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시절 “인사 청탁하면 패가망신 시키겠다”고 했었다.

인사 청탁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 했으면 대통령의 입에서 그런 독한 말까지 나왔었겠는가.

인사 청탁은 부정부패의 사슬이다. 이를 빌미로 검은 돈이 오가고 이권이 거래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각종 사회악이 싹트고 자라난다.

국가 최고 통치자인 역대 대통령들이 인사 청탁의 폐해를 지적하고 근절을 약속해도 아직도 인사 청탁 문화는 견고하게 권력 주변에서 똬리 틀고 앉아 있다.

제주도 산하 지방공기업 제주개발공사의 신규 직원 채용과정에서도 예외 없이 ‘인사 청탁 파워 게임’이 진행됐었다고 했다.

제주 개발공사는 최근 상반기 직원 공개 채용을 했다.

171명 모집에 응시자가 2200명을 넘었다. 그만큼 청년들의 일자리 갈증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치열한 다단계 선발 과정을 거쳐 84명이 최종 선발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응시자 가운데 60여명에 대해 외부에서 인사 청탁이 들어왔었다고 했다.

도지사를 통해 30여명, 개발공사 임원진을 통해 30여명이 들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쉽게 내치기 힘든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강한 인사들이 부탁(?)을 해 왔었다는 것이다.

완곡 화법으로 ‘부탁’이지, 받는 입장에서는 사실상 은근한 ‘겁박’이거나 ‘압력’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청탁 거절 후 청탁 인사와의 관계가 껄끄러워 질수도 있을 것이기에 그렇다.

결과적으로 청탁을 했던 60여명은 모두 탈락했다.

청탁 명단과 관계없이 몰래 원서를 냈던 ‘지사의 조카’도 탈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결과로만 본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외부 입김을 몰아낼 수 있는 조직 수장의 강단과 배짱이 놀랍고 흔들림 없는 투명하고 객관적 선발 시스템 운영이 신선한 충격이다.

직원 신규 채용과 관련한 제주개발공사의 외부 입김 배제는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투명한 전형 시스템’ 운영의 결과라 했다.

역량 검증을 강화하기 위해 5단계 선발 시스템을 작동했다. 또 모든 전형 과정을 각기 다른 외부 전문기관에 맡기고 기출 문제도 각 전형 별로 다른 기관에서 마련하여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 했다.

특히 면접관 선정과 관련해서는 도내 연고가 없는 전문가 위주로 채용전문 기관에서 추천한 인사로 구성했다.

학연 지연 혈연 등 연고주의를 배격하기 위한 조치였다.

PT(프리엔테이션) 면접에는 블라인드 면접 방식을 채택해 면접관이 지원자에 대한 이력 등 개인 정보 사항을 제공받지 않는 상태에서 선입견 없이 객관적으로 평가 했다.

도지사나 개발공사 사장 등 임원진은 물론, 외부의 누구도 개입하거나 엿볼 수 없는 구조라 했다

당연히 인사 청탁 인사 등 외부의 입김이 들어올 여지가 원천적으로 봉쇄 됐던 것이다.

외부 인사의 청탁 명단에 들어있던 60여명 모두가 탈락한 것은 전형과정에서의 의도적 배제가 아니고 외부 입김이 차단된 상태에서 그들의 능력과 자질이 합격권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주개발공사 직원 채용 선발 시스템이 외부의 입김이나 청탁 등을 차단하는 강력한 방화벽 때문이라는 것은 여타 공공영역의 인사시스템 운영의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공사(公私) 조직에서 인사의 중요성은 백번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잘된 인사는 조직의 활력소가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조선조 22대 정조 임금은 강력한 인사 개혁정책인 탕평책(蕩平策)을 쓰면서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하고 올곧은 사람을 신임하는 것보다 더 큰 정사(政事)는 없다”고 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명언이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만사의 근본’이라는 인사는 다루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잘 달궈진 쇳덩이에 데듯 심한 화상을 입는 화근이 되기 쉽다.

‘인사가 만사가 아니라 인사가 망사(亡事)’가 되는 인사 스캔들은 그동안 우리가 수없이 보아왔다.

정부 주요 보직에서부터 공기업 임원,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 인사, 지방 공기업 직원 채용에 이르기까지 얼룩진 인사 스캔들은 아직도 끈끈하게 부패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낙하산 인사, 청탁인사, 인사뇌물, 정실인사, 연고주의 인사 등등 부정적 이미지로 점철된 인사잡음은 그래서 문신처럼 일반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부패의 그림자다.

인사는 능력과 자질을 갖춘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조직의 능률을 극대화시키는 작업이다. 조직의 순기능은 여기서 출발한다. 구성원의 화합과 사기진작도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투명한 인사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에 선 보인 제주개발공사의 신규직원 채용 시스템이 신선한 충격의 바람으로 다가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공 인사 개혁의 모델이 될 수도 있을 터이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