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별 특성화에 다들 노력은 하지만 학교를 옮길 수는 없고 학생들은 제주시로만 가려고하니…"

내년도 신입생 모집에서 대규모 미달사태를 빚은 도내 한 실업계 고교의 단면을 보여주는 말이다.

제주도교육청에 따르면 내년 2월 도내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은 모두 6550명선. 이들중 대다수가 진학하게 될 도내 고교 입학정원을 살펴보자.

내년도 도내 10개 실업고 입학정원은 2070명. 이밖에 제주시내 일반계 고교에 2310명, 이외 지역 일반계 고교로 1470명이 진학한다. 그리고 제주관광산업고와 제주관광해양고 등 특성화고와 내년 신설되는 제주외고,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에 683명이 자리를 잡게 된다.

이를 합하면 내년도 도내 고교 전체 입학정원 6533명이 나온다.

산술적으로 단순히 따져보면 중학교 졸업생 6550명에 고등학교 입학정원 6533명이 얼추 비슷한 무게로 균형을 이룬 듯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실업계 고교를 우울하게 한다.

▲  대규모 미달…마음은 제주시로

지난 3일 마감된 도내 실업고 입학원서 접수에서 257명이라는 대량 미달사태가 발생했다. 지난해 86명이 미달된 것과 비교해서도 기대에 크게 못 미친 수치다.

특히나 제주시에서 원거리에 위치한 학교일수록 신입생 유치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 서귀포산업과학고가 정원의 절반 가까운 인원이 미달됐고 표선상고는 모집인원의 반을 못 채웠다.

정원 미달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크게 세가지 요인이 거론되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제주시 집중 현상'. 그리고 대학 진학을 위해 일반고교를 찾는 학생들의 선택이다.

이와 함께 원천적으로 해당 지역내 입학 자원이 부족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장의 목소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내 한 실업계 고교 교감은 "제주시에서 몇십분 통학거리면서도 산남지역 학교라는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한다"고 신입생 미달사태의 주원인을 제시했다.

이어 "신입생들마저도 3월말이면 제주시내 학교로 전학가려는 경우가 많다"며 입학한 학생수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모 실업고 교사는 "인문계를 못간 학생들이 가는 곳이 실업계라는 잘못된 인식이 여전하다"고 아쉬움을 밝히고 "다음달에 추가모집을 한다지만 그리 큰 기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실업계 고교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  실업고의 변신은 '무죄'

도내 실업계 고교 학생수는 지난 1997년 1만1526명을 정점으로 매해 하강곡선을 그렸다. 올해의 경우 7059명이 재학중이니 6년새 4467명(38.8%)이 줄어든 것이다.

사실 학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실업고 자체 노력이 적은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선호도를 높이기 위해 아예 학교명이나 과명을 바꾸는 가 하면 관광계열과 컴퓨터계열 등 소위 잘나가는 과를 신설.강화하는 등 신입생 끌어안기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실제 도내 실업계 고교에는 전통학과인 기계과, 전기.전자과 등과 함께 인터넷정보과나 토탈뷰티과 등 대학 전문학과를 연상케 하는 특성화 학과개편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학교관계자들은 이와 함께 직간접 방법을 총 동원해 신입생 유치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신입생 모집 미달사태에서 보듯 뿌리 깊은 인문계 선호 성향을 바꿔놓기에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대학들이 동일계 입학 전형 등을 통해 실업계 고교생들에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는 상황도 간과해선 안될 부분이다. 실제 실업계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이 86%대에 이르는 실정이고 보면 우수한 현장전문 직업인 양성이라는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 찾기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  지역 균형 발전만이 해결책

실업계 고교의 '위기론'이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제주만의 문제만이 아닌 전국적인 현실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도내 실업계 고교의 위기는 제주시 이외 지역에서 유독 크게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시 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특성화고 전환을 통해 극복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실제 제주시내에 자리한 특성화고인 제주관광산업고의 경우 내년도 신입생 모집에서 정원의 두배가 넘는 학생들이 몰렸다.

반면 남제주군 성산읍에 자리한 특성화고인 제주관광해양고는 150명 모집에 111명이 지원, 39명이 미달됐다.

이는 학교별 특성화나 학교 자체의 특성화고 전환이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저출산률의 영향에다 실업고 기피 현상으로 2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제주시 집중 현상'은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이기 때문이다.

강남 8학군의 폐해를 말하면서도 정작 8학군을 찾는 발길은 여전한 한국의 현실이 제주에서도 실업계 고교의 현실을 통해 투영되고 있다.

결국 위기의 실업계고 살리기는 학교의 자구노력과 더불어 제주도정 차원의 지역 균형 발전 전략이 성과를 거둘 때에서야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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