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하늘 지는 해 구름 속으로 숨어버리고, 제주항에는 시나브로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아직은 이마며 겨드랑이를 끈적이는 낮의 열기가 후끈거렸지만 한 여름 저녁, 제주항 제7부두 광장의 분위기는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700여명이 촘촘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없었다. 두런두런 속삭임도 들리지 않았다. 성스러운 종교의식을 치르는 듯 조용하고 엄숙했다.

2014년 7월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째 되는 날이다. 478명이 탑승했던 세월호(6835톤)는 인천을 출발 제주로 오던 중 지난 4월 16일 진도앞바다 맹골수도에서 침몰했다. 수학여행단 학생 등 294명이 숨지고 10명이 실종됐다.

유채꽃 흐드러진 4월의 제주도 수학여행길, “잘 다녀 오겠습니다” 활짝 웃으며 집을 나섰던 생때같이 새파란 아이들을 맹골수도 그 지옥의 바다가 삼켜버린 것이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68)가 세월호 참사100일 째인 24일 오후 7시 30분부터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이승을 떠난 어린 영혼들, 캄캄하고 차가운 바다 깊은 곳에서 숨이 막혀버린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추모연주회를 가졌다.

제주민방 JIBS(사장 김양수)가 마련한 제주항 제7부두 광장 특설무대에서다.
제주항은 원래 세월호 도착예정지였다. 제주도는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예정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살아서 제주항에 내리지 못했다.

그러기에 제주항에서의 ‘세월호 참사 100일, 백건우의 영혼을 위한 소나타’는 사람들의 마음을 후비어 슬픔을 짜내는 무대나 다름없었다. 시종 뭉클하게 가슴을 저미는 영혼의 울림이었다.

건반위의 구도자 백건우는 ‘베토벤 비창 소나타 작품 13번 2악장’으로 무대를 열고 바다에서 죽어간 영혼들을 불러들였다.
‘베토벤이 병으로 죽은 아이를 부둥켜안고 슬피 우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연주했다는 곡’이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억울한 영혼들을 위로하고 자식을 잃고 가슴치는 부모들의 아픈 마음을 위무(慰撫)하기 위한 선곡(選曲)이었다.

그의 열손가락이 건반 위를 향하자 모두가 숨을 죽였다. 괴괴한 적요(寂寥)가 한 여름 밤의 제주항 분위기를 지긋이 눌러버렸다.
제주항 앞바다 검은 파도도 너울을 쓰고 숨죽였다. 지척의 등대는 이마에서 푸른빛을 다스리며 장승처럼 말이 없었다.
고개를 빼어 연주회를 지켜보던 보안등 불빛도 고즈넉이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어지는 리스트의 ‘잠 못 이루는 밤, 질문과 답’, 백건우는 이곡의 제목이 세월호 참사를 되새기는 것 같다고 했다.
짧은 곡이지만 피아노를 치면서 하느님을 향해 답을 구하는 구도자의 기원을 느끼는 곡이라고도 했다.

‘침울한 곤돌라 2번’의 ‘곤돌라’는 죽음을 상징한다. 백건우의 말이다. 슬픔을 너무 잘 그려 마지막은 허무함이 극에 달하고 그래서 세월호를 삼켜버리고 침묵을 지키는 바다를 그린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라벨의 ‘사라진 공주를 위한 파반느’, 리스트의 ‘순례의 해’ 중 ‘힘을 내라’, 마지막으로는 리스트가 편곡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드’ 중 ‘사랑의 죽음’을 연주했다.

영원한 사랑, 승화된 사랑, 우리가 그리는 사랑, 죽음을 초월하는 사랑, ‘사랑의 죽음’은 이런 사랑의 총화라고 했다. 세월호 희생 영혼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헌사(獻詞)였다.

때론 폭풍우가 몰아치듯 격렬한 천등소리로, 혹은 잔잔한 호수의 물안개처럼 그윽한 떨림으로, 나비의 날갯짓이었다가, 꽃의 향기로 다가서다가, 또다시 첫 사랑의 포옹처럼 뜨겁고 두근거리기도 했다가, 저미는 슬픔으로 흐느끼게도 했다가,

피아노의 울림이, 그 소리의 떨림이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순간순간 흔들어 놓을 수 있다니, 백건우는 온몸으로 건반을 두드리는 그런 울림과 떨림으로 억울한 영혼들을 위로한 것이다.

백건우는 이번 연주를 통해 “세월호 참사의 그 비극적 상황을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연주를 앞두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다.

‘수학여행을 가던 어린학생 수백명이 푸른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평생을 별러 동반여행에 나선 동창생부부들이 한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모와 가족과 친지들이 겪고 있을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저 역시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희생된 분들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식 잃은 부모님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친구와 제자를 잃은 단원고 학생과 선생님들을 조금이라도 위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오직 음악으로 저의 혼신의 힘을 기울인 음악으로 마음을 전하려 합니다. 그것만이 저 안타까운 영혼들에게 바치는 진정한 송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건우는 리플렛 인사말을 통해 온몸으로 영혼들을 위로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그리고 온몸과 마음을 건반위에 던졌다.

저녁 8시5분, 쉬지 않고 두드린 35분간의 영혼의 울림, 마지막 곡 ‘사랑의 죽음’을 끝으로 연주회는 끝났다. 그러나 객석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건반위의 구도자 백건우가 일어섰다. 엄지와 검지로 눈물을 훔치며 천천히 무대를 내려갔다. 그의 눈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충혈 되고 구렁구렁 눈물이 맺혔을 터였다. 입은 울음을 참는 듯 지긋했다. 방파제를 두드리는 파도소리도 숨을 죽여 흐느꼈다.

‘세월호 참사’는 못된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일어났다. 구역질나는 어른들의 이기심 때문이다. 어른들의 빗나간 탐욕이 아이들을 캄캄하고 싸늘한 지옥의 맹골수도 바다 속으로 밀어 숨 막혀 죽게 한 것이다.

이제야 “미안하다, 미안하다” 수백 번 가슴 치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 “부끄럽다, 부끄럽다” 입으로만 되뇌어 본들 어쩔 것인가.
그렇다고 어른들의 더러운 죄업(罪業)이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다. 발기발기 가슴 찢으며 울부짖는 부모들의 시커멓게 멍든 마음을 달랠 수도 없는 일이다.

다만 ‘백건우의 영혼을 위한 소나타’가 세월호 참사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원혼(冤魂)을 달래주기를 바랄 뿐이다. 분명 위로를 받고 원통함을 풀었기만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하늘나라 여행길이 보다 가벼워 질 것이다.

피아노 연주 내내 김소월의 시, ‘초혼(招魂)’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세월호 영혼들을 불러 어루만지는 ‘백건우의 영혼을 위한 소나타’가 무딘 마음을 흔들어 감동의 떨림으로 다가섰기 때문이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 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들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체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김소월의 시, ‘초혼’ 전문>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