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통령인 딸이 아버지 대통령의 무덤에 침을 뱉는 꼴’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아버지 고(故) 박정희 대통령 이야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생전에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강압 통치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사후 냉혹한 역사의 심판을 받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사후 평가는 극과 극을 이루고 있다.

‘보릿고개를 돌파하여 경제 기적을 이룬 조국 근대화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는 쪽이 있는가 하면 ‘헌정을 파괴하고 인권 유린과 민주주의를 압살한 무자비한 독재자’라는 혹독한 평가도 있다.

타협하기 힘든 양 극단의 평가가 존재하지만 공(功)과 과(過)를 아우러 팩트만 놓고 보자면 ‘고도 경제성장을 이룬 역사상 가장 성공한 독재자’라 불러 무망할 터이다.

오늘의 풍요 속에는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산업화 세대의 피와 땀, 희생과 눈물과 공로’를 부정할 수 없다.

물론 독재의 화신으로 상징되는 유신 통치 또한 잊을 수 없는 질곡의 역사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어록은 그래서 역사 앞에 겸손하겠다는 표현으로 읽혀진다.

현직 박근혜 대통령은 이러한 역사적 평가가 진행 중인 고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다.

아버지에 대한 역사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따라서 최근 하수구처럼 쏟아지는 박대통령의 기괴한 국정 농단 스토리는 대통령의 자질과 자격 시비와는 별개로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는 불충과 불효의 패륜사건’으로 기록 될 수도 있다.

박대통령은 사실상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분노한 촛불 민심이 국회와 특검과 헌재를 에워쌌고 대통령은 거기에 갇혀 가위눌려 빈사상태다.

‘박근혜 권력의 몰락’은 그의 예사롭지 않은 성장과정과 거기서 형성된 인성, 양친을 비명에 잃은 비극의 트라우마에서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은 어린 시절부터 청와대에서 자랐다. 군력의 구중심처다. 거기서 18년간 권력의 단 맛을 껌처럼 씹으며 살았다.

권력의 목도리를 두르고 급신거리는 아첨꾼들에 둘러 싸여 공주처럼 살았다.

세파에 시달리기는커녕 세상물정을 알리도 없었다.

적어도 퍼스트레이디의 전범으로 이야기되는 어머니가 문세광의 저격에 숨졌고 부하의 총에 아버지를 잃기 전 까지는 그랬다.

어머니를 잃어 22살 처녀의 몸으로 어머니를 대신해 5년간 퍼스트레이디 역을 감당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권력을 누렸다.

고집·불통·독선, 선별된 극소수와의 강력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려는 성격형성이 이뤄진 배경이다.

‘원칙과 소신’을 강조하며 최고 통치권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선호하고 의심 많은 냉정한 성격은 아버지로부터 보고 배운 유전적 요소이기도 하다.

권력 몰락의 씨앗이 여기서 배태되어 자랐고 오늘의 불행을 가져왔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잘못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있었다.

인지 능력 부족과 지극한 자기애와 자기합리화가 지울 수 없는 문신처럼 마음과 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기된 탄핵사유에 대한 전면 부인도 여기서 비롯되었을 터이다.

사익을 겨냥한 강남 아줌마 최순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서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인지부조화 현상을 말함이다.

그래서 사익을 취한바 없이 정상정인 국정수행일 뿐이라는 대통령의 변명은 어처구니없는 자기합리화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 심리학자 마차(Matza)와 사이크(Sykes)는 “범죄자들은 먼저 자기 행동을 정당화 하고 합리화 한다”고 했다.

이른바 범죄 심리학의 ‘중화이론’이다.

자기행위에 대해 적절한 명분을 내세워 합리화 시킨다는 이론으로 자기책임을 부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통령의 탄핵사유 전면 부인도 이러한 범죄 심리학의 이론으로 다뤄야 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나라의 통치체제가 대혼란을 겪고 있는 탄핵정국이 가져올 후 폭풍이 얼마나 더 크고 강력한 토네이도 현상을 일으킬지가 걱정인 것이다.

탄핵사유가 헌재에서 인용돼 대통령이 파면되든, 아니면 기각되든 각각의 경우에 따라 대 격동이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청와대나 황교안 대통령권한 대행은 물론, 여야 정치권이 이 문제를 심각히 고민하고 해법을 마련해야 할 일인 것이다.

검찰이 딴전 피며 슬쩍 슬쩍 피의사실을 흘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이 하이에나 식으로 물어 뜯으며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선정주의 적 선동에 정치권이 부화뇌동해서는 곤란하다.

개인의 권력 쟁취나 당리당략적 무한 욕심 경쟁은 혼란을 더욱 부채질 하는 것이어서 그렇다.

정치 사회적 혼란을 잠재우고 정국의 안정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치권의 몫이고 구태를 버리는 일이다.

그만큼 정치권이 역할과 책임이 무겁고 중요한 때인 것이다.

여기서 박대통령의 결단은 더욱 중요하고 시급하다. ‘죽어야 산다’는 각오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다.

밥은 너무 오래 뜸들이다가는 태우기 일쑤다. 대통령의 결단도 마찬가지다. 너무 오래 붙잡고 있다가 게도 구럭도 잃어 버릴 수 있다.

더 이상 발가벗기고 여론의 매타작을 당한다면 대통령 개인이나 대통령직은 물론 국가의 품격이나 위신도 거덜 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고립무원이다.

한 때 ‘선거의 여왕’으로 부르며 치맛자락이라도 잡으려던 그 많던 정치꾼들은 지금 다 어디 갔는가.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이니 킹메이커니 하며 으쓱대던 이들은 어디로 숨었나.

권력이 있을 때는 빌붙어 침 흘리며 온갖 아양을 떨다가 권력이 쇠퇴하면 침 뱉고 돌아서는 염량세태(炎凉世態)의 야속함과 비겁함이 부끄럽고 씁쓸하다.

권력무상(權力無常)의 현실이 담즙(膽汁)처럼 쓰고 고약하다.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지만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라 했다. ‘물은 배를 띄우기고 하지만 뒤 엎기도 한다’.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는 ‘제왕학’의 가르침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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