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군 관계자의 전화를 받았다. 9월 경 세미나를 개최하는 데 해군기지 ‘민군협력방안 과제’라는 주제로 발표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다른 섹션은 몰라도 이 부분은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해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나는 일단 해군기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군 관계자는 이미 기지는 건설됐고 비판적인 이야기는 이미 다 끝난 마당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취지로 대화를 이어갔다.

김동현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연구실장

나는 만약 주제발표를 한다면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해군이 자행한 불법, 탈법적 행위에 대해서 해군참모총장 명의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발표를 하겠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난색을 표했다. 이왕 건설이 된 마당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그런 발표는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민군 협력 방안을 이야기하면서 비판적 이야기는 곤란하다는 것도 그렇고 주제발표의 내용에 대해 일종의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는 것 역시 불쾌했다.

무엇이 ‘군인정신’인가

군은 변하지 않았다. 갈등의 원인 제공자였던 군의 태도는 여전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군인정신’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전 내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초대된 고권일 해군기지반대대책 위원장은 해군기지 건설과정에서 있었던 해군 측의 행태에 대해서 자세히 털어놓았다. 마을 잔칫날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난 영관급 장관은 ‘군인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면서 부하들에게 소위 ‘원산폭격’을 시켰다고 한다. 한 장교는 동네에서 마주친 주민들에게 자신이 배운 것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며 계급장 떼고 한 번 붙어보자고 을러대기도 했다고 전했다. 해군의 행동을 고권일 위원장에게 전해 들으면서 나는 동네 조폭을 떠올렸다. 식당에서 무전취식을 하고 나서 윗통을 벗고 문신을 보여주며 행패를 부리는 동네 조폭. 한때 경찰은 ‘동네 조폭’을 근절하겠다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선 적도 있었다.

주민들은 지금도 해군의 ‘조폭적 행동’에 치를 떨고 있다. 군이 민군 협력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반성하고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군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이미 해군기지가 건설되었으니 비판적인 이야기는 곤란하다는 군 관계자의 설명은 군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요즘 송중기와 송혜교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인기몰이다. 드라마에서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군인의 모습을 그려진다. 비록 진급이 안 되더라도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군인. 끈끈한 전우애를 가진 군인. 우리 국민들이 군에게 바라는 모습은 과연 무엇인가. 최소한 위력으로 주민들을 위협한 동네조폭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군의 일상적 폭력에 노출되었던 강정 마을, 그리고 주민들을 그들이 지켜야 할 ‘국민’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이뤄져야 한다.

파괴된 공동체.... '반성없는 해군'

해프닝처럼 끝나버렸지만 만약 발표 기회가 주어졌다면 나는 해군이 그간 강정마을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행한 위협적 행동을 나열할 생각이었다.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발표는 제대로 이뤄졌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발표문 수정 요구를 하진 않았을까. 해군기지가 현재적 사건인 이유는 일상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던 군이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제주 사회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다. 한마디로 해군기지는 제주도민의 희생과 눈물을 치르고 준공된 셈이다. 해군기지 건설로 강정마을 공동체는 붕괴되었다.

흔히 강정 해군기지 건설 논란의 시작을 마을 주민들의 찬반 논쟁으로 인한 갈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해군기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4강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문제 등을 살펴봐야 한다. 강정 해군기지는 단순히 제주라는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강정이라는 구체적 지역에서 벌어진 세계사적 문제다. 강정 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졌을 때 세계적 석학 노암 촘스키도 이러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강정 해군기지 문제에 주민과 제주도민 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 26일 제주해군기지 완공식이 열린 강정, 강정마을회는 생명평화문화마을 선포식을 진행했다. 사진은 선포식 후 경찰에 둘러싸인 주민들과 평화활동가/ 제주투데이 DB

갈등의 골이 깊다. 주민들은 지금도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하지 않는다. 26일 생명평화문화마을 선포식이 열린 것도 이의 연장선에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해군기지 준공으로 앞으로 4천명의 군인들이 상시적으로 주둔하게 된다는 점이다. 반대와 반대를 물리적으로 저지했던 군이 한 마을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마치 제주 4․3이 끝난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마을에 살아야 했던 역사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원희룡 지사도 후보 시절 강정마을 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공약 실천은 요원하다. 해군기지는 준공됐지만 갈등은 여전하다.

제주해군기지 논란의 시작부터 살펴보자. 제주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해방직전 패전이 짙은 일본군이 결7호 작전이라는 일종의 옥쇄작전을 펼치면서 제주를 군사요새화 한 적도 있다. 일단 이 부분은 제외하자.

제주해군기지 가능성을 언급했던 경향신문 기사

경향신문 1969년 6월 6일자에는 당시 열렸던 한미 국방회담 내용을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정부가 해군기지 후보지로 제주도 등을 제의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에는 해군기지뿐만 아니라 공군기지 건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실질적으로 제주를 미군의 공군기지와 해군기지로 제공하겠다고 제의한 것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박정희, 1969년 제주 미군 해군․공군기지 제공 의사 밝혀

제주에 군사기지가 필요하다는 정부 논리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9년부터다. 하지만 이런 논의들은 구체적 계획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 합동참모회의에서 제주 해군기지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지역 사회의 반발과 당시 국내외 정세 등으로 실천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해군이 ‘대양해군’의 필요성을 내세우면서 해군기지 건설 계획이 확정됐다. 당시 논리 중 하나는 중국과의 해상 분쟁 등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초 국방부는 안덕면 화순항에 해군기지를 지으려 했다. 하지만 지역주민이 반발하자 다른 지역을 찾기 시작했다. 이때 거론된 지역이 남원읍 위미리와 강정마을이었다. 해군기지 건설 소식이 전해지자 지역 주민들은 반대했다. 민선 4기 김태환 도정이 들어서면서 이 같은 움직임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결정적인 것이 2007년 4월 26일 열린 강정마을 주민 임시총회였다.

이날 강정마을 주민 86명이 참석한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를 선언한다. 강정마을회가 해군기지 유치를 선언하면서 제주도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5월에는 건설지역 선정을 위한 여론조사를 진행했고 후보지 3곳 중에서 강정의 찬성률이 56%로 가장 높았다. 여론 조사를 근거로 국방부는 6월 8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선정 사실을 통보했다.

당시 문제가 됐던 것은 임시총회의 절차적 정당성이었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중심으로 반대대책위가 꾸려지고 마을 총회를 다시 열렸다. 해군기지 찬성을 선언한 마을회장을 해임한다. 이것이 2007년 8월 11일의 일이다. 불과 4개월 만에 마을 주민들의 의견이 해군기지 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선 것이다. 이때부터 반대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지역 주민들간 갈등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갈등은 강정 마을로 끝나지 않았다. 지역 사회에서 찬반 의견이 나눠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갈등의 시작, 원인 제공을 한 정부의 태도이다. 정부는 해군기지 반대가 심화되자 해군기지를 민군복합항으로 건설하겠다고 입장을 바꾸었다. 2008년 9월 11일의 일이다. 강정 해군기지 유치가 본격화된 지 1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9년 해군기지에 최대 15만톤급 크루즈 선박 2척을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민군복합항 건설에 대한 제주도와 국방부, 국토부 3자간 협약이 체결된다. 사실상 민군복합항이라는 정부의 절충안을 제주도가 받아들이면서 해군기지 건설논란이 되돌릴 수 없는 사태로 번진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해군기지 건설 논란이 벌어졌을 때 정부 측을 비롯한 찬성의 논리는 이런 것이었다. ‘국책사업에 무조건적으로 반대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국가안보에 필요한 사항이다. 나라가 없는데 제주도가 있을 수 있나, 그리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안보상 필요한 국책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극렬 좌파 세력으로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을 마치 보상금을 더 받아내기 위한 파렴치한 사람들로 매도하기도 했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반대의 목소리에 이념을 덧씌웠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은 고립될 수밖에 없었고 이들과 연대한 것은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국내와 평화활동가, 그리고 지금도 강정을 지키고 있는 문정현 신부님 등 가톨릭 사제들이었다.

제주해군기지가 완공된 후에서 매일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제주투데이 DB

 

돌이켜 보면 강정 주민들의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한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한 정당한 항의였다. 마을 주민들의 정당한 여론 수렴절차 없이 마치 군사작전 하듯이 일부 주민들만을 소집해 해군기지 유치를 찬성하고, 이것을 마을 전체 의견처럼 공표한 것을 문제 삼았다.

그리고 불행한 사실 하나는 이 과정에서 제주도정이 균형 잡힌 역할,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해군기지 건설을 마치 기정사실화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2009년 국방부와 제주도와 국토부가 민군복합항 건설에 협의한 것은 해군기지 건설에 제주도 스스로 명분을 준 셈이었다. 지역주민들의 반대 의견을 감안해 최대한 정부와 협상하고 지역 주민들의 입장을 전달하지 않았다. 시민단체가 당시 김태환 도지사 주민소환을 추진한 것도 바로 이에 대한 제주도정의 책임을 묻기 위한 시도였다. 주민소환 시도는 결국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끝났다. 하지만 이것은 지방정부의 존재 이유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도민의 준엄한 질문이었다.

강정마을은 여전히 '생명평화 강정마을'을 염원하는 글귀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제주투데이 DB

해군기지 건설이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서로 다를 수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하지만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정부는 정부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법의 이름으로 단죄했다. 목소리를 높여 항의해도, 경찰의 공권력 집행이 부당하다고 주장해도 엄정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며 구속하고 벌금을 매겼다.

권력은 힘을 가졌다. 우리에게 법치주의가 필요한 이유는 권력이 자신이 가진 힘을 행사할 때 법치주의에 입각해서 행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권력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엄격한 법의 잣대에 의해 집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9년 동안 강정마을에서 불거진 수많은 갈등은 법치주의에 입각한 공권력의 집행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며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강정은 이러한 헌법적 가치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제한된 초헌법의 지대였다.

해군기지는 건설됐다. 해군의 입장에서 보자면 조직이 늘어나고 자리가 많아졌다. 별 자리도 영관급 자리도 늘어났다.  하지만 그뿐인가. 해군은 지난 9년 동안 강정마을, 그 흙과 바다에 쏟아진 주민들의 눈물을 똑똑히 봐야 한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헌법이 국군에게 부여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지키는 일일 것이다. 각본에 맞춰 민군협약 방안을 마련하는 보여주기 식 행사를 계획하기 이전에 진실한 사과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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