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고국 한반도에서는 대규모 한미군사훈련으로 북한이 상투적이고 신경질적인 막말로 우리말의 품위를 오염 시키고 있어서 일본에서 들을 때 불쾌하고 혐오감을 느낀다.
 
그리고 한국 정치계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제각기 공천을 빌미로 국회의원 나눠먹기로 또 다른 입싸움을 연일 치열하게 펼치고 있어서 더 많은 불쾌감을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조국을 이웃에 두고 지금 일본 오사카에서는 여자 축구 리우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벌이는 시합에서 동포들은 목이 터져라고 "대~한~민~국!"을 연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응원의 보람도 없이 어제(7일)로서 한국은 리우올림픽 본선 진출에서 탈락했다. 한국, 북한, 일본, 중국, 베트남, 호주 5개국이 참가한 예선은 각 5시합 중 4시합이 끝났다.
 
상위 2개팀이 본선 진출의 자격을 얻는데 결과는 호주는 전승으로 12점, 중국은 3승1무로 10점, 북한은 1승2무1패로서 5점, 일본은 1승1무2패로서 4점, 한국은 2무1패로서 2점, 베트남은 전패로서 0점이다. 남은 1시합을 각각 치르지 않드라도 1,2위는 호주와 중국으로서 변함이 없다.   
 
한국에서는 여자 축구열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일본 동포사회에서는 모국의 긴박한 상태가 우려되면서도 거주국에서 개최되는 여자 축구 화제가 단연 톱이었다.
 
일본의 여자 축구 인기는 남자 축구 못지 않다. 일본의 여자 축구 월드컵 우승은 남자 축구도 해내지 못한 쾌거이며 아시아 축구도 하면된다는 자존심을 갖게 해줬다.
 
5년 전 3월 11일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이 다가오면서 일본의 각 매스컴은 특집 속에 이 기사를 다루고 있는 한편, 한반도 남북한 정세는 물론 폭력단 야마쿠치구미의 분열로 인한 내부 항쟁의 표면화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뉴스의 상위권에 속하고 있다.
 
이 상위권 뉴스에 속보처럼 끼어드는 것이 리우올림픽 본선 진출 아시아 여자축구 예선리그였다. 일본 선수만이 아니라 국민들까지 일본이 본선 진출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일본만이 아니라 참가국 선수, 감독, 국민까지 모두 그렇게 인정했었다. 자국에서 열리는 시합에 손님이라고 초청하고 모시고서는 자기들만을 위한 잔칫상을 그리고 있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한 북한 제재로 조선적의 일본 입국을 금지한다는 일본 정부의 방침이었다.
 
그러나 북한 선수의 입국은 스포츠와 인도적 견지에서 이 제재에서는 예외라면서 입국을 순순히 허락했다.  
 
이러한 제반 부가가치 속에서의 리우행 여자 축구 시합은 우리 재일동포들도 들떠있었다. 특히 동포 최대 밀집지인 오사카에서 개최되니 그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2월 29일 저녁 7시 35분부터 열린 한국대 북한과의 시합은 민단과 조총련은 조직적으로 응원단을 동원했고 얀마스타디움에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민단, 조총련은 여기에서도 남북으로 나눠졌다.
 
민단과 조총련 사이의 돌발 사건에 대비한 주최측이 배려였지만 응원하는 양측의 동포 발언은 남북한이 같이 리우올림픽에 참석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압도적이었다.
 
한겨울의 추위 보다도 더한 강추위 속에 양측의 응원단은 추위와 싸우면서 열렬한 응원을 했지만 남북한 선수들간의 시합은 무승부로 끝났다.
 
1대1의 무승부로 끝나서 아쉽기는 했지만 서로 1점씩 획득했으니 실력이 좀 떨어진 한국으로서는 다행이었다고 필자는 솔직히 만족했었다. 
 
두번째 시합이 열린 3월 2일 저녁도 추위는 여전했지만 상대는 최강팀 일본이었다.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과의 시합 때보다도 더 목이 터져라고 "대~ 한~ 민~ 국!"을 외쳤지만 1대1 무승부였다.
 
한국은 이때만 해도 강팀들에게서 무승부로 2점을 획득했으니 짙은 패색을 느끼지 못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일본이었다.
 
만만치 않는 상대였지만 호주에게 3대1로 지고 한국과 비겼으니 빨간 불이 켜지고 설마라는 단어가 일본 국민들 사이에 오르락 내리락했다.
 
4일 열린 3차전에서 한국은 호주에게 0대2로 완패하고 일본은 중국에게 1대2로 지고 말았다. 북한은 가까스로 베트남에게 1대0으로 이겼다.
 
3일 계속 저녁 7시 35분터 열린 시합을 관전하면서 응원을 했던 필자는 물론 동포들은 응원피로에 쌓이기 시작했다.
 
7일은 중국과 오후 4시 45분부터였는데 필자는 일을 마치고 후반전부터 얀마스타디움에서 한국과 중국 시합을 관전했다.
 
전반전에 1대0으로 지고 있던 한국은 끝내 한골도 넣지 못하고 경기를 끝냈다. 한국의 패배로 저녁 7시 35분부터 열린 일본은 베트남과의 시합에서 그 결과에 상관없이 일본 스포츠신문처럼 패전의 종전 속에 소화시합을 벌여야 했다. (결과는 일본이 6대1의 압승)
 
황금의 저녁 7시 35분 일본 시합 전 중계했던 NHK TV가 리오올림픽 본선 진출에 탈락한 일본은 지금부터 다시 새로운 시작이라는 자위적인 의미 부여의 해설은 듣는 사람으들이 측은할 정도였다.  
 
북한도 호주에게 1대 2로 패해서 9일 일본과의 시합만을 남긴 상태이지만 북한과 일본은 리우올림픽 본선 진출에서 탈락했지만 양측 모두 질 수 없는 자존심 시합이 남아 있다.
 
한국은 9일 오후 4시 45분부터 4시합 전패를 한 베트남과의 최종전을 남기고 있지만 이날은 비바람의 날씨라고 한다. 소화 시합에다 죄송하지만 베트남은 최하위 팀이다. 
 
가뜩이나 응원 피로증후군에 걸린 동포들의 발길이 뜸해질 것이 걱정이다. 이것은 필자 자신의 자문이기도 하다.
 
단 시일 내에 5시합을 치르는 선수들의 피로도 그렇지만 단 한번의 시합에서도 짜릿한 승리를 안겨 주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응원했던 동포들은 솔직히 투정을 부리고 싶은 심정이다. 
 
이 응원 과정에서 필자 혼자만이 가슴 뭉클하게 느끼는 것이 있었다. 첫 시합 때부터 민단 오사카본부는 작은 깃봉이 달린 태극기를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응원하도록 했다.
 
시합이 끝날 때마다 태극기를 회수해서 다음 시합 때 사용해야 하는데 회수율이 아주 낮아서 다음 응원 때에는 모자랄까 걱정을 해야 했다. 4시합이 끝나고 보니 정말로 태극기는 거의 바닥이 나버렸다.
 
민딘 담당자들은 태극기가 다음 응원 때 모자란다고 투덜거리고 울상이었지만 필자는 그것이 즐거운 비명처럼
들려서 마음 속으로는 흐뭇했다.
 
태극기를 돌려주고 가라는데도 동포들이 그냥 갖고 갔기 때문이었다. 태극기는 다른 비품이나 소모품과 달라서 소홀히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은 동포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도 태극기를 사용할 수 있는 때는 극히 드물다. 작은 태극기이지만 모국에서처럼 국경일이나 경축일에 내걸지도 않으며 또 빈번한 행사 때도 거의 사용 안한다.
 
그러나 그 어느 날, 그 어느 한 때, 사용할 지 모른다는 의도나 아니면 응원 기념으로 태극기를 돌려주지 않고 그대로 갖고 갔다는 사실만은 명백하다.
 
일본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태극기를 소중히 여기면서 갖고 간 것은 태극기 사랑 바로 그것이고 모국 사랑이다.
 
제주투데이에 이번 연재로서 <김길호의 일본이야기> 500회이다. 리우올림픽 본선 출전 여자 축구 시합을 4시합 연속 관전했다.
 
"대~한~민~국!"을 목청 높이 응원하면서 태극기 사랑과 조국애의 동포 모습을 500회 기념으로 쓰기 돼서 필자에게는 또 하나의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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