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이 서로
시간을 양보하는 그 찰나의 순간

섞일 수 없는 빛과 어둠이
조화로이 노니는 그 순간들

여명과 황혼은 모습은 같지만
의미가 다른 두 순간의 아름다움

사람의 인생에는
여명이 있고 황혼 또한 있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시(詩) ‘여명과 황혼’ 전문(全文)이다. ‘검은 달’이라는 필명을 가진 이가 썼다. 인터넷에서 낚아 읽었다.

아침을 여는 동쪽하늘의 황홀한 여명(黎明)과 낮을 다스려 서쪽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는 황혼(黃昏)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다. 같은 하늘의 노을이면서 여명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기운이다. 황혼은 아름답지만 쇠잔하고 쓸쓸하다. 여명과 황혼은 하늘의 아름다운 노을빛을 공유하면서도 이미지는 양극단에 서 있다.

각설(却說)하고, ‘여명과 황혼’을 접하면서 문득 두 사람이 오버랩 됐다. 6.4 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원희룡 당선인과 낙선한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다.
비유로 말하자면 50대에 진입한 원당선인은 황홀한 아침노을이고 70대의 신 전지사는 말 그대로 서쪽하늘을 붉게 수놓았던 저녁노을이다. 여명과 황혼, 이들 두 노을이 만나 악수를 했다. 아름다운 정경(情景)이다.

선거가 끝난 다음날(5일), 신 전지사가 원 당선인 캠프를 전격 방문했다. “정말 축하 드린다”는 축하 인사에 당선인은 “정말 고생 많으셨다”고 한껏 몸을 낮췄다.

덕담은 계속됐다. 신 전지사는 원후보의 당선은 ‘새 시대의 시작’이라고 했다. ”도민들의 변화의 마음을 잘 헤아려 잘되기 바란다“는 뜻도 전했다.

당선인은 더욱 정중했다. “신 전후보의 노하우와 역량을 존경 한다”고 전제한 후 “이제는 도민을 대표해 도움을 구하고 일도 요청 할 테니 많은 도움을 주시라”고 협조를 부탁했다. 원로로서의 도정발전을 위한 역할을 주문한 것이다. 시종 존경과 예우를 갖췄다.
당선인의 진정성에 신 전지사는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도움 될 일이 있으면 기꺼이 협력하면서 돕겠다”고 화답했다.

승자와 패자로 갈리었던 두 사람의 아름다운 만남은 감동이었다.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선거에서 경쟁했던 당사자가 승패에 관계없이 직접 만나 ‘축하’와 ‘위로’를 나누는 일은 예사롭지 않다. 그 만남이 의례를 뛰어넘어 진정성을 갖췄다면 더욱 그렇다.

당선자의 신 전지사에 대한 존경과 예우는 그냥 해보는 립 서비스 수준이 아니었다. 진솔했다. 돌아다니는 말이나 정황(情況)으로 미루어 보면 더욱 그렇다.

당선인이 신 전지사를 ‘새 도정 준비위원장’으로 모시기 위해 ‘삼고초려(三顧草廬)하고 있다’는 소문은 당선인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돋보기 렌즈나 다름없다.

물론 이에 대한 반동(反動)도 거칠다. 옹졸한 고집에 사로잡힌 일부 정치세력의 ‘딴죽 걸기’가 그것이다. 그들은 당선인의 정책 원로 ‘신구범 모시기’를 ‘저열한 정치 쇼’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편 가르기를 뛰어넘어 내편 네편 없이 도민과 함께하는 통합의 도정을 만들겠다는 새 도지사 당선인의 의지를 ‘저열한 정치 쇼’라고 구정물로 뒤집어 씌워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내편 네편을 갈라 도민을 분열시키고 선거에 졌다고 새 도정의 발목을 잡는 행태가 ‘고급한 정치놀음’이란 말인가. 비루(鄙陋)하다. 용렬(庸劣)한 ‘정치 딴죽‘일 수밖에 없다.

제주도정의 주인은 누가 뭐라고 하든 제주도민이다. 특정정치세력이 좌지우지하거나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다. 지금은 도민이 하나로 힘을 모아 새로운 제주의 미래를 엮어가야 할 절박한 시대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특정 세력의 새 도정 발목 걸기나 트집 잡기는 새 시대를 기대하는 도민에 대한 반란이다. 그야말로 못 먹는 감 찔러보기 식 ‘정치몽니나 행패’에 다름 아니다. 도민통합과 제주발전을 위해 찍어 버려야 할 대상이다.

당선인은 이러한 ‘딴죽 걸기’세력에 주눅 들어서는 아니 된다. 당당하게 맞서야 할 일이다.

70년대 말 국가기능 마비상태의 영국병을 치유했던 대처 총리의 위기 극복 능력은 당선인의 반면교사(反面敎師)일 수도 있다.
대처는 정책결정 전 충분한 검증과정을 거쳐 확고한 명분과 신념을 쌓았다. 그리고 각종 비난과 불평에 굴종하거나 원칙 없는 타협으로 사태를 봉합하기보다 갈등의 근원을 도려내겠다는 강력한 리더십을 유지했다. 영국병 치유의 2대 처방전이었다.

당선인도 마찬가지다. ‘제주병 치유’를 위해 명예보다는 멍에를 지고 가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화합의 미명(美名)아래, 또는 온정주의에 묻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엉거주춤으로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서는 곤란하다. 쉽게 가려는 ‘이지 고잉(easy going)’은 변화의 걸림돌일 뿐이다.

제주사회 저변을 흐르는 평균적 희망은 망외(望外)의 소득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변화의 바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정체가 아닌 제주적인 가치의 변화 욕구다.

변화에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항상 기존영역을 넘어서는 자유분방한 사고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강력한 실천의지는 필요충분조건이다.

들리는 바, 당선인의 행보는 신선하다. 탈권위적인 부지런함이 돋보인다. 겸양의 미덕도 아름답다.
경쟁 상대였던 신 전지사를 모시겠다는 발상은 변화를 위한 첫걸음으로 볼 수 있다. 나와 남을 뛰어넘는 협치(協治)도정의 출발이기도 하다.

나이 50, 장년(壯年)의 열정적 장엄함과 듬직함, 치열하게 풍상(風霜)을 겪어온 나이 70, 노년(老年)의 완숙한 노련미, 이 둘의 에너지를 묶어 도민적 시너지로 끌어올리겠다는 민선 6기 새 도정의 ‘협치 담론’은 그래서 도민들의 기대감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도민과 함께 둘이서 색칠하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제주하늘 노을빛을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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