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멍’은 ‘어머니’라는 뜻의 제주말(語)이다.

‘제주해녀’는 바로 ‘제주어멍’으로 불러도 무방하다.

척박한 환경의 ‘바다 밭’이나 ‘빌레왓(돌밭)’을 일구어온 강인한 개척정신으로 제주를 먹이고 키워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 1일 제주해녀 문화가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할 수 있었던 것도 인고(忍苦)의 세월을 엮으며 억척스럽게 삶을 개척해온 제주여성의 주체적 역할을 세계가 인정했기 때문이다.

제주해녀문화는 척박한 토양과 거친 파도와 싸우며 살아온 강인한 제주여성들의 빚어낸 삶의 영역이며 형상이다.

거기에는 이승과 저승이 공존하는 세계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거친 바다와 싸우며 생존 경쟁을 해왔던 눈물겨운 한의 역사가 배어 있다.

뒤웅박 하나에 의지해 몇 길 물속에서 숨을 참으며 작업을 하다가 숨이 끊어질 듯 물길을 솟구치며 뿜어내는 ‘숨비 소리’는 죽음을 뛰어 넘은 복받친 절규나 다름없다.

그것은 신비스런 음성이었다. 범접 할 수 없게 폐부를 쏟아 파도를 잠재우고 바다를 울리는 휘파람 소리였다.

‘너른 바당 앞을 재영/ 혼질 두질 들어 가난/ 저승길이 왔닥갔닥/(넓은 바다 앞을 재어, 한 길 두 길 들어가니, 저승길이 오락가락’했다는 해녀 민요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처절한 삶의 경험을 노래한 것이나 다름없다.

젊은 시절 제주에서 몇 해를 보냈던 빼어난 원로시인 고은은 제주경험을 소재로 썼던 ‘제주도(濟州島·1976년 발간)에서 “해녀들은 그녀들의 경험 뿐 아니라 그 경험을 무(無)로 삼고 바다로부터 어떤 심해(深海)의 영감을 얻어 낸다”고 했다.

아마도 시인은 해녀의 작업에서 ‘이어도’를 생각 했을 수도 있다.

오락가락하는 삶과 죽음의 숨 막히는 작업을 하며 고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파라다이스의 영감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시인은 그의 시 ‘이어도’에서 ‘이어도 어디 있나/ 아무도 간일 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갔다/가서 돌아오지 않을 뿐/ 저기 있다/ 저기 있다/ 아니다 파도뿐이다/ 숨 막히는 파도뿐이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물질을 할 수 밖에 없는 숨 막히는 생업을 그려낸 것이 아닌가.

제주 해녀는 그런 생사를 넘나드는 강인한 모성을 갖고 있다.

거칠고 험한 바다 생태환경에 적응하며 바다를 가꾸고 장비 없는 물질(해저 작업) 기술과 해양지식과 작업 지혜를 축적했다.

그래서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로서 가정경제의 자양분으로서, 지역 경제의 도우미로서 세계 유례 드믄 여성 본능을 갖고 있다는 칭송을 받는 것이다.

사실 196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당시 3만명 제주해녀는 제주도 수산업 종사자의 60%를 차지했고 어획고의 50%를 점유했다고 한다. 제주의 중추적 산업 전사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 공동체의 버팀목이자 공익에 대한 헌신과 참여, 민주적 해양 관리 보전 운영, 노약자에 대한 배려와 봉사, 교육발전에 대한 기여는 제주해녀 문화의 아름다운 전설이다.

제주해녀 문화가 유네스코의 자랑스런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 될 수 있었던 당위도 여기서 비롯됐다 하겠다.

프랑스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르 클레지오는 제주해녀를 향해 ‘고통과 긍지가 섞인 감정’이라고 했다.

시인 허영선의 책 ‘탐라에 매혹된 세계인의 제주 오디세이’를 인용하자면 르 클레지오는 그의 글 ‘제주 찬가’에서 ‘제주에는 보람이란 감정이 있는 데 그것은 고통과 긍지가 섞인 것’이라 했다.

제주 해녀에 대해서다.

‘해녀는 실제로는 고기잡이의 프롤레타리아다. 하늘과 바다의 상황이 어떻건 매일 바다에 뛰어들어 조개를 잡는다.

오늘날 제주해녀의 대부분은 나이든 여성이다.

그들은 관절염 루머티즘 호흡기 장애를 안고 산다.

채취할 수 있는 양은 줄어들고 그들은 점점 더 멀리,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지탱하는 것은 보람, 즉 희생정신이다.

그들의 딸들이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은 다 그들 덕분이다.‘

제주 도정의 책임자들, 정책 입안 또는 추진 주체들이 심각히 들어야 할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제주해녀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 환호작약 할 때만은 아니라는 뼈아픈 조언으로 읽혀진다.

바다의 저임금 노동자 계급인 프롤레타리아 제주해녀에 의해 제주가 세계적 주목을 받는 인류무형문화 유산 상속을 받았다면 그에 걸맞는 보상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생색이나 내고 선전용으로 활용하며 거들먹거릴 때가 아닌 것이다.

점점 수가 줄어드는 제주해녀 육성 대책을 포함해서 질병해녀를 위한 과감한 의료 지원과 생계지원. 문화나 교통 등 최소한의 삶의 질을 향유 할 수 있는 지원을 통해 인류무형 문화 유산 등재의 자긍심을 갖고록 하는 것이 도리다.

제주도는 오는 14일 제주컨벤션센터에서 제주해녀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 유산 등재 선포와 해녀 헌장 발표 행사 등을 갖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빤짝 행사나 한 두 차례 관심으로는 부족하다.

앞서 인용한 허영선 시인의 책에서 프랑스 출신 배우이자 감독인 안나 주글라는 ‘제주바다는 제주여성들의 삶의 공간이면서 치유의 공간’이라 했다.

해녀만이 아니라 제주도 자체가 살아있는 신화로서 제주가 세계가 주목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조언도 했다.

살아 있는 신화, 해녀문화와 함께 신들의 고향인 제주의 문화 콘텐츠를 융·복합시켜 미래 먹거리 산업과 경제발전에 접목 할 수 있다면 제주해녀의 인류무형문화 유산 등재는 더욱 빛을 발하는 제주의 축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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