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홍기확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이란 책에 느낌 있는 일화가 나온다.

『아티스트 웨이』를 쓴 줄리아 카메론에게, 한 중년 여인이 피아노를 배우고 싶지만 ‘나이’ 때문에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고민하는 중년여인은 줄이아에데 한숨을 쉬며 말한다.

“제가 피아노를 칠 때 즈음이면 몇 살이나 되는지 아세요?”

그러자 카메론이 대답했다.

“물론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배우지 않아도 그 나이를 먹는 것은 마찬가지죠.”

나는 서귀포시청의 유일한 공무원 밴드, 『메아리』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회장이라고 해봤자 다른 멤버들보다 큰 역할은 없다.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드럼을 늦은 나이에 배워 이제 2년 남짓 되어간다. 두려움 반, 걱정 반으로 밴드의 문을 두드린 게 아직까지 상쾌하고 신선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메아리』의 회장을 하다 보니, 주변에서 밴드에 동참하고 싶다고 건네는 얘기가 많다. 하지만 막상 가입신청서를 들이밀면 겁부터 먹는다. 악기를 다룰 줄 모른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악기를 배우는 등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핑계거리를 늘어놓는다.

계획보다는 오히려 무언가를 해야 한다. 무언가를 해야 할 시간에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큰 문제다. 계획을 세우고 만족하는 것은 씁쓸한 자기 위안이자,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에 대한 의지의 발로에 불과하다.

계획을 세우고 있는 지금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겠지만, 격렬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계획을 세우는 시간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

비단 악기뿐만 아니다. 생활의 탄력은 취미에서 생겨난다. 바쁜 일상의 청량음료를, 무미건조한 일상에 조미료를 뿌려야 한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나이는 먹는다.

큰소리로 외치지 않으면 메아리는 울려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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