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승객들을 두고 먼저 현장에서 빠져나온 혐의로 구속 기소된 세월호 선장 이준석(69)씨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구형됐다.

27일 광주지법 결심공판 

검찰은 27일 오후 광주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임정엽) 심리로 열린 이씨와 세월호 승무원 14명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이씨가 선장으로서의 의무를 다 하지 못해 수많은 생명이 희생됐다”며 이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씨에게 부작위(不作爲·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에 의한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 등이 적용됐다. 살인 혐의가 무죄가 될 때를 대비해 예비적으로 특정범죄 가중 처벌법 위반, 업무상과실선박매몰, 선원법 위반, 유기치사·상 혐의 등도 적용했다.

또 검찰은 세월호 1등 항해사 강모(42)씨와 기관장 박모(53)씨, 2등 항해사 김모(46)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이들에겐 이씨와 함께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가 적용됐다.

3등 항해사 박모(25·여)씨와 조타수 조모(55)씨에 대해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도주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에 대한 가중처벌) 혐의를 적용해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나머지 승무원 9명은 유기치사·상 혐의가 적용돼 15~20년을 구형받았다.

이날 검찰은 “이들은 해운법에 의한 운항관리 규정에 따라 적극적인 구조 의무와 세월호 승객들에 대한 보증인적 지위가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사고 당일 오전 8시55~56분쯤 제주VTS 등과 교신한 내용으로 미뤄 이세월호의 침몰을 인식하고 있었다”며 “조타실 내 방송장비와 전화·비상벨·무전기 등 여러 방법으로 승객들을 퇴선 시킬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구형이란 형사 재판에서, 피고인에게 어떤 형벌을 줄 것을 검사가 판사에게 요구하는 일을 말한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 사형 구형에 대해 네티즌들은 “세월호 이준석 선장 사형 구형, 법원 가봐야 알지 ”,“세월호 이준석 선장 사형 구형, 사형은 좀 심한듯”,“세월호 이준석 선장 사형 구형, 결국 이렇게” 등의 반응을 보였다.

■ 다음은 ‘세월호 침몰’ 사건 후 이준석 선장에 관한 '제주투데이'에 실렸던 기사를 재조명 해본다.
( 2014년 04월 19일 (토) 21:20:44)

세월호 침몰 숨겨진 선장의 ‘두 얼굴’
이준석씨 10년전 본지 인터뷰 공허한 외침으로
“배에서 내리면 섭섭해”…오늘도 내일도 배와 함께”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선장 이준석씨와 3등항해사, 조타수 등 선사 직원들이 승객을 뒤로 한 채 먼저 탈출한 가운데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이 관심을 끌고 있다.

버큰헤이드호

1852년 영국 해군의 수송선 '버큰헤이드호'가 승조원과 그 가족을 태우고 남아프리카를 향하여 항해하고 있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은 모두 630명 그 중 130명이 부녀자였다. 아프리카 남단 케이프타운으로부터 약 65Km 가량 떨어진 해상에서 배가 바위에 부딪쳤다. 시간은 새벽 2시. 승객들은 잠에서 깨어나면서 선실에는 소란이 일어났다.

사고 당시 승객은 630여명, 구명보트는 단 세척, 승객의 반도 안되는 180명밖에 구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다.

그 당시 함장 시드니 세튼 대령은 전 병사들에게 갑판 위에 집합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은 함장의 지시에 따라 마치 아무런 위험도 없는 훈련시처럼 민첩하게 행동하여 부녀자들을 3척의 구명정으로 하선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구명정이 그 배를 떠날 때까지 갑판 위의 사병들은 관함식을 하고 있는 것처럼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구명정에 옮겨 타고 생명을 건진 부녀자들은 그 갑판 위에서 의연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흐느껴 울었다. 결국 세튼 대령을 포함한 436명의 군인들은 그대로 배와 함께 수장됐다.

누구나 명령대로 움직였고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 명령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모두가 잘 알면서도 마치 승선 명령이나 되는 것처럼 철저하게 준수했다

이후 ‘버큰헤이드호 전통’은 각종 해상 사고에서 불문율로 자리잡았다.이후 ‘버큰헤이드호 전통’은 각종 해상 사고에서 불문율로 자리잡았다.

세월호 침몰 사건 직후 이준석 선장 모습 

이를 접한 누리꾼들은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 베큰헤이드호 전통과 완전히 반대네”,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 버큰헤이드호 전통을 조금이라도 본받았다면 실종자 줄일 수 있었을 텐데”, “버큰헤이드호 사령관 너무 감동적이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세월호 이준석 선장의 지난 10년 전 인터뷰기사다.

2004년 1월 1일자 제주투데이 기사

 

■ 다음은 2004년 이준석 선장을 소개한 제주투데이 기 사를 재조명 해본다.
( 2004년 01월 01일 (목) 00:00:00 )

서해 노을위에 詩를 쓰다
새해 첫 뱃길 청해진 고속훼리1호 이준석 선장 

등대, 갈매기, 넓은 갯벌, 그리고 해조음…

제주-인천 15시간 항해
안전항해 위해 늘 긴장

이준석 선장
“새해에는 우울한 소식들보다는 일출처럼 힘차고 희망적인 소식들이 가득한 한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주와 인천을 왕복하는 여객선 청해진 고속훼리 1호 이준석 선장(58·부산시 동래구).
30여년 동안을 바다사나이로 살아온 이 선장은 바다에서 맞이하는 일출과 일몰을 떠올리며 새해는 일출처럼 활기찬 한해가 되길 기원했다.
이 선장은 20대 중반에 우연찮게 배를 타게 된 후 20년 동안은 외항선을 탔고, 최근 10년은 여객선 선장으로 바다와 함께 하고 있다.
바다에서 생활한 시간이 많았던 만큼 험난한 고비도 많이 넘겼다.
“처음 탄 배가 원목선이었는데 일본 오키나와 부근 해역에서 배가 뒤집혀 일본 자위대가 헬리콥터를 이용해 구출해 줬다"며 “그때 만일 구출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그 때 일을 회상했다.
이어 “바다에서 태풍을 만났을 땐 ‘다시는 배를 타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을 했지만 사람이란 간사해서 그 위기를 넘기고 나니 그 생각이 없어져 지금까지 배를 타고 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배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은 만큼 배에서 내릴 때면 섭섭한 마음에 다시 한번 배를 쳐다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 후 여객선 선장이 돼 처음엔 제주와 부산 노선을, 지금은 제주와 인천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일반사람에겐 15시간이라는 운항시간이 길게만 느껴지지만 몇 달간을 배에서 지냈던 그에게는 짧은 시간이다.
그만큼 그가 바다에서 맞이한 일몰과 일출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해가 떠오를 때의 바다는 용솟음치고 들끓는 것 같지만 석양 때가 되면 조용하기만 하다"며 “어느새 인생을 정리하는 나이가 돼 옛일을 돌이켜보니 마음이 숙연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설날이나 추석 등 특별한 날을 가족과 보낸 적이 드물다"며 “이제는 가족들도 그런 것에 대해 서운해하지 않고 이해해준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씁쓸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신에 고향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여객선으로 실어나르며 내가 누리지 못하는 행복한 시간을 그들은 가족들과 누릴 수 있게 하는데 위안을 얻는다"는 이 선장은 “오늘도, 내일도 나는 배와 함께 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혼자라는 것이 익숙해질만도 한데 석양이 질 무렵이면 그에게도 어김없이 외로움이 찾아오는 것은 인지상정.

때론 가족들과 지내고 싶지만 가족들과 지내면 바다가 그리워지고, 바다에 있으면 가족들이 그리워져 매일 갈등을 한다.
그렇지만 이런 외로움과 갈등도 잠시, 어둠 속에서 운항해야하는 직업 특성상 긴장을 늦출 겨를이 없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작은 어선이 어디선가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위험은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늘 긴장하며 살아야하지만 그렇게 지내야 잡념도 없어진다며 오히려 지금의 생활에 만족스러움을 나타냈다.

10년전 이준석 선장 모습

갑신년 소망을 묻는 질문에 “청년들이 모두 직장을 갖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세상이 되고 여객선 승객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그는 한겨울 매서운 바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바다로 나가기 위한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다.


■ 그랬던 그가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들을 뒤로 한 채 홀로 탈출해 국민적 분노를 샀다.

   10년 전 “오늘도 내일도 배와 함께 하겠다”는 이준석씨의 말은 10년 뒤 공허한 외침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오늘 법정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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