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의 역사속에서 50여년, 이제는 잊혀질만한 세월인데도 4월 유채꽃이 필 때만 되면 ‘4·3’은 되살아난다.

1989년 4월, ‘4·3’ 41주기를 맞아 제주시내 일원에서는 ‘4·3’추모제 일환으로 설문조사 보고대회와 문학제·강연회·미술제 등 갖가지 행사가 이어져, 41년 전 제주도(濟州島) 유사이래 가장 참극이었던 ‘4·3’을 되새기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운동이 벌어졌다.

제주문화운동협의회를 비롯해 도내 재야 11개 단체로 구성된 ‘41주기 4·3추모제 준비위원회’가 주관한 ‘4·3’추모제는 ‘4·3’에 대한 문화적 접근을 통해 당시 희생자들의 원혼을 위로하고 진상규명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펼쳐진 것이다.

이들은 “‘4·3’당시 억울하게 죽어간 도민들의 죽음의 의미와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채 오늘 이 시간까지 계속 되고 있다"면서 이 같은 현실에 주목해 ‘항쟁’의 계승과 현재화에 초점을 맞춰 추모제를 마련하게 됐다. 이후 4·3 추모제는 매년 4월이면 연례행사처럼 재연된다.

놀이패 ‘한라산’은 이에 대한 첫 작업으로 ‘사월굿 한라산'(1989년)을 비롯해 ‘백조일손'(1990년) ‘헛묘-시신도 어선 헛산이라'(1991년)를 연이어 무대화, 고집스럽게 ‘4·3’마당극 작업을 펼쳐낸다.

‘사월굿 한라산’은 당시 산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입장과 상황을 표현했고, ‘백조일손’은 1950년 7월(음력)에 있었던 이른바 ‘백조일손 사건’의 참담한 죽음에 대한 신원과 위무를 통해 공동체 복원을 꾀했다.

또 ‘헛묘-시신도 어선 헛산이라’는, 특히 ‘4·3’이후 마을공동목장의 땅이 외지인에게 넘어 가버린 현실에 주목해 안덕면 ‘무등이왓’·애월읍 ‘원동마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4·3’의 전개과정에서 대학살과 땅을 빼앗겨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하는 ‘이중 학살’을 그려내면서, 끝내 다시 일어서는 도민의 삶과 투쟁을 조명하고 있다.

그림패 ‘보롬코지', 노래패 ‘숨비소리’ ‘우리노래 연구회', 영상패 ‘움직거리’ 등의 문예단체들도 ‘4·3 넋살림전’ ‘4·3 노래 발표회’ ‘4·3 삐라 및 오류사진전’ 등의 추모행사를 통해 ‘왜, 남도(南島)가 잠들지 못하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한편, 우리 사회에 ‘해방의 정서’ ‘통일의 정서’가 굳센 힘을 키워내고 있음을 직·간접적으로 표출했다.

특히 ‘보롬코지’는 판화작업을 통해 ‘4·3’의 넋을 살리는데 한몫 했다. 나무와 칼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간결한 색감과 흑백으로 나타나는 단순효과는 강력한 힘의 표현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지론이기도 하다.

문학은 여러 장르에 걸쳐 좀더 다양하게 펼쳐진다. 1989년 제주청년문학회가 주최한 ‘4·3 민족문학제’에는 김명식(시인)·김석희(소설가)·문무병(굿연구가)·한림화(소설가)씨를 비롯해 청년문학회 회원 등 50여명이 참여해 ‘4·3문학’의 위상정립을 놓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청년문학회 회원 함승보·양성자씨는 이산하 작 장시 ‘한라산’의 비현장성을 지적하고 “제주도민과 빨치산을 구분하고 있지 않다"며 “어떻게 500여명 정도의 빨치산이 제주도민과 동일시될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1990년 4월 청년문학회 시(詩) 분과 10여명의 회원들은 ‘4·3’의 아픔으로 얼룩진 제주시 용강마을을 둘러보고 공동작업을 통해 ‘용강마을, 그 피어린 세월’이란 장시를 토해냈다.

청년문학회는 또 1991년 4월 소설분과 김정숙·김명하·문희숙씨가 공동창작 소설인 ‘아버지의 땅’을 내놓아 눈길을 모았다.

특히 종래 청년문학회가 중심이 돼 펼쳐지던 ‘4·3민족문학제’는 1991년부터 제주지역 문학 유관단체 대표자 회의(청년문학회·글왓·풀잎소리·초승동인·서귀포의 트임소리·제주대 국문학과 시분과·신세대·바탕·민초섬)으로 이관돼 운영되면서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4·3’이 차지하는 위상의 폭을 넓혀 나가게 된다.

4·3 추모제는 해를 거듭하면서 제주역사의 비극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작업이 구체화됐고, 결국 1994년 제1회 4·3문화예술제의 주춧돌로 자리잡게 된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주도지회(지회장 김상철)가 창립하며 핵심사업으로 내건 4·3문화예술제는 그동안 제주도민의 뼈아픈 역사를 문학·미술·연극·음악 등 다양한 문화예술 매체를 활용해 ‘4·3 진실 드러내기’작업은 물론 ‘4·3의 이미지’생산 등으로 4·3을 예술로 승화, 4·3에 대한 도민들의 이해를 도와왔다.  

특히 2003년 4·3문화예술제 10주년 기념사업은 10회라는 산술적 의미를 넘어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다양한 기획전을 마련함으로써 제주 현대사를 새롭게 조명한다.

문화예술단체가 이처럼 하나의 비극적 사건을 주제로 10년 동안 거르지 않고 예술화한 것은 국내·외 예술사를 통틀어도 드문 일이다.

민예총 제주도지회는 지난 10년의 성과와 문제점을 점검하고 향후 발전적인 역사문화예술축제의 새로운 단계를 모색함으로써 거듭남의 발판을 다진다.

특히 놀이패 한라산은 지난 4월 일본 동경 닛보리사니홀에서 4월굿판을 펼쳐낸다. 재일동포 4·3을 생각하는 모임이 초청한 것으로 일본에서 제주의 피맺힌 응어리를 풀어놓은 작품은 ‘4월굿  꽃놀림’(극작 장윤식·연출 김경훈). 지난 1992년 작품을 순수 마당극으로 새롭게 수정·보완한 것이다.

‘4월굿 꽃놀림’은 섣달 열여드렛날이면 집집마다 제사를 올리며 눈물 흘리는 북제주군 북촌리를 배경으로 했다. 특히  지난 1989년 ‘4월굿 한라산’이 제주4·3항쟁을 총체적으로 다룬 작품인 반면 ‘4월굿 꽃놀림’은 제주도의 각 지역에서 벌어졌던 4·3의 실체를 하나씩 끄집어 내는 각론적인 작품이다.

놀이패 한라산은 이미 1998년 ‘4월굿 한라산’과 2000년 ‘아버지를 밟다’ 작품으로 일본을 방문, 재일동포과 현지인들에게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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