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법에서 자세히 규정하기 복잡한 사항에 대해서는 주무부령으로 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하위법인 의료법 시행령과 의료법 시행규칙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보아도 한의사의 업무 한계를 정확하게 명시한 조항은 단 하나도 없다.

다시 말해 한방 의료와 한방보건지도가 의미하는 바를 명확하게 다룬 규정이 없다는 뜻이다.

#유권해석에 의해 하위법이 상위법을 뛰어넘을 수 없다.

반면, 침구사의 업무에 관한 규정은 명확하다. 의료법은 제 60조 1항에서 ‘이 법 시행 전에 종전의 규정에 의하여 자격을 인정받은 접골사·침사·구사는 그 시술소에서 시술행위를 업으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침사와 구사의 시술행위의 한계는 ‘간호조무사 및 의료유사업자에 관한 규칙’ 제 2조-침사는 환자의 경혈에 대하여 침 시술행위를 하는 것을 업무로 한다. 구사는 환자의 경혈에 대하여 구(粂) 시술행위를 하는 것을 업무로 한다-에 나와 있다.

1988년 대한침구사협회는 ‘한의사의 침구 시술행위에 대한 법적 근거를 확인하기 위하여’ 보건사회부와 법무부, 법제체에  질의서를 제출했다. 며칠 뒤 보사부에서 보내온 회신 공문에는 ‘의료법에는 한의사의 침구 시술을 허용하는 규정이 없음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보사부는 회신 말미에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라 한의사는 침구 시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이며 한의사의 침구 시술권을 옹호했다.

보사부가 내세운, 한의사의 침뜸 허용을 인정하고 있는 규정이란 의료법 시행규칙 제8조와 제30조를 가리킨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8조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국가고시 중 ‘시험과목 등’에 대한 것이다.

이 규칙에 따르면 한의사 국가시험의 시험과목은 ‘내과학, 침구학, 부인과학, 소아과학, 외과학, 신경정신과학, 안·이비인후과학, 본ㄴ초학, 한방생리학, 예방의학 및 보건의약 관계법규’이다.

그러나 의료법 제 8조인 시험과목이 한의사의 침구 시술권을 인정하는 법 조항이라고 한 답변은 보사부의 유권해석에 불과하다.  법에 규정된 명백한 권리가 아니라 보사부가 ‘국가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침구학을 공부했으니 그 시술권을 갖게 한다’는 구속력을 발휘한 것일 따름이다.

쉽게 말해, 의료법은 침과 뜸을 한의사의 업무 한계로 지정한 적이 없지만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라 공부를 했으니 시술해도 된다는 뜻이다.

이는 명백한 법률위반행위이다. 유권해석에 의해 하위법인 의료법 시행규칙이 상위법인 의료법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위반 사항은 이것 말고 더 있다. 법률이 허가하지 않는 의료행위를 한 셈이니 ‘의료인이라고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의료법 제 25조에도 위배된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진리는 어디로 갔는가!

보사부가 근거로 제시한 다른 조항인 의료법 시행규칙 제30조는 ‘진료과목 표시’에 대한 항목이다. 이 법 조항에 따르면 ‘한방병원 또는 한의원에 있어서는 한방내과, 한방부인과, 한방소아과, 한방 안·이비인후과, 피부과, 한방신경정신과, 한방재활의학과, 사상체질과 및 침구과’를 진료과목으로 쓸 수있다.

그러나 이 규정에 의해 한의사가 침구를 시술할 수 있다는 보사부의 해석은, ‘단지 표기할 수 있는 진료과목 안에 침구과가 들어 있다는 것만으로 의료법에도 없는 권한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공평한 처사인 동시에 규칙(의료법 시행규칙)이 법률(의료법)을 위배한 것이다.

이러한 보사부의 유권해석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헌법-법률-명령-규칙의 순서를 따르는 우리나라의 법체계를 볼 때, 이들 가운데서는 의료법이 가장 상위법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위법인 의료법 시행규칙이 상위법인 의료법에 앞서는, 법체계를 무시한 유권해석이며 행정부인 보사부가 위반행위를 눈감아 주고 더 나아가 조장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모법인 의료법이나 시행령에 명시되지 않은 규칙을 가지고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은 당연히 위법이며 무효이다. 법치국가의 모든 법과 시행령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 제정되어야 한다.

또한 행정부의 부령은 법령의 위임이나 근거 법규 없이 국민에게 의무를 지우거나 권리를 부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보사부의 유권해석이 도리에 어긋나는 부분은 또 있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8조 시험과목에 대한 규정에 의해 한의사의 침구 시술권을 인정한다고 하고 있는데 이는 법의 형평성에 어긋나며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평등권에도 위배된다.

침구학을 배웠다는 것만으로 한의사가 침구를 시술할 수 있다면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에게도 침구 시술권을 부여해야 한다. 시각장애인 또한 보건사회부 장관이 인정하는 안마사 양성기관(국·공립 및 사립 맹학교)에서 3년동안 침구술과 관련된 교과를 배우고 실습도 마쳤기 때문이다.

국가가 인정하여 배운 침구술임에도 불구하고, 한의사에게는 허용하고 시각장애인 안마사에게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중의 잣대를 들이미는 공평하지 못한 처사다. 뿐만 아니라 동원력과 자금력을 가진 집단의 손을 들어주는 치졸한 행동이기도 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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