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찾지 않으면 찾기 어려운 해장국 끓이는 화가의 가게. 현관에는 해장국 사진과 그의 전시회 포스터가 한 데 어울려 손님들을 맞는다 @변상희 기자

화가는, 해장국을 끓인다. 가마솥에 펄펄 끓여낸 육수에 갖가지 재료를 담고 뚝배기에 담아 내놓는다. 아직은 국물의 뿌연 김이 그리운 봄, 찾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그 골목 화가의 ‘해장국집’. 꽃샘추위의 찬바람을 뒤로 하고 문을 열었다. 두꺼운 해장국 냄새가 감싼 식당 안에 작은 그림들이 정갈히 걸려 있다. 해장국 끓이는 화가 ‘백성원’을 만났다.

해장국 끓이는 화가 '백성원'. 식당 메뉴와 그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변상희 기자

쉐프 백성원은, 아니 화가 백성원은 전시회를 준비 중이었다. 이달 19일에 시작되는 식당 안에서의 ‘상설전시회’. 작가라면 누구든 전시회를 마련하지만 그의 이번 전시회는 특별하다. 전업작가로의 작업을 잇지 못 했던 지난 10년의 세월이 담긴 전시회이기 때문이다. 청년 작가로 활동했던 2-30대를 넘어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고, 그는 ‘생업’을 이유로 붓을 오랜 기간 들지 못 했다. 그나마 식당이 자리잡고 나서 최근 3년 사이에 드문 드문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전시회를 앞두고 그는, 다시 20대 청년처럼 눈빛이 ‘반짝’였다.

“청년작가였을 때는 사람과 인간이 사는 세상이 그림의 주제였어요. 세월이 지나 지금은 ‘자연’입니다.”

파릇한 마음의 청년기, 그는 세상을 똑바로 보려 했다. 그래서 화폭에 담긴 건 사람이었고, 세상이었다. 그러나 살면서 경험한 ‘세상과의 충돌·갈등·고뇌’는 그를 ‘자연’으로 이끌었다. 누구도 정하지 않는 자신만의 길로 산길을 정했고, 혼자만의 시간은 치유의 시간이 됐다. 그는, 산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했다.

화가 백성원은, 주방에 들어가면 '쉐프'가 된다. 3대의 가마솥에는 그가 끓여내는 해장국의 '맛의 비결'이 담겨 있다. @변상희 기자

"햇볕과 바람소리, 새소리. 또는 말이 없는 산의 그 존재... 삶의 고단함을 잊게 해준 건 바로 그 자연이었습니다.”

마흔 다섯. 자연을 그려내는 화가의 그림은 지금 해장국 집 벽에 걸려 있다. 해장국을 끓여낸지도 어느 덧 6년차. 그전에는 중국집 쉐프이기도 했고, 호프집 사장이기도 했다. 인테리어 일을 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는 그의 해장국집 안에 담겼다. 사실 이제 그는 화가의 일과 해장국 끓이는 쉐프의 일을 분간할 필요를 못 느낀다. 어떤 의미에서 동질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음식도 예술이라는 말이 있지요. 해장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레트 위의 색들을 조합해 ‘어떤 컨셉’으로 그림 그리는가를 고민하는 것처럼, 해장국의 재료들을 조화롭게 모으면 ‘한 그릇’의 작품이 되는 것이지요”

주방 뒷편에 '한 평' 남짓한 그의 작업실이 있다. 그는 요리를 하면서도 기웃기웃 그의 그림을 본다. 다음 채색은 무엇으로 할지, 구도는 어떻게 정할지. 그가 해장국을 끓이며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다. @변상희 기자

화가의 고집이 해장국의 고집으로 이어졌다. 그는, 변하는 맛이 싫단다. 그가 고집하는 맛의 원칙이었다. 누가 요리하더라도 같은 맛이 날 수 있도록 연구했고, 그 고집을 믿고 가게 문을 넘나드는 ‘단골’들이 그의 가게 손님들의 대부분이다. 세상에 단 하나인 그의 ‘유화’ 그림처럼, 세상에 단 하나인 그의 해장국 맛이 손님들을 맞는 셈이다.

“아날로그를 남기고 싶습니다. 디지털이 넘치는 지금의 세상에서, 아날로그의 그림과 아날로그의 해장국 끓이는 작업을 오랜 시간 이어가고 싶어요”

이 바쁜 디지털의 세상에서 그는, 그가 찾았던 ‘자연’으로의 그 길을 해장국 집에 담아내고 싶단다. 속을 ‘뜨끈하게’ 달래줄 해장국 한 그릇과, 한 점의 그림.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그 안에서 마음의 순화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의 전시회는 식당을 안 하는 날까지 이어질 계획이란다. 아마, 그의 고집대로라면 우리는 ‘해장국’ 먹으며 ‘그림’을 관람하는 호사로운 경험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으리라.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용눈이 오름. 자신만의 길로 산과 오름을 다녔다는 그는, 결코 '한 모습'이지 않은 자연에서 치유를 얻었다 한다. @백성원, 용눈이오름 6호F Oil oc navas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