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0일부터 23일까지경주애서열린“제2회세계한글작가대회”에참가했을때 필자에게 주어진 주제는“한글로문학하기”였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미운오리새끼

김 길호

최근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의 대명사처럼 불리우는 재일동포의 인구현황을 보면 2015년 12말 현재 약 85만 3천명입니다. 일본 국적취득자를 제외하면 한국적이 45만 7천명, 조선족이 약 3만 3천명입니다.

약 7백만(외국국적포함)의 해외동포 중에 중국 약 258만명, 미국 약 223만명 다음이 일본이고 캐나다가 약 22만명입니다.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해외동포는 거의가 해방 후, 한국 국내에서 한글교육을 받고 건너간 한글 세대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일제식민지 당시부터 뿌리내린 자손으로서 한글교육을 받은 세대는 거의 없습니다. 생활용어인 일본어 속에 한국어는 모국어라지만 외국어나 다름없습니다.

1973년 일본으로 건너간 저는 1979년“현대문학” 11월호에 단편소설 “오염지대”로 이범선 선생님 초회추천을 받았습니다.

그후 이범선선생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1987년“문학정신” 8월호에 “영가(靈歌)”로 김동리선생님 완료추천을 받고 한국문단에 등단했습니다.

본국 지향의 문인이 되기위해서 한국문단에 응모한 것이 아니라 일본 국내에는 한국어(한글) 문예지가 하나도 없는 불모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제가 한글로 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김동리 선생님은 추천사에서, “특히 김길호 씨만 알고 있을 그곳 교포사회의 많은 소재를 그가 어떻게 처리해 나갈 것인가 우리의 기대는 자못 크다.”

김동리 선생님의 “영가”를 추천하면서 “추천의 말” 끝에 쓴 저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만이 알고 있는 재일동포들의 삶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 것인가, 아니 그것을 어떻게 고국, 한국에 알려야 할 것인가였습니다.

몇년  전에 오사카에서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왜 당신은 아직도 한국어로만 소설을 쓰느냐고, 아사히신문만이 아니고 지금도 주위에서 똑 같은 말을 듣고 있습니다. 일본어로 쓰면 모두 읽을 수 있는데 앞으로는 일본어로 쓰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물론 일본어에 대한 언어 장벽도 있지만 그 동안 단편소설도 쓴 적이 있고 다른 글들도 일본어로 쓰고 있으니 그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왜 한국어로만 쓰는가에 대한 물음에 저의 답변은 확고합니다. 이것은 저의 신념입니다.

달은 공전은 할 수 있지만 자전을 못합니다. 한국에 투영된 재일동포사회가 바로

그렇습니다. 한국보다 경제 수준이 높은 일본에 살고 있는 동포들을 부러움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과,뼈아픈 역사 속에 식민지 종주국에서 차별 받는 동포들의 삶에 대한 연민의 정이 교차하는 이율배반적인 시각이 재일동포에 대한 고국의 인식입니다.

이 피상적인 부조리에 대한 심층분석의 결여된 채 부러움과 차별에 대한 연민의 정의 시각론은 화석처럼 굳어져서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달이 베일에 싸인 뒷면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처럼 동포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한글로 문학하기는 우리 글로 써서 바로 동포사회의 이 부조리의 뒷면을 파헤쳐서 고국에 알려야 하겠다는사명에 가까운 신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토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생산품은 한국인의 체질과 생활에 맞기때문에 국산품 애용캠페인을 벌일때 잘 사용했던 관용구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제품을 외국에 수출해야 우리나라가 살 수 있기때문에 최근에는 별로 신토불이라는 단어를 쓰지않지만, 지방에서는 자기고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판매할 때 지금도 사용하고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신토불이라는 단어대신 지산지소(地産地消)라는 말를 사용합니다. 누구나 알기 쉬운 단어지만 갖고 있는 의미가 가볍습니다.

문학의 언어에도 저는 신토불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민족이든 그 민족이 갖고있는 고유언어는 그 민족의 혼이 서려있습니다.

식민지 종주국에서  3.4세대를 이어온 재일동포들의 한많은 삶이 문학으로 형상화 될 때에 우리말 이상의 표현 매개체는 없다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이렇게 한국어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 때로는 한국어로 쓰는 한글 세대이기 때문에 스스로 앞장서지 않으면 안될 의무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윤동주시가 1990년 일본교과서에 게재되었을 때 였습니다. 어느  신문기사에서짤막하게 보도된 이 기사를 읽었을 때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상범으로 투옥되어 옥사한 윤동주 시가 일본 교과서에 게재된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읽고 나서 일본에서 발행하는 민족지 신문들을 자세히 읽어보았으나 이에 대한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일간지였던 통일일보에 전화를 해서 윤동주기사를 자세히 게재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문사에서는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또 윤동주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기자가 없으니 그럼 저한테 써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오사카부이쿠노북지부” 사무부장 때였습니다.

5월 지부대회 준비때문에 무척 바쁜시기였지만 교과서 발행처인 치쿠마쇼보(筑摩書房)에 연락하여 교과서를 증정받고 1950년 5월 15일부터 3회에 걸쳐 통일일보 문화란에 <일본고교검정교과서, 윤동주시소개의의미>라는 제목의 일본어로 연재했습니다.

교과서에는 일본의 여류시인 이바라키노리코(2006년 작고. 향년 80세)의 “한글에의 여로”에서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시” 11쪽을 발췌한 기사였습니다.

한글 세대가 없는 일본에서 도오시샤(同志社)대학 재학중에 사상범으로 투옥되어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사했다는 윤동주시인의 생애를 아는 동포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는데 제가 쓴 기사는 동포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동 대학 출신 동포모임인 “도오시샤교우회코리어클럽”은 1992년 2월 “윤동주 추도회”를 만들고 다음 해에는“윤동주시비건립위원회”를 구성하여 1995년 2월 16일 윤동주시인이 옥사한 50주년에 동 대학교정에 건립한 시비제막식을 갖었습니다. 제막식때는 한국에서 윤동주 친족들과 문학평론가 김우종 선생님도 참가했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계기로 저희들은 1994년 2월부터 1995년 1월까지 매달 1회씩 “원코리어문학의밤”을 기획하였습니다. 오사카 통일일보지사에서 일제시대에 발표된 한국소설중에 한국 “KBS문학관”에서 방영된 작품 김동인의 “감자” 나도향의 “벙어리삼룡이” 이효석의 “메밀꽃필무렵”  등 10명의 작품 12편을 상영과 함께 작품해설 등을 곁들여 많은 호응을 받았습니다.

일년간 상영을 마치고 8명의 단편 10편과 윤동주의 “서시” 이육사의 “청포도” 등 5명의 시 20편을 대역판으로 토쿄에 있는 출판사 신간사(新幹社)에서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제목으로 1995년 10월에 발간했습니다.

당시 김우종 “한국문학평론가협회”회장이 전 작품에 대해서 짤막하지만 “일제시대 민족문학의 흐름과 소개”라는 제목 속에 평을 해주셨습니다.

2007년 6월 13일오사카에서“한국문인협회”주최로“제17차해외한국문학심포지엄"과 “제16회해외한국문학상” 시싱식이 있었습니다.한국에서 김년균 이사장님을 비롯한 임원진들과 회원 36명이 참가했습니다.

그 동안 학회를 비롯한 제단체들의 주최로 한.일문학 혹은 재일동포문학에 대한 심포지엄과 교류는양국에서 개최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한국에서 문인들이 대거 참가해서 우리말 심포지엄을 개최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 날 해외한국문학상 대상자는 토쿄에 거주하면서 한.일 양국어로 작품 활동을하시는 왕수영 시인과 제가 동시 수상을 했습니다. 저는 수상의 기쁨보다는 한국문인협회가 일본에서 우리말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는 사실이 경이로웠습니다.

어느 외국보다도 가장 먼저 개최하여야 할 곳이 일본이었습니다. 물론 지리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한.일 양국의 역사적인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이지만 그 관계가 걸림돌이 되고 있었습니다. 한글 세대가 없는 동포사회는 1세가 10% 이내로 줄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 독자가 없는 일본에서 한국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문학적인 의미보다 우리말 지키기일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자랑스럽고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2007년 월간문학8월호에 수상자 신작 “집행유예”를 게재하면서 수상소감에서 시상식이 있던 날 저는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된 느낌이라고 썼지만, 오늘 경주에서 “한글로 문학하기” 주제를 발표하면서 오늘은 고국에서 그 말을 재음미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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