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남북통일을 주변 국가들이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지 이것도 세밀히 분석해야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미,일,중,러) 모두 대찬성이라지만 남북통일이 자국에 미치는 영향을 속으로는 계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것도 직시해야 합니다."

북한편을 들어왔던 중국이 과연 한국이 제안하는 통일정책에 지지를 할런지 그 여부가 몇년 전까지는 논의의 대상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 통일정책이 중국 국익에도 절대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정설에 가깝다.

그래도 통일이 현실적으로 눈앞에 다가왔을 때는 중국만이 아니라 주변국은 한반도 통일의 손익 계산서를 놓고 돌다리도 두드리고 또 두드리면서 넘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분석할 것이다.

5월 23일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일본근기협의회:회장 김성대> 주최로 민단 오사카본부에서 "통일강연회"가 열렸다. 일본근기(近畿)기협의회라면 오사카를 중심으로 쿄토,나라,효고,와카야마,시가현을 일컫는다.

약 3백여명의 모인 가운데 김성대 회장, 하태윤 오사카총영사, 정현권 민단 오사카본부단장의 인사 다음에 김 영수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의 "남북관계 현안과 통일준비 과제"라는 주제 강연이 있었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


<남북관계 "현안">을 비롯한 모두 15개 과제로 나누고 또 그것을 각각 3개항목으로 나눠서 새로운 통일정책론을 알기 쉽게 유모어를 섞이면서 자세히 제시했다.

<한반도 통일을 보는 입장>의 과제에서 "겉으론 지지 속으론 계산" "현상유지의 선호" "한반도 통일이 가져올 불안정 회피"에서 서두의 발언이 있었다.

물론 남북 당사자간의 갈등의 골도 아주 깊지만 그 동안 애매모호하게 넘어가던 주변국가들의 속셈이 많은 화학반응을 이르키고 통일의 발목을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의 직시와 그 강조도 신선했다.

북한의 동상이몽격인 <북한의 생각>에서는 "김정은 <2018년 조국통일 대전략>" :전략전 요충지론, 핵무기 필수" "남조선 약점 적극 활용"과 <지금 북한> <최근 북한 체제 동향> <김정은 지시> 등에서는 어눌한 북한 사투리를 풍자적으로 구사하면서 북한을 파헤쳤다.

<김정은 지시>에서는 "남조선에 구걸하지 마라" "조국통일 준비에 앞장 서라" "국가재정 확충하라" 고 하면서도 남조선에 구걸하지 않으면 안될 북한 실무자들의 고뇌는 이율배반적인 모순의 북한 실태를 조명했다.

김정은의 반말과 저질의 욕에 가까운 명령과 지시 스타일은 최고 존엄만의 존재하는 북한의 실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고 "대한민국"이나 "한국"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북한에서는 "남반부"보다 생소하다는 사실에는 아직도 우리는 북한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고 필자 자신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통일의 길을 가야하고 많은 정책 속에서도 국가 대표로서 가장 최근에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한민국의 통일의 구상>은 <드레스덴 선언>이었다.

2014년 3월 28일 독일 드레스덴공과대학교 강연에서 발표한 3대 선언이다.
1. 남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문제부터 해결해 가야 한다.
2. 남북한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인프라를 함께 구축해 나가야 한다.
3. 남북 주민간 동질성 회복에 나서야 한다.

이념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벗어나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제안하고 있지만 북한은 강한 거부반응을 이르키고 있다.

강연 마지막 부분의 <통일+통이>에서는 "통일(統一)"은 "통이(通異)"의 이질성의 공존이며 "함께 사는 통일 추구"와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준비"는 제일동포가 일본에 살면서 부르짖고 있는 "공생(共生) 공영(共榮)"과 오버랩되고 있었다.

"소통의 시작은 소리입니다. 소리가 음악이 되고 그 음악이라는 예술과 문화가 소통의 매개 역할을
합니다. 미국에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보니 저의 어미니가 치매에 걸리셔서 삼대 독자인 저를 몰라보았습니다."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


두번쩨 강연을 맡은 예술의 전당 고 학찬 사장의 <예술과 소통, 그리고 통일>에 대한 주제 내용 중의 발언이다.

아들을 몰라보는 어머니에게 갖은 방법을 써도 허사였다. 마지막 수단으로 어머니가 평소 노래를 좋아해서 잘 부르시던 민요를 불렀다. 생기 없던 어머니가 기억을 되찾으면서 천천히 노래를 같이 부르더니 자기를 알아보드라고 했다.

예술의 전당 사장에 걸맞는 감동의 경험담은 장내를 숙연케 했고 스물 다섯번이나 직장을 바꿨다는 고 사장의 윗트에 넘치는 체험담은 미국의 뉴욕으로 옮겨지면서 또 다른 감동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뉴욕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뉴욕시와 교섭을 하고 한국어 방송을 담당했을 때 부자간의 대화 없는 갈등의 해소책을 상담소처럼 호소해 왔다고 힌다.

이민 1세의 피나는 생존을 위한 생활에 자식들과의 소통은 사치스런 시간이다. 그로 인해 일어나는 갈등의 늪은 깊어지기만 한다.

야채 가게이던 세탁소이건 일터에서 한국 노래만을 듣는 이민 1세와 2세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1세 중심이 아니라 아들이 좋아하는 노래 한곡이라도 불러보던지 아니면 가게에서 틀어보던지 해보라는 조언은 적중했다.

어떻게 이 노래를 아느냐는 아들의 놀라움과 접근의 소통은 바로 음악이었다는 것과 흑인들과 같이 가게를 운영할 때 그들 특유의 음악이 흐르는 가게 분위기에 거부반응을 이르키다가 같이 동조하면서 기울어지던 매상이 원상회복 됐다는 경험담은 설득력이 있었다.

"제주 사람은 새와도 소통을 합니다. 제주민요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임 그리워 운다.>"

제주 출신이고 음악 특기 장학생으로 제주 제일중학교에 입학했다는 고 사장이 구성진 목소리로 <너영 나영:너하고 나하고>의 제주민요를 부르니 내용도 꼭 들어맞아서 장내는 환성과 박수가 터졌다.

"이 규도 씨가 평양에서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을 때 박수만 치라는 당국의 사전 지시를 관중들이 듣지 않고 기립박수를 쳤다고 합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바로 음악 즉 예술이 주는 소통입니다"

1985년 <남북이산 가족상봉> 기념 남북예술공연에 당시 이화여대 음대학장이었던 소프라노 이 규도 씨가 "그리운 금강산"을 평양에서 불러서 커다란 성공적 화제를 모았다고 한다.

"김 영수 교수님께서 통이(通異)라는 말씀이 있었는데 한국의 음악은 단음입니다. 그러나 서양의 오케스트라는 제각기 다른 음이 하나가 돼서 하모니(조화)가 됩니다. 이 오케스트라와 같은 하모니도 필요합니다."

"부부가 되면 일심동체가 되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어제까지도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았는데 어떻게 갑자기 하나가 됩니까. 서로 다르드라도 그것을 인정해아 합니다. 남북 관계도 그렇습니다."

광의적인 의미에서의 동질성 속에서도 협의적인 의미에서의 이질성도 서로 인정해야 한다는 통일의 길이다. 강연 후, 모두 <우리의 소원>을 부를 차례였다. 고 사장이 잠깐만 들어달라고 했다.

" <우리의 소원> 가사 중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고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곡을 작곡한 안 병원 씨는 지난 4월 5일 날 돌아가셨습니다."

노래를 제지한 원포인트 강연이었다. 노래 <우리의 소원>은 1947년 안 병원 작곡, 부친 안 석주 작사로 발표되고 1948년 한국방송 삼일절 기념 특집 드라마의 주제곡이었다. 처음에는 가사가 고 사장 말처럼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다.

그러나 1948년 한국정부가 정식으로 탄생하면서 남북이 이념 갈등으로 격화되면서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 아니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변했다.

또 작곡가 안 병원 씨는 1974년 캐나다에 이민을 가서 살다가 2015년 4월 5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86세로 별세했다.

이 날 강연은 김 영수 교수의 전문가로서의 이론적 측면에서의 통일론과 고 학찬 예술의 전당 사장의 예술적 측면에서의 소통과 통일론이었는데 절묘한 조화 속에 감동을 주는 내용들이었다.



김 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서강대 정치학 박사. 제주대 교수 및 일본 게이오대 방문교수. 서강대 부총장. 북한연구학회 회장. 남북교류추진협의회 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다음은 고 학찬 예술의 전당 사장의 프로필이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TBC 동양방송 프로듀서.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상명대 방송예술대학원 겸임교수. 윤당아트홀 관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문화예술체육분과위원장.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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