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간 자리

비자림로에서 백약이오름으로 이어지는 금백조로

붉은빛을 머금고 가을햇살에 반짝이는 바람타고 물결치는 은빛억새의

출렁거림은 길게 이어진다.

한발짝 그냥 스치기엔 하늘빛 미소가 아름다운 이국적인 풍광은

한폭의 수채화를 그려내듯 가을빛이 내려앉았다.

백약이오름 맞은편 빈 공간에 주차를 하고 

움푹 패인 농로길 따라 거미오름(동검은이오름)으로 가는 동안

억새에 기생하는 꽃대와 꽃 모양이 담뱃대를 닮은 기생식물 '담배대더부살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군락을 이룬 '야고'의 홍자색 아름다운 빛깔

산에서 나는 박하 '산박하' 의 보라색 꿈은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구좌읍 송당리에 위치한 문석이오름은

송당리 높은오름과 종달리 거미오름 사이에 남북으로 길게 누워있다.

남서쪽과 북동쪽으로 입구가 벌어진 2개의 말굽형 분화구가 있는 복합형 화산체로

높이 291.8m, 비고 67m로 야트막한 오름이다.

3개의 봉우리가 연이어 생긴 펑퍼짐한 정상부는

목초를 심어 농경지로 이용되고 전 사면은 풀밭을 이룬다.

가파른 북사면 아래로 삼나무가 조림되어 있다.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푸른 초원의 움직임

유래는 확실하지 않지만 문석이란 사람이 살았던 오름이었을까?

제주 중산간이 주는 평온함 속에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오름이다.

부드러운 능선의 곡선미가 있는 여성스러운 '문석이오름'

거칠고 직선적이지만 진짜 제주를 느낄 수 있는 남성미가 넘치는 '거미오름'

바로 눈 앞에서 빨리 올라오라고 버티고 있다.

문석이오름과 맛닿아 있는 서록으로 오르면

제2깔대기(피라미드형 봉우리)를 먼저 보면서 오르게 되는데

정상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된다.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거미오름은

표고 340m, 비고 115m로 세개의 굼부리는

깔대기 모양 2개의 원형분화구와

삼태기 모양의 말굽형화구를 한 보기 드문 복합형 화산체로

전체적인 모양은 남서향으로 벌어진 말굽형화구이다.

 

높은오름을 향해 비상하는 독수리 2마리...

오름 아래는 바람 없는 가을날씨지만 오름 등성이마다

바람은 멈출줄을 모르고 모자를 날려보낸다.

제주 오름의 진가를 느낄 수 있는 오름은

4개의 봉우리가 뚜렷하고 정상은 서쪽의 피라미드형 봉우리다.

등성이 가닥이 뻗친 기슭에는 알오름들이 수없이 딸려있고

산상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간 모습이 거미집과 비슷하다고 해서 '거미오름'이라 불리운다.

3개의 분화구를 따라 펼쳐지는 능선은 거칠면서 야성미가 넘쳐 남성적이고

아래로 흘러내리는 등성이의 경사는 아찔하기까지 하다.

피라미드형 봉우리와 돔형 봉우리

전체적으로 급사면이지만 북동사면 쪽으로 난 작은길은 완만하다.

남서록에서 북동록에 이르는 동반부 일대는 구릉의 연속이고

굴곡을 이루는 자락에는 산담과 오름새끼들이 셀 수 없이 널려 있다.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바위

층층이 언덕지고 둥그런 사면과 사방으로 뻗어 나간 모습이

마치 거미집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거미오름'

여러 가닥의 등성이로 하여 거미 그 자체의 형상에 비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름이 검게 보인다는 데서 붙여진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서검은오름'과 대비해서

동쪽에 있는 '검은오름'이라는 데서 '동검은오름' 또는 '동검은이오름'이라고 한다.

거미오름(동검은이오름)의 진가는

능선 정상에서 세찬바람과 함께 바라보는 360도 전망이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로 보이는 한라산의 부드러운 능선

한라산 자락을 타고 내려온 겹겹이 이어지는 동부의 오름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담벽처럼 세워진 삼나무들의 사열을 받으며

목장의 소들은 가을 햇살 아래 여유롭게 풀을 뜯는 평화로움

멀리 바다위의 궁전 '성산'의 모습도 뚜렷하게 보인다.

오름 기슭에서 보이던 봉우리는 거대한 피라미드가 되어 맘껏 위용을 뽐내고

4개의 봉우리와 가파른 굼부리로 연이어진 곳의 묘 자리는

제주 사람들이 죽어서도 묻히고 싶은 명당자리인 듯 하다.

 

바람의 정원은 가을꽃으로 가득 채웠다.

어지럽히는 바람에 체념한 듯 바람결 따라 흔들거리는 작은 들꽃들은 부러질듯 휘어지고

숨을 멈추고 기다리지만 멈출줄 모르는 불어오는 바람은 애간장을 태운다.

굼부리로 내려가는 탐방로가 생겼다.

굼부리로 가는 길은 잡초로 무성하게 자라 여러갈래 길이 헷갈리게 했지만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이 숲터널을 이루고

경사진 억새길을 빠져나오니 출발했던 지점으로 나왔다.

이쯤에서 뒤돌아 바라보게 되는 거미오름

피라밋모양이 직선적이면서 거칠어 보이지만 오름의 위용이 느껴진다.

사마귀 한 마리가 멋진 포즈로 배웅을 해준다.

가을햇살에 바람따라 은빛 눈부심으로 물결치는 억새

붉은빛을 머금은 마술같은 아름다운 풍광에 정신을 빼앗겨버렸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다리를 세운 거미모양과 혹 달린 낙타모양

오름 안에 또 다른 오름이 생겨나고

거칠고 직선적이지만 부드러운 곡선과 곡선으로 이어지는

제주오름의 진가를 보여주는 오름

바람이 머물다간 자리는 잔영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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