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9단’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팔순 나이인데도 풍채는 단단했다. 용모역시 단정하고 당당했다.

비유를 업그레이드 한다면 ‘80 청년’이라 할 만큼 위풍당당한 풍모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새삼 느끼게 했다.

거기서 재일 한국민단(在日 韓國 民團) 홍성인(洪性仁)상임고문에게 붙여진 ‘민단 호위무사(護衛武士)’라는 별명이 결코 명불허전(名不虛傳)이 아님을 느끼게 했다.

홍 고문은 최근 책을 펴냈다. 재일민단에서 활동했던 60년의 회한을 엮어낸 자전적 투쟁기록이다. ‘태극 깃발을 일본 하늘에’가 표제다.

지난 1일 제주시내 한 호텔에서 홍 고문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지인들이 모여 출판기념 축하연을 마련했다.

읽어본 바로는 ‘태극 깃발을 일본 하늘에’는 저자 개인으로서는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을 그린 인생 역정(歷程)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천대와 차별과 멸시로 점철된 재일 동포 사회의 피눈물 나는 질곡의 수난사가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사실상 재일동포는 경계인(境界人)이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세계에 속해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슬픈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 일본에서 받는 차별과 멸시가 서럽고 참담해도 의지 할 곳이 없다.

모국이라는 한국에서도 편견과 홀대가 심했다. 양쪽 모두에서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쓰리고 아픈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본인도 한국인도 북한인도 아닌 어정쩡한 무국적 떠돌이나 다름없다. 그러면서도 세금 등 공적 의무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러기에 홍 고문은 책에서 재일동포에 대한 일본사회의 차별과 멸시를 고발하고 있다.

조국 대한민국을 향해서는 재일동포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을 꼬집고 있다.

이 같은 차별적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홍 고문은 자기 확신에 차있다.

어떠한 천대와 수모가 있다고 해도 조국과 민단 조직을 위해 생의 마지막 날까지 일로매진(一路邁進)하겠다는 기개를 뿜어내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민족주의자라고 했다. 반공주의자며 이념성향을 보수라고 당당하게 정체성을 밝히고 있다.

조총련 사주를 받은 문세광의 저격으로 육영수 여사 서거 당시 혈서를 쓰고 조총련 사무실에 진입, 강력한 규탄 항의 농성을 서슴지 않았다.

조총련 세력을 밀어내고 민족학교 백두학원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담대한 배짱과 추진력과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다.

북한 만경봉호의 일본 기항 거부 시위 등에 앞장섰던 것도 이러한 이념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결기는 재일 민단 조직과 인연을 맺으면서 더욱 굳어졌고 확신 사상으로 뭉뚱거려 졌다고 했다.

홍 고문은 한림읍 명월리 출신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후 1959년 스믈네살 열혈청년으로 민단 오사카 본부 체육부와 청년부와 인연을 맺었다.

‘60년 재일 민단 호위무사’역의 출발이었다. 이후 민단지부와 중앙의 요직 등을 두루 맡았다.

재일동포 사회의 발전과 단합을 위해 ‘생활 확충 운동’, ‘지방참정권 획득 운동’, ‘민족교육 중흥 운동’에 앞장섰다. 온몸을 던졌고 온 마음을 쏟았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를 놓을 수 없다고 했다.

2011년 대한민국 정부가 그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이때 ‘조국은 나에게 제대를 명하지 않았다’는 유명한 소감을 밝혔다.

“조국에 충성하고 민단 조직 발전을 위해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영원한 현역’임을 자임한 것이나 다름없다.

‘태극 깃발을 일본 하늘에’서 홍 고문은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대한민국 재외국민 조직이나 단체 중 통반 조직까지 결성돼 있는 곳은 재일 민단 조직밖에 없다”고 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끈끈한 애국적 조직은 민단이 유일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조직을 동원, 조국의 치산녹화 사업, 새마을 운동, 도로확장, 상수도 사업, 전기시설, 주책건설 사업, 방위성금, 올림픽지원 등 물심양면으로 헌신했다고 했다.

그러나 조국은 재일동포들의 이러한 헌신과 노력을 잊어버렸다고 섭섭해 했다. 민단 조직을 ‘찬밥 취급 한다’는 속내도 드러냈다.

그러면서 이제는 조국 대한민국도 재일동포의 지위향상이나 권익옹호 등을 위해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주문이다.

재일동포사회에 민족대학 설립 등 민족교육 중흥을 위해 말만이 아니라 가시적인 관심과 실천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경계인이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과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조국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할 때라는 것이다.

‘태극 깃발을 일본 하늘에’를 읽으면서 재일동포는 누구인가, 한국민단이 존재해야 할 이유, 민단70년의 발자취 등을 더듬을 수 있었다는 것은 소득이었다. 여간 큰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태극 깃발을 일본 하늘에’는 재일 민단의 영원한 호위무사로서, 민단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조국과 재일동포사회를 잇는 강력한 접착제와 아교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유명한 맥아더 퇴임사의 한 소절이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고 “조국은 나에게 제대를 명하지 않았다”고 했던 홍 고문의 감회가 맥아더의 유명한 퇴임사 소절과 묘하게 오버랩 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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