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위치한 온평리는

오름이나 하천이 전혀 없고 대부분이 암반으로 밋밋한 평원으로 이루어진 자연마을입니다.

혼인지 전설과 관련된 결혼한 곳이란 뜻으로 여온리라 부르다 온평리로 고쳤습니다.

제주도 해안 마을 중 해안선의 길이(6km정도)가

가장 길고 태풍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기도 합니다.

마을 축제로 혼인지를 테마로 한 '혼인지 축제'가

2010년부터 개최되고 있기도 합니다.

 

맹추위가 덥석 제주를 덮치고 잠시 따뜻한 하루가 찾아왔습니다.

제주시쪽에서 보면 온평리는 꽤 먼거리라 한 번 찾아가기가 어렵지만

혼인지를 찾은 뒤 온평리 해안길을 걸었습니다.

제주 설화에는 삼성혈에서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가 태어났고

세 선인은 수렵생활로 연명하다 벽랑국(碧浪國)의 세 공주를 맞이하여

이 땅에 농경생활의 시작으로 삶의 터전을 개척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주도 사람의 발상지이자 개국의 성지로 전해지는

고, 양, 부의 세 신인(神人)은 제주 최초의 주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람암질현무암으로 이어진 해안길은

바닷속 보물을 망사리에 가득 담는 꿈을 꾸는 해녀들의 숨비소리와

담을수는 없지만 돌고래가 바닷물을 박차고 뛰어 오르는 장관이 펼쳐집니다.

먹이가 풍부한지 왜가리들은 떼를 지어

아무런 근심, 걱정없이 풍성한 아침을 맞이합니다.

이어지는 환해장성 앞으로 해풍에 오징어를 말리는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농·어촌 마을이 만들어내는 모습은 정겹기만 합니다.

벽랑국의 세공주가 도착한 곳으로

탐라의 개국신화이자 제주도 삼성신화(三姓神話)의 발원지

 

오곡 씨앗을 뿌리고 소와 말을 기르니 이때부터 제주도 농경생활이 시작되었고

세 신인의 후손인 고(高)씨, 양(良)씨(후에 梁씨로 바뀜), 부(夫)씨는 날로 번성하여 탐라국으로 발전하였다.

바로 이 곳이 벽랑국의 세 공주가 도착한 곳으로 연혼포라 합니다.

아울러 신방을 차린 '신방굴'이 온평리 혼인지마을에 남아 있습니다.

환해장성은 제주도 해안선 약120km에 걸쳐 돌로 쌓은 성으로 현재 10곳에 남아 있다.

1270년(고려 원종11) 몽고와의 굴욕적인 강화에 반대하는

삼별초군이 진도에서 항거하다 함락되고 난 후

이들이 탐라도로 들어오는것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이 그 시초이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보수, 정비를 하면서 왜구의 침입을 방어했다.

온평 환해장성 제 4지점과 신산 환해장성이 연결됩니다.

온평지구 지진해일 발생시 대피 행동 요령에 대한 안내글이 있네요.

쓸쓸한 겨울 도로변에는

늦게까지 피어 있는 '산국'이 큰 웃음을 선사해 좁니다.

바닷바람이 얼마나 센지 우묵사스레피가 한쪽 방향으로 누워 있네요.

'삼춘, 손지덜 생각허영 맹심허멍 물질허게 마씸...'

애틋하면서도 정이 가득 담겨있는 현수막이 걷는 내내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길가에는 부끄러운듯 고개를 숙인 수선화가 고운자태로 피어 있습니다.

수선화잎 사이로 숨어 노란얼굴을 살짝 드러낸 관상용으로 재배하는 '달걀가지'가

바닷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탐나는 열매로 유혹합니다.

해안길을 걷다보니 온평리마을을 지나 이웃마을 신산리마을에 도착했네요.

 

지난 11월 10일..

제주 제2공항 부지로 '신산리' 발표

충격으로 다가온 마을은 난리가 났습니다.

마을주민들이 반대해도 국책사업을 철회하지는 않을테고...

'온평리 공항 설립 반대'

온평리 사람들은 평생을 농사를 지으며 농사 밖에 모르고 살고 있는 농민인데

농토라는 생계수단이 없어지면 어떻게 살아가겠느냐...

제주 제2공항 예정지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온평리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휩싸였습니다.

'혼인지마을 온평리라는 이름이 사라져 버릴까?'

안타까운 우려를 합니다. 

 

농토를 잃은 마을 주민들은

고향을 등져 마을을 떠날 수 밖에 없는 다가오는 현실은 가혹하기만 합니다.

고향은 늘 어머니 품 속 처럼 따뜻하고 어린시절 추억을 기억할 수 있는 곳이지만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애만 태웁니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