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김희열/ 제주대 독일학과 교수

독일은 연방의회선거(총선)을 치루고 161일(약 5개월) 만에 드디어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내각이 구성되게 되었다. 9월 24일 총선 결과 유니온(기민당/기사당)이 제1정당이 되기는 했으나 그 전 선거보다 8포인트 이상 득표율이 빠졌다. 이런 총선 결과로 말미암아 독일은 연방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처음으로 연정 구성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다.

총선 전후 사민당은 이번에는 연정을 하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을 했다. 이로 인해서 유니온은 녹색당과 자민당과의 자마이카 연정 협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처음 원내 정당이 된 독일대안당(극우)이나 좌익 정당은 보수 정당인 유니온과는 워낙 정당 철학이나 실천이 달랐기 때문에 처음부터 연정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자마이카 연정 협상은 총선 후 약 2개월이 지난 11월 20일 자민당의 협상 거부로 최종 결렬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역사상 처음으로 연방대통령이 협상력을 발휘하여 사민당과 유니온의 연정 협상을 제안하였다. 이에 사민당 소속 연방대통령의 제안을 12월 7일 사민당이 특별 전당대회에서 수락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유니온과 사민당은 대연정 협상에 들어가서 해를 넘긴 2월 중순 타결을 본 후, 각 정당은 전당대회를 통해서 승인받는 과정을 거쳤다. 2월 26일 기민당의 특별 전당대회에서 대연정 협상 타결이 승인되었고, 당수인 메르켈은 이 자리에서 기민당 몫의 내각 인선까지 발표하였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여성 및 젊은 각료 후보와 특히 자신을 당내에서 거세게 비판하던 옌스 슈판을 건강부 장관으로 임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점이다. 언론은 메르켈의 유연한 협상력과 내각 인선을 “개혁의 표현”으로 추켜세우기도 하였다.

한편 2월 27일 사민당 역시 특별 전당대회에서 당원 투표를 실시했고 3월 4일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많은 당원들(66% 이상)이 유니온과의 대연정에 찬성하였다. 이로써 사민당은 2005년 이후 메르켈 정부와의 세 번째 대연정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결과에 이르기까지 사민당 내부에서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좌파 성향을 강하게 지닌 젊은 당원들은 대연정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크게 냈고, 무엇보다도 사민당 당수 마르틴 슐츠가 총선 전후해서 이번에는 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 부메랑이 되었다. 그러나 슐츠는 정당의 목표보다는 구국의 당위성 앞에서 대연정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었고 사민당에 이로운 협상 타결까지 이끌었다.

대연정 협상에서 사민당은 6개 부처 장관(이 가운데 재무부장관 몫은 과거 연정에서는 기민당 몫이었음), 기민당은 5개 부처, 기사당은 3개 부처 (합계 유니온은 8개 부처) 장관을 내정하기로 합의하였다. 기민당이 사민당과의 협상에서 유연하게 대처했다는 것은 중요한 재무부장관 몫을 사민당에 양도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이로 인해서 메르켈은 경제부, 국방부, 교육부, 건강부, 농림부 장관을 내정할 권한을 가지게 되었으나, 기민당 내에서는 거센 비판에 봉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메르켈의 협상력을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반면 기사당은 내무부, 교통부, 개발부 장관 몫에 대체로 만족하였고, 사민당은 외무부, 노동부, 가족부, 법무부, 환경부 이외에 재무부 (그 장관은 신설된 부수상 겸직) 장관 몫을 얻었다. 이로써 난민 및 사회보장 정책 등에서 유니온과 사민당은 모든 조율을 끝내서 이제 메르켈의 제4기 내각이 출범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독일의 정치적 상황을 숨죽이며 가까이서 지켜보던 유럽연합은 독일이 정치적 안정을 이루게 되어서 큰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었다. 또한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독일의 여러 정당들이 보여준 민주적이고 긍정적인 정치적 협상력에 다시 한 번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사민당의 당원 투표에서 대연정이 부결되었다면 독일은 굉장한 정치적 혼란에 빠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서 사민당 수상후보이자 당수였던 슐츠는 어떤 장관직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당수 자리도 미리 내놓으면서까지 당내의 대연정 찬성 분위기를 강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연방 대통령 및 원로 정당 정치인들이 보여준 사회적 역할과 여론 형성에 끼친 간접적 영향은 대단히 긍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서 독일과 비슷한 시기 태어난 우리 한국의 정치적 상황은 어떠한가.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 아래 시행되는 정치 시스템의 전통과 실천은 양국이 다르게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독일의 정치시스템은 더욱 선진적으로 진보하고 있는데 비해서, 우리의 정치시스템은 여전히 낙후하고 때로는 퇴행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자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평창 올림픽이 보여준 것처럼, 일반시민들은 합심하면 빠른 시간 안에 놀라운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저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현실은 이와는 달리 퇴행적이다. 왜냐하면 이제 곧 지방선거가 오지만 정치권의 정치개혁은 급한 불 몇 개 끄는 것 이외에 그 어떤 개헌 논의도 전개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는 각 정당과 후보들이 개헌을 하겠다고 공약했고 가능한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하는 청사진까지 제시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에서 볼 때 사실상 정부의 헌법자문특위의 개헌안이 국회에서 이번에 심도 있게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언제 개헌을 하고 이행하게 될 것인지는 오리무중이 될 것이다. 그러다 이대로 단임 대통령제가 유지되면 전임 대통령들의 불명예가 보여주듯이, 이는 구조적으로 정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다.

국가 봉사를 위해서 쓰라고 한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이 과거 정부에서 드러나듯 사유화되었을 때 오는 폐해를 어찌할 것인가. 견제할 수 없는 권력이 오용되었을 때 그 피해와 혼란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도 마련하려면, 개헌 논의를 본격적으로 해서 일반 시민이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청사진 제시가 필요하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이 문제가 심도 있게 다루어지지 못하고 야당은 이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고, 여당은 속수무책으로 방관하는 사태가 지속된 채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다. 일반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눈높이는 높지만 정치인과 정당은 각자의 이해관계에서 개헌 논의를 보기 때문에 선진화된 정치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은 더욱 요원한 일이 되고 있다.

더욱이 평창 올림픽이 끝나고 4월 한·미 군사훈련 이전에 남·북과 북·미 관계를 개선시키는 일이 바로 코앞에 떨어지고 남북 정상회담까지 예정되어 있다 보니 우리 정치시스템 개선에 대한 논의는 여론에서도 더욱 멀어지는 상황이 되고 있다. 그러다 다시 대통령제의 폐습이 현실화되면 부글부글 여론이 끓고 개선 요구가 봇물처럼 터지겠지만, 다른 급한 이슈들이 생기면 그런 요구는 수면 아래로 잠적해버리게 된다.

그나마 유일한 개헌안 출구는 정부의 헌법자문특위에 의해서 도출되어가고 있으나 이러한 정부의 개헌안을 놓고 정치권은 갑론을박만 하다가 개헌 시기를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 크게 우려된다. 왜냐하면 정부를 견제할 야당의 건전한 정치력은 실종되었고 오직 지방선거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절대절명의 순간들만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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