 등단했다. 

강 국장은 월간 신문예는 9월호 수필부문 신인상에 당선됐다. 당선 작품은 '뒈싸진 바당'과 '벌태시와 초라니' 등 2편이다.

심사위원은 심사평을 통해 "강관보의 작품을 조용히 응시하며 읽고 있노라면 그의 필력(筆力)이 눈에 보이듯 힘차고 걸쭉해 맛깔나게 읽힌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수필에서 해학성은 보증수표처럼 중요한데 재미있게 수필을 쓴다는 것이 화자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모처럼 좋은 작품을 읽고 감동이 큰 만큼 앞으로 좋은 수필로 문단을 빛내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심사진은 "'뒈싸진 바당'은 '뒤집어지는 바다'의 제주 방언으로 태풍으로 뒤집어진 바다는 자연복원 되는데 반해, 개발이라는 이유로 막무가내로 바다를 허무는 안타까움이 잘 나타나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작품 속에 제주도 토속방언을 사용한 글 솜씨가 퍽 인상적"이라며 "제주도만이 갖는 풍경과 풍속이 독특한 토속정서를 발산한다"고 평가했다.

▲ 월간 신문예 9월호.
'벌태시와 초라니'에 대해 심사진은 "가면극의 굿판에 나타나는 인물 벌태시 같은 남정네와 초라니 같은 아낙의 별칭으로 그 속성을 잘 드러낸 글"이라고 설명했다.

심사진은 "곶자왈 동리의 풍속을 여실하게 적어놓아 감동을 주고 있다"고 평한 뒤 "특히 장사 날 뒤풀이로 당초라니와 벌태시의 입씨름은 볼만하게 재미가 있고, 벌태시의 공동묘지에 말뚝박는 얘기는 독자에게 웃음을 준다"고 했다.

강 국장은 당선소감을 통해 "딱딱한 공직의 일상에서 땀땀이 시간을 내어 써두었던 글중에서 두편을 손질해 응모했던 것이 심사에 통과됐다"면서 "내 삶이 수필이고 수필이 내 삶을 말해주는 길에서, 향토의 토속무대는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이며 엄격한 아버지"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제주도청 문학동아리인 섬마루문학회 창립 초대회장을 맡아 글쓰기에 참여하며 문학을 짝사랑하게 됐다"며 "앞으로 수필을 통해 제주인의 삶을 제주의 언어로 진솔하고 따뜻하게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종합 문학지인 월간 신문예는 지난 1980년 창간됐다.<제주투데이>

다음은 당선 수필

◆뒈싸진 바당 (뒤집어진 바다)

“바당 뒈싸져실거여(바다 뒤집어졌을 거야), 엉덕(바닷가 절벽이나 큰 바위) 쪽으로 가보라. 뭔가 막 올라왔을 것이여.

  해마다 몇 번씩 찾아오는 태풍 뒤의 바다 모습이다.

  폭풍우가 쓸어내린 하천 빗물과 화산회토(화산재가 퇴적하여 생긴 흙)가 일시에 밀려들면 연안의 바다색은 온통 누런 색깔로 변한다.

  인근 바다에 고이고 썩었던 백화들을 깨끗이 씻어 내고 바닷속을 화~악 뒤집어 주기 때문에 어쩌면 바닷사람들에겐 오히려 태풍이 반가운 손님일 수 있다.

  한꺼번에 밀려들어 단물에 취한 고기나 감태해초들이 바닷가로 둥둥 떠오른다.

  그래서 그때 그 시절의 아이들은 태풍이 할퀴고 간 상처에는 아랑곳없이 내리비치는 땡볕을 받으며 막 바다로 줄달음을 쳤다.

  초가지붕이 날아가고 밭 돌담들이 허물어지고 온 동네 골목마다바람에 널브러진 온갖 넝쿨 더미로 아수라장이 되지만, 원체 낙천적으로 자란 아이들은 마냥 들떠서 바다로 내달린다.

  아니나 다를까 태풍 뒤에 쓸어내린 고요한 바다 어귀엔 금세 숨을 볼락 거리는 싱싱한  고기들이 둥갈 둥갈 떠올랐다. 문어랑 낙지랑 따치랑 이름 모를 고기와 해초들을 아이들은 공짜로 수입한다.

  바람 타는 섬의 아이들은 바다를 안고 살았다. 그래서 둘만 모이면 바다로 향했다. 한여름 바다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도 않은 아이들이 구릿빛으로 타들어 가도록 물에 뛰어들며 멱감기 하였다.

  그래서 바다는 늘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꿈의 무대요 삶의 이치를 터득하는 무한대의 자연학습장이었다.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지는 광대무변의 정겨운 바다,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아름다운 바다는 그야말로 평화로운 꿈의 고향이었다.

  화산섬을 둘러싸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꼬막 같은 초가지붕 마을, 조상의 혼과 얼이 흠뻑 스미어 배인 포구들은 예로부터 바위틈새를 뚫고 솟아 나오는 샘물 *고다니(고장,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지방)를 따라 설촌하였다.

  돌담에 화산토를 마름질하여 집을 짓고, 밭담을 쌓고, 환해장성(마을을 따라 갯가에 둘러쌓은 성)을 둘렀다. 바다에 연한 집 뒤로는 해풍을 막기 위해 돌담 성을 둘러놓지만, 집채만 한 파도가 밀려올 때엔 지붕 위로 *절 지쳐 오르는(파도가 물체에 부딪혀 오르는) 너울이 한바탕 공중 잽이 치고 마당으로 줄줄 흘러내려서 숨골로 빠져들었다.

  멀리 태평양에서 발원하여 산방산을 치고 밀려오는 절 소리가 마치 하늘이 지휘하는 광상곡처럼 웅장하기만 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산방산 *절 우는 소리(파도가 절벽에 부딪혀 퍼지는 소리)의 크기에 따라 일기의 향방을 감지하였다. 자연이 발하는 기상예보였다.

  갯가사람들은 그렇게 거대한 자연의 힘에 순응하며 바다에 기대어 살아왔다. 거친 바다와 모진 풍파는 섬사람들의 강한 체질과 억척스러운 생활력을 길들여 놓았다.
  그래서 제주의 어머니들은 자연에 순응하는 힘이 유독 강했다. 남자를 먹여 살릴 정도로 강인한 기질과 건강미를 타고났다.

  삼다의 여자는 단순히 남자보다 숫자가 많다는 의미보다는 여자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돌. 바람. 여자의 숨비소리(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며 내뿜는 소리)는 제주를 낳았고 섬 제주는 여자를 키웠다.

  바다의 독살인 *원(밀물 때 몰려든 고기를 잡기 위해 만든 돌담)과 잠녀들의 *불턱(돌담으로 에워싼 탈의장), 삼백육십 여덟 개의 오름과 한라산자락을 향하는 밭 돌담 줄기마다 원기를  불어넣는 것은 다름 아닌 강인한 제주여자들의 기질에서 비롯되었다.

  “밭에 비가 풍족하게 내려사(야) 밭농사 풍년이 들 듯 바당에도 태풍이 불어줘사(야) 바당농사도(바다농사도) 잘되는 거여.󰡓

  “올해에도 몇 번 바당이 뒈싸져사(뒤집어져야) 물질(해녀가 물속에서 작업하는 일)하는 맛이 날것이라..󰡓

  “우리에겐 바당이 밭이여... 손질이 정성스러운 만큼 보답헌다(한다). 좋은 바당은 사람 손으로 맹글어(만들어) 가는 거라.󰡓

  어부와 잠녀들의 넋두리다.

  물속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잠녀들은 조류변화에 누구보다도 민감하여 자연의 영향에 순응하는  천리를 바다에서 체득한다.

  그렇게 영육을 묻는 삶의 터전이자 혼을 뿌려온 바다생활이 이제 마지막 악장을 치게 되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언제부터였는가. 바다에 마귀의 성 같은 붉은 깃발들이 나부끼기 시작했다.

  인간의 무지몽매한 힘으로 바당을 뒈싸 놓으려 한다. 아니 텃바당이 영원히 돌이킬 수 없게  뒈싸질 운명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태풍의 힘으로 뒈싸진 바당은 황금어장으로 바뀌는 복원력을 타고 나지만, 인간의 무지로 뒈싸진 바당은 영영 돌이킬 수 없는 황무지로 변할 뿐이다. 그런 이치를 모를 리도 없는 인간들은 별무대책도 없이 막무가내로 바다를 허물어 나간다.

  이미 우알 녘(위와 아래쪽) 바당에 무쇠 부딪치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을 어쩌란 말인가.

  골리앗 기중기와 덩치 큰 굴착기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밀어붙일 기세로 진을 치고 일반인 출입통제의 붉은 깃발들이 동네바다에 무서운 공포감과 위기감을 자아낸다.

  힘없는 바다 지킴이 어부들과 잠녀들이 목숨을 건 투쟁으로 맞서지만, 맥도 못 추고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힘이 달리고 부치는 건 불 보듯 뻔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그저 멍하니 쳐다만 볼 뿐이다.

  생명의 바다엔 청천벽력, 벼락 덩어리가 내려치는 것을 보고도 당장에 자신에게 피해가 없어  보이니 그저 남의 일인가 한다.

  푸른 바다의 일렁이는 물결과 넘실거리는 파도, 행복한 바다의 모습은 다 어디로 가고, 탈도 많고 말도 많은 무지렁이 바당으로 뒈싸지고 마는가.

  물 윗사람들이 오락가락 평행선을 그으며 다툼질을 하고 천길 물속을 들여다보면서 울부짖지만, 상처 난 바다의 응어리진 한을 풀어줄 도리가 없으니 상군잠녀(기량이 뛰어난 잠녀)들이 자맥질하던 원혼만이 지천을 맴돌다 사라질 뿐이다.

 󰡐호오이 호오이󰡑숨비질 소리를 실어 나르는 노여운 파도가 밀려와서 엉덕바위를 냅다 후려치고 나면 산채만한 물거품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다 거칠게 부서져 내린다.

◆벌태시와 초라니

  내 고향은 한라산이 멀리 평화롭게 누워있는 중산간 지대에 곶자왈(나무와 잡목으로 우거져  숲지대를 이룬 목장이나 원시림)을 끼고 살았다. 그래서 이 마을을 곶자왈 동네라고 불렀다. 곶자왈 사람들에게 제 잘난 놈(?) 못난 여편네를 일컫는 두 가지 유형을 손꼽으라면 ‘벌태시 남정’과 ‘초라니 아낙’을 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못난 놈을 두고 ‘벌태시 같은 놈’ 그리고 잘못 배워먹은 여식을 두고 ‘초라니 닮은 년’이란 욕질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어른들은 자식을 낳으면 벌태시와 초라니 같은 인간이 안 되도록 어릴 때부터 훈육하면서 인성교육을 해나간다.

  그러나 그 벌태시와 초라니가 꼭 나쁜 의미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용기 있고 활발한 놈을 두고 일벌태시, 부지런하고 요망진(영리하고 똘똘한) 여자아이를 당초라니에 빗대어 호칭해주는 때도 허다하다.

  벌태시는 우직하고 쉽게 타협이 안 되지만 앞뒤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제멋대로 일을 저지르고 마는 뚝쇠 같은 놈이다. 자유분방하면서도 뱃심과 웅력을 소유하였지만 조리있게 일 처리가 안 될 뿐이다.

  반면에 초라니는 고집이 세고 부지런하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서길 좋아하는 약방의 감초격의 아낙네 정도를 이르는 별칭이 아닌가한다.

  나의 고향은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이어서 다른 곳에 비하여 사람들 모여 사는 모습들이 독특하고 습성이나 인성이 어딘지 모르게 투박스럽고 색다른 멋이 넘쳐났다.

  마을 공동관심사에는 의기투합이 잘되고 단결심도 강하지만 다른 마을과 이해관계 얽힌   일이 생길 때는 한 치도 양보할 줄 모르는 폐쇄성과 배타성이 두드러진 습성을 보인다.

  마을 일(공동작업)이 많은 편이어서 부역(공역)이 많고 어울려 일하는 관습이 오래전부터 터 잡은 지라 수눌음 일도 잘 이루어진다.
  젊은이들의 잡동사니 놀이패도 꽤 많은 편이다. 윷놀이, 장기, 바둑, 말싸움 붙이기, 닭싸움 걸기, 지게발 걷기, 집줄놓기, *뚱돌들기(큰 돌을 들어 올리는 놀이)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나의 유년시절 기억의 한 토막이다. 동네 청년 중에 유별난 벌태시 남정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엔가 동네에 웃어른 한 분이 돌아가셔서 장사를 치르기 위해 젊은 상여꾼들이 총동원되었다. 그 당시에는 마을 공동묘지에서 진종일 땀을 흘리며 장사를 치르는 일이 여간 큰 행사가 아니었다.

  이런 날엔 단연 벌태시와 초라니가 두각을 보일 뿐 아니라 인기가 짱이다. 그만큼 힘도 세고  뚝심도 큰 벌태시가 의례 나서야 할 일이 많아졌다고 보아 무방하다. 이 날만큼은 술도 고기 안주도 되로 받아먹으니 두주불사의 독불장군에게 시선 집중일 수밖에 없으리라. 얼근히 취기 도는 얼굴에 불호령도 당당하다.

  누구하나 거역함이 없이 설설 기는 모습으로 하는 일마다 척척 보조를 맞추어 주며 막  추어올린다.

  주는 대로 받아 퍼마시고 불러 삼배 놀아 삼배 얼쑤얼쑤 척척 나발통불기 영웅본색이 다 나온다.

  그에 뒤질세라, 초라니는 동네 대소사에 궂은일, 남 내버린 일을 혼자 도맡아 다 해내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될 별난 일꾼이었다.

  이렇게 대사를 다 치르고 마을로 돌아오면 동네 처녀와 청년이 모두 모인 가운데 한바탕 뒤풀이를 벌인다.

  이때 누가 뭐랄까 ‘내가 아니면 누가 나서랴?’ 하며 당초라니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장중을 휘휘 싸돌며 촐싹대기 시작한다. 잽싸고 날렵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럽거늘, 장사지내고 슬픈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술판 굿판 떠벌이판 다 모여들어 그날의 대미를 장식한다.

  “야, 당초라니! 장기자랑 하나 해 불어라 이~~!” 벌태시의 용감한 제안이다.

  “이 펄렁도체비(가볍게 행동하는 사내놈을 빗대어 이르는 별칭) *오라방아!(오빠야) 벌태시 춤이나 한번 추어 놓고 일 시키삼...!” 초라니의 즉각적인 반격이다.

  “나 오늘 너무 취해버렸느니라, 어디 한 번 이참에 공동묘지 도체비 불(도깨비불)이나 붙여다  줄까?” 하는 말에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한다. 벌태시가 일 낼 때는 모두가 숨을 죽이며 긴장하였다.

  “내가 말이지.. 에헴! 오늘 삼촌님 잠드신 공동묘지에 가서 큰 효도 말뚝(당시풍습으로, 비석대신 임시로 박아두는 말뚝) 하나 박아 드리고 올 테니깐, 느네(너희)가 믿을지 안 믿을지 모르되 내가 그 일 성공하고 오거들랑, 오늘부터 큰형님 큰 오라방으로 모시도록... 그 징표로 술 한 추니(술항아리) 걸라.”

  칠흑의 밤에 시오리 공동묘지에 가서 귀신과 대화를 하고 온다고...? 얼마나 간이 큰지  담력실험을 해달라는 청구약정이었다.

  모두들 놀라운 모습으로 공동계약에 동의하고 땡전을 모아 상금을 걸었다.

  ‘무지하면 용감하다.’하였다. 그런데 그 용감한 벌태시의 돈키호테식 도전이 진짜 일을 내고 말았다.

  한 참이 지나고 몇 시간이 되어도 돌아와야 할 벌태시가 함흥차사이다.

  초라니는 자신이 원인제공자라는 죄책감으로 동네 청년들에게 막 채근을 하며 난리소동을 피우기 시작한다. 빨리 뒤를 밟아 찾아 나서라는 주문이다.

  할 수 없이 건장한 청년들 넷이 구조대를 비상 편성하여 횃불을 들고 공동묘지로 향한다.

  한참 만에 묘지에 당도했을 때, 이미 벌태시는 초주검이 된 채 ‘나 살려라’라고 신음을  하며 쓰러져 있지 않은가... 청년구조대원들도 천하에 용감무쌍한 벌태시가 산귀신 들려 얻어맞은 줄만 알고 감히 접근하기 두려워할 지경이었다.

  일인즉슨, 제대로 말뚝을 박긴 박았으되 자신의 외투 끝을 땅에 대놓고 박아 놓은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막 돌아서려는 참에, 삼촌 귀신이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놓아주지 않은 줄로   착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제발 살려 보내 주십사’하고 두손 두발 삭삭 비벼대며 비는 중이었다. 시커먼 밤중에 공동묘지에서 이루어진 일이니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칠 노릇이다.

  온몸은 식은땀 범벅에 겁 똥을 싸놓고, 온통 콧물 눈물범벅 투성이의 상판대기가 말이 아니었다.

  넋 나간 초주검을 네 장정이 교대로 둘러메며 마을에 돌아오니 구경꾼들이 아연실색한다.

  더욱더 가관인 것은 초라니의 행동거지가 더 우습다.

  “벌태시 오라방아! 할망당(마을을 지키는 할머니 女神)으로 가서 *빨리 넋드립시다.(빠져나간 넋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빌어 줍시다) 삼촌 귀신 혼백을 달래지 않으면 산사람 귀신 만듭니다.” 하고 요란 법석을 다 피운다.

  바로 그 길로 동네방네 뛰어다니며 당심방(무당)들을 소집하여 벌태시를 강제 동행시키곤 넋들임을 당당히 성사시킨다.

  초라니는 이렇게 동네일이나 자신의 신변에 사고가 발생할 때엔 늘 할망당에 고사 치레를 도맡아 치르는 역할을 잘 해낸다.

  그전에도 수눌음(품앗이) 공동 삯으로 돈 대신 받은 달걀 바구니를 들고 가다가 돌부리를  차서 길바닥을 나뒹굴었던 일이 있었다. 몸도 다치고 동네 길을 깨어진 달걀로 도배질을 한 이유 때문에 할망당에서 치성을 드렸다.

  그래서 당을 지키고 관리하는 일에 열성을 부리니 당초라니가 되어 버렸다는 말도 있다. 벌태시는 나서기만 하면 일을 내니 일벌태시가 되어버렸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결코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거짓을 위장하려 하지 않는다. 욕을 먹을지언정 남을 속이거나 생채기 내고 흠집을 입히지도 않았다.

  내 고향 마을의 벌태시는 한집 망조가 아닌 열 집 도우미이고, 초라니 역시 두 집 망조가 아닌 동네일꾼일 뿐이었다. 춥고 배고픔을 이겨내며 마을 사람들의 애환을 달래주고 용기를 심어준 파수꾼들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일벌태시와 당초라니’, 이 두 사람은 내 고향의 사랑받는 동네 상표가 되어 버렸다.

  소박하고 질박한 삶을 이어가는 곶자왈 마을의 진정한 두 살림꾼, 조상의 얼과 혼이   스미어 배인 고향의 터전을 꿋꿋이 지키고 가꾸어 온 주인공들임이 틀림없으리라.

<강정태 기자/ 저작권자ⓒ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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