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가 진동하고 있다. 한 여인의 치마폭에서 하수구처럼 쏟아지는 고약한 냄새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이 뿜어내는 악취인 것이다.

여기에 실려 대통령을 향한 국민적 좌절과 분노도 하늘을 찌르고 있다.

참담·허탈·절망·황당·경악 등 동원되는 단어는 하나같이 부정적 된 소리 뿐이다.

신뢰와 권위는 이미 바닥을 친지 오래다. 도덕성과 리더십 역시 만신창이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지 못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식물 대통령’이라는 조롱도 거침없다. 허수아비, 꼭두각시, 바지대통령 등등 국가통수권자에게 보내는 야유는 무례하고 살똥스럽다.

‘도대체 세상에 이런 나라가 있는가?’.

무너진 국민 자존심은 갈기갈기 찢겨져 거리에 나 뒹굴고 있다.

국격(國格)은 휴지처럼 구겨져 버렸다.

참 불쌍한 대통령이다.

왜 이지경인가.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처음과 끝이 모두 대통령에게 귀착 될 수밖에 없다.

우선 대통령의 인지부조화 현상을 비극의 씨앗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공적 기능과 사적 연줄을 구분 못하는 변별력 부족이 만들어 낸 현상이다. 독선과 독단, 고집불통이 자양분이다.

이너서클이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쥐락펴락 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줬기 때문이다.

여기서 ‘최순실 류’의 국정농단이 가능해진 것이다.

비명(非命)에 간 부모의 마지막을 경험했던 대통령의 트라우마가 공적기능에 대한 불신과 개인적 인연에 대한 무한 신뢰로 이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사인(私人)이 아니다.

국가를 경영해야 할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중차대한 역할이 있는 것이다.

이너서클이나 사적 연줄을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당위가 여기에 있다.

대통령은 그러질 못했다. 국가경영의 열쇠를 이너서클이나 사적 인연에 맡긴 꼴이다.

현명하고 유능한 전문가를 멀리하고 헤헤거리며 손바닥이나 비비는 소인배들을 가까이 했다가 스스로를 망치고 나라를 거덜 나게 했던 역사적 교훈을 지나쳐버린 것이다.

‘최순실의 치마폭 수렴청정(垂簾聽政)’도 여기서 비롯됐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호가호위(狐假虎威)식 국정농단이 활개를 치게 된 것이다.

오죽해야 ‘우리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이라는 황당하고 엽기적인 어록이 코미디 소재로 등장했겠는가.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 소속이었던 박관천 전 경정은 “우리나라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최순실 전 남편),3위가 박근혜대통령”이라고 주장했었다.

지난 2014년 ‘정윤회 국정개입의혹 사건’과 관련한 검찰 수사과정에서 한 말이었다.

박전경정은 지난 28일, 한 종편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되풀이 했다.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의 개연성을 유추하기에 충분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전 남편을 비롯한 ‘최순실 일가’가 박근혜 청와대에 똬리 틀고 앉아 대통령의 심사를 농락하며 국정을 요리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최순실 의혹’이 불거지면서 그동안 대통령 발언의 신뢰성과 무책임성에 대한 성토도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대통령은 야당시절인 지난 2007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난했었다.

‘4년 중임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헌법 개정 논의 제안’에 대한 반격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제안 회견을 지켜본 당시 박근혜 야당 전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다. 국민이 불쌍하다.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고 날을 세워 힐난 했었다.

그런데 지난 24일 박근혜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 국민여망을 담은 개헌안을 마련 하겠다”고 깜짝 제안했다.

임기 13개월을 남겨놓은 노 대통령의 헌법 개정 제안에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던 박대통령이 대통령선거 14개월을 앞둔 시점에서 개헌 제안을 한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참 나쁜 대통령’이라 할 것인가, ‘참 좋은 대통령’이라 할 것인가. 여간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을 덮고 가기위한 국면 호도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 불쌍하고 불행한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동정론 같기도 하고 비아냥 같기도 한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부메랑이 되어 대통령의 가슴에 되돌아와 꽂히는 발언은 또 있다.

2014년 12월, 대통령은 ‘정윤회씨(최순실의 전남편) 국정농단 내용이 담긴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과 관련 강한 반응을 보였었다.

“있을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아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청와대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 문란 행위’로 누구든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 될 경우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조치 할 것”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번 ‘최순실 의혹’에서는 대통령의 연설문 등 국가 정책과 국가기밀 등 극비 보안 속에서 작성했던 문서가 외부 개인인 최순실에게 고스란히 유출됐다.

연설문이나 홍보물만이 아니다. 외교·안보 사안을 비롯한 장차관 인사 등 국정 운영 전반에 광범위하게 개입했던 흔적과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국기문란사건이 아닌가. 일벌백계로 조치할 사안인 것이다.

문서유출의 국기문란 행위에 대통령도 개입했었지 않았는가.

국면호도용 땜질 식 사과 한마디나 변명으로 끝날 일이 아닌 것이다. 대통령도 진상조사나 검찰수사에 임해야 할 사안이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일벌백계의 법적 조치가 지체 없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최순실 관련 사과’에서 “취임 후 일정기간 동안 일부 자료들에 대한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말했다.

이것도 거짓일 공산이 크다. 정황상 그렇다.

‘드레스덴 연설문’의 경우 작성된 시점은 박대통령이 취임한지 1년이 지났을 때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대통령의 설명은 취임 1년이 넘도록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되지 않았다는 것이된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말장난이나 꼼수로 국면을 호도하거나 어물쩍 넘기려 하다가는 점점 자기말의 수렁에 빠져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할 일은 다른데 있지 않다.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며 진솔하게 사과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옳다.

특검은 물론 국정조사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 청와대 참모진의 전면개편 등 인적쇄신이 먼저다. 내각 총사퇴까지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민심의 흐름은 악화일로다.

대통령 하야나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거국내각이든 구국내각이든, 책임총리제든, 헌정중단이나 국정운영 중단, 국정공백의 비극을 막을 특단의 조치가 시급한 위기 상황인 것이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할 시간이 없다. 대통령은 당직을 버리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진실규명과 국정안정에 나서야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어야 산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손으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될 일이어서 그렇다.

여야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현 정권의 불행을 정치적 입지 확보나 영향력 강화에 이용하려는 농간을 부려서는 아니 된다.

국정안정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사태수습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임금은 배, 백성은 물,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엎기도 한다’는 정치 금언이 있다.

‘제왕학’의 교본으로 읽혀지는 당나라 대 정치 대화집 ‘정관정요’에 나오는 이야기다.

민심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거스르지 않는 대통령의 처신과 지혜를 주문하는 마음은 그래서 여간 안타깝고 조마조마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의 앞뒤가 캄캄하고 불안한 위기감이 몸으로 옥죄어 오는 느낌이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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