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7일 일요일 날은 오사카지역의 민단만이 아니고 많은 단체나 가족들이 야유회를 개최했다.
 
일본인 단체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동포 민단에 대해서는 한반도에서 북한의 도발적인 행위가 계속되고 있는데 태평하게 야유회가 뭐냐고 비난할런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수록 우리들의 일상을 굳게 지키고 북한의 생트집을 무시하면 된다. 이것은 한국 국내의 국민들이 더욱 잘 알아서 대처해야 할 것이다.
 
무시 당하는 것이야말로 상대방에 있어서는 가장 혹독한 대책 방안이며 굴욕적이다.
 
어떻든 이날 비 날씨로 인해 망설이면서 밖에서 아니면 건물 안에서 치르면서 한때를 보냈겠지만 필자가 의장직을 맡고 있는 있는 민단 이쿠노 남지부<지단장 김철홍>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전 7시 임원들이 지부 사무실에 모였을 때 어제부터 내리는 비는 그칠줄을 몰랐다.
 
그래도 오후부터 개인다는 일기예보 속에 개최 예정지인 공원을 현장을 답사했지만 비는 그친다고 하더라도 바람이 몰고오는 추위가 문제였다.
 
우리 지부는 그 자리에서 공원 개최를 단념하고 사무실에서 개최할 것을 결정하고 새로운 준비에 들어갔다.
 
같은 지역에 있는 이쿠노 서지부와 중앙지부는 야외에서 개최했다지만 남지부는 예약했던 임대용 텐트 등을 취소하고 주문한 음료수 등도 집으로 직접 갖고 오라는 등 참 바쁘게 움직였다.
 
부인회<회장 양정열>에서는 지부 3층에서 단원들에게 드릴 도시락 식재를 몇일전 부터 준비하여 새벽 때부터 만들고 있었다.
 
작년까지는 참석자 전원에게 도시락을 배부했지만 삼사백개를 준비해도 한시간도 안되서 바닥이 나버렸다.
 
나중에 온 사람은 도시락 안 준다고 투덜거려서 그럴 때마다 임원들은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여야 했다.
 
그래서 금년은 새로운 기획으로 야유회를 치르기로 했다. 민단 단비<회비>를 내는 세대에만 야유회 개최 안내 엽서를 보내기로 했다.
 
단비는 성인 한 사람 한 사람 각자가 내는 것이 아니고 일 세대당 매달 약 천엔을 받고 있었다.
 
각 지부는 이 단비를 가장 큰 기본재정으로 삼고 민단 운영을 하는데 이외에도 임원이나 유지 단원들의 기부금 없이는 도저히 민단 운영을 할 수없다.
 
그런데 야유회만이 아니고 각종 행사 때마다 단비를 전혀 내지 않는 동포들도 언제나 참가한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잘 오셨다고 대접했지만 단비 지불에 대한 협조와 배려가 전혀 없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닌데 문제가 있다.
 
이러한 부조리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로서 남지부는 단비를 내는 약 550 세대에 야유회 개최 안내 엽서를 발송하고 참가자는 그 엽서를 갖고 오면 도시락 한개와 제일 큰 목욕수건 한장을 드렸다.
 
비가 오고 추운 날씨였지만 악 110명의 일반 단원과 임원과 부인회를 합하면 모두 150명이 넘었다.
 
이번 야유회에서 특이한 것은 단비를 내고 야유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단원 세대에는 도시락과 목욕수건을 임원들이 배달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참석 안하면 그냥 그것으로 그쳤지만 사정이 있어서 참가 못한 세대에 대해서는 민단 지원에 대한 고마운 인사를 겸한 방문이었다.
 
10여명의 부인회는 방문용까지 계산해서 약 300개의 도시락을 만들었다. 오후 한시 궂은 날씨 속에서도 민단 간부와 부인회장 등이 백여 세대를 방문하여 도시락과 목욕수건을 전달했다.
 
반응은 생각 이외로 좋았다. 설마 야유회 중에 참가 안한 자기들에게까지 도시락을 배달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치 않았던 일이었다.
 
이러한 기획을 미리 알고 있던 민단신문도 취재차 같이 동행했다. 민단 활동에 있어서도 신선한 새로운 기획이었다.
 
하루에 전부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은 세대에는 4월 14일과 21일, 일요일 날 다시 부인회에서 도시락을 만들고 목욕수건을 배달할 예정이다. 
 
이 기획을 추진하면서 필자는 유년시절 당시 시골이었던 제주시 삼양에 살면서 제삿밥 나르던 때가 그립게 떠올랐다.
 
제사가 많았던 우리집은 제사가 끝나면 밤 한시가 넘어서 필자는 두살 위인 형님과 가까운 이웃과 유지댁에 제삿밥 나르는 것이 그때마다의 책임이었다.
 
계절마다 있었던 제사여서 봄에는 달밤의 유채꽃, 여름에는 제삿밥 나르고 나서 물 좋은 용천수에서의 목욕, 소복이 내리는 눈 속의 심야 나들이 등은 60대인 필자에게 다시없는 풍물시로 반추되고 있다.
 
<이 원고를 4월 13일 오전 5시 10분부터 쓰고 있었는데 5시 33분 오사카 일대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 칸사이공항 가까운 아와지섬이 진원지로서 진도 6이었고 필자가 거주하는 이쿠노는 진도 3이었다.
깜짝 놀랐고 불안했다.우리집은 약 10초정도 크게 흔들렸고 NHK 텔레비는 즉시 생방송으로 지진 뉴스를 계속 보도하고 있다. 각 방송국도 20여분이 지나서 생방송으로 바꿨다. 각 철도는 물론 칸사이공항도 폐쇠해서 노선과 활주로를 점검하고 있다.>


 

   
     
▶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1973년 병역마치고 도일,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료(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가로 추천 완료,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6년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발간, 2007년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16회 해외한국 문학상 수상, 1996년 일본 중앙일간지 <산케이신문 주최 <한국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소논문 1위 입상. 2003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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