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폭발로 지구 내부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2012년 12월21일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 집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천장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태평양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대규모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건물과 도로, 사람들은 갈라진 땅 속으로 빨려들어가버렸다. 수백m 높이의 해일이 폐허로 변한 도시를 집어삼켰다.

바로 지구 종말의 날이었다. 2009년 개봉한 영화 '2012'의 장면들이다. 그러나 종말론이 비단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전세계 곳곳에서 종말론과 관련된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고대 마야인이 만든 달력이 끝나는 시점인 21일을 앞두고 지구촌이 '지구 종말설'로 한바탕 시끄러웠다.

'2012'에서도 마야력에서 말한 '지구 종말의 날'이 소재로 활용됐다. 이 영화에서 말한 '2012년 12월21일'은 고도로 발달된 문화를 자랑하던 고대 마야인들이 만든 달력의 마지막 날로 알려지면서 '지구멸망의 날'이 됐다.

마야력 뿐만 아니라 이날이 지구멸망의 날이라는 근거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급속히 퍼졌다.

바로 전 세계의 인터넷 자료를 모아 주식 시장의 변동을 그래프로 예측하는 프로그램인 '웹봇'이 2012년 12월21일을 기준으로 분석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웹봇이 2001년 미국 9·11 테러와 2004년 인도양 지진 해일 사태 등을 예측했다고 알려지면서 '지구멸망'에 대한 신빙성이 더해졌다.

또 최근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오르는 등 전세계적 한류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싸이'도 2012년 지구 멸망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론에 '춤추는 말(馬)의 숫자 0이 9개가 될때 고요한 아침으로부터 종말이 올 것이다(from the calm morning, the end will come when of the dancing horse the number of circles will be 9)'라는 구절 때문이다.

누리꾼들은 조용한 아침(the calm morning)은 한국을 의미하고 춤추는 말(daning horse)은 싸이의 말춤을, 숫자의 '0' 9개(number of circles will be 9)는 유투브(youtube)에서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의 10억(10억은 0이 9개) 회 조회수를 의미한다고 내다봤다.

즉 '한국에서 온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투브에서 조회수 10억회를 돌파하는 날 지구가 종말 할 것'이라는 해석한 것이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22일 오전 10억회를 유투브 사상 최초로 돌파했다.

실제로 한국인 10명 중 1명은 이같은 종말론을 믿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5월1일 미국 여론조사 전문기관 입소스(Ipsos)가 한국인 500명을 포함한 세계 21개국 1만62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한국인의 13%가 종말론을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인의 22%와 영국인 8%, 프랑스인 6%가 종말론을 믿는다고 응답했다.

이 때문인지 전 세계 곳곳에서는 '지구멸망의 날'을 맞아 갖가지 일들이 벌어졌다.

중국 정부는 '전능신(全能神)'이라는 신흥종교가 지구종말설을 퍼트리는 핵심세력으로 보고 1000여명의 신도를 잡아들였다.

'전능신'은 1989년 자오웨이산(趙維山·61)이 창시해 수백만의 신도를 거느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에서는 냉전시대 핵무기 공격을 피하기 위해 만든 벙커에서 지구 종말을 피하는 24시간 파티가 벌어질 예정이다. 1000달러(약 110만원)의 입장권 1000장이 모두 팔릴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종말론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92년 '다미선교회'라는 단체의 종말론이 우리나라를 뒤흔들었다. 국내·외 9000여명의 신도를 확보했던 이 단체는 같은해 10월 28일 종말이 온다고 주장했다.

신도들은 직장을 그만두거나 이혼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자살을 한 사람도 있었다. 당시 교회의 한 목사는 현재도 종말이 온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천년을 앞둔 지난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7월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는 예언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 했다.

이어 2000년에도 Y2K(밀레니엄버그)로 인해 컴퓨터가 연도를 인식하지 못해 통신망이 마비돼 세계적 혼란이 온다는 종말론도 널리 퍼졌다.

전문가는 이같은 종말론이 시시때때로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이유로 3가지 원인을 꼽았다. 또 종말론을 믿기보다 현실의 삶에 충실하라고 주문했다.

현택수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인간은 초월적이고 초인적인 세계와 현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며 "이같이 불가사의하고 신비한 영역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종말론이 대두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 교수는 "현실 세계의 타락과 사회 불안정, 위기 의식과 연관해 종말이 하나의 '심판론'으로 등장한다"며 "타락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종말을 맞을만도 하다'고 자포자기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 교수는 "최근 이상기후가 계속되면서 자연에 대한 공포의식이 종말론에 불을 지핀다"며 "인간의 과학으로 예측하지 못한 공포가 전지구적으로 확대되는 경험과 그에 대해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이 합쳐져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종말론을 믿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너무 많은 것을 '종말'에 투자했기 때문에 집착하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종말론이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곽 교수는 "종말론을 믿기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며 "모든것을 무의미하고 가치없게 보기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뉴시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