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유근/ 한국병원과 한마음병원 원장을 역임하시고 지역사회 각종 봉사단체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는 아라요양병원 원장으로 도내 노인들의 의료복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

얼마 전 시민단체 임원들도 함께 한 자리에서 “문재인 케어는 국민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것 같은데 의사회에서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란 질문을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설명하고파 입이 근질근질하던 참인데 ‘불감청 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었다.

한 마디로 ‘문재인 케어’는 좋은 제도이며, 앞으로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케어’는 한 마디로 그 동안 비용이 많이 들어 의료보험 항목에 포함 되지 않아 ‘비급여(非給與)’라는 편법으로 환자 측에서 직접 받던 의료비를 보험이 적용되는 의료수가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국민 입장에서는 직접 지불하는 의료비가 줄어드니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모든 정책에는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좋은 점만 바라보고 정책을 집행했다가 나중에 단점이 나타나 낭패를 본 일이 부지기수다.

필자가 보기에 지금 진행되는 상황은 2000년에 의약분업 때문에 발생한 의료대란과 너무나 흡사하다.

의약분업은 말 그대로 ‘진료와 처방은 의사가, 조제는 약사가’ 하자는 제도다.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 의사 배출이 너무 적어, 해방이 되자 전국적으로 의료공백이 생겼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만든 것이 한지의사(限地醫師) 제도와 약사에 의한 처방 조제의 묵인이었다. 그렇게 되다보니 무분별한 항생제 투여가 내성균 출현이라는 부작용으로 나타나, 1970년대 중반부터 의사회에서 의약분업을 하자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에 약사들이 한약을 조제하는 것에 대해 한의사 측에서 문제를 제기하면서 의약분업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 결과 5년 동안의 유예기간을 두고 의약분업을 1999년부터 시행하기로 1994년에 약사법이 개정되었다. 다른 법들은 대개 공포 즉시 시행하든가 길어야 1년 후에 시행하는데, 약사법은 5년 후에 시행하기로 한 것은 의약분업을 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약품들의 생물학적동등성 시험을 하는데 오랜 기간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9년에 약사법을 시행하려고 하자 문제가 생겼다. 그 사이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대부분 약품들의 생물학적동등성 시험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나라 의약품들은 상품명으로 따지면 2만 여종이 넘는데, 대부분의 약국에는 대략 500~1000종의 약품들만 구비할 수 있어서, 병의원에서 처방한 약들을 모두 구비할 수 있는 약국은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약국에 없는 약들은 성분이 같은 다른 약으로 바꿔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에 약효가 같은 약끼리 바꿔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약효가 같은 약끼리 묶는 약효동등성 시험을 반드시 하여야 하는 것이다.

약효가 똑 같다면 구태여 이런 실험을 할 필요가 없으나, 우리나라 약들은 약효가 50% 가까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약효가 다른 약을 쓸 경우에는 예상하지 않았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국민의 건강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의약분업을 해 가면서 천천히 약효동등성 시험을 해나가자는 정부의 제안을 의사라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다른 문제는 ‘간단한 병은 약사가 임의로 조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제란 그 전에 진찰과 처방이라는 행위가 전제 되어야 하는 행위다. 약사가 진찰하는 것은 위법이고, 그것을 막기 위해 의약분업을 하자는 것인데, ‘진찰을 하지도 않는 약사가 어떻게 간단한 병인지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진찰을 하고도 오진할 수 있는데, 약사는 진찰하지도 않고 간단한 병인지 중한 병인지 진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말인가? 이것을 정부나 시민단체들은 마치 열이 나서 아스피린을 사 먹는데도 진찰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떠들었다. 의약분업을 하더라도 의사가 처방해야만 조제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 아닌 일반약품은 얼마든지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었는데도 사실을 왜곡하였다.

그 다음 문제는 주사약은 병원 외부에 있는 약국에서 약을 구입해서 병원에서 맞으라는 것이었다. 제주도에 있는 일반 병원들처럼 약국이 병원 근처에 있으면 그리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대학병원들처럼 병원에서 한참 떨어진 약국에서 약을 사다가 병원에 와서 주사를 맞는다는 것이 환자 입장에서는 복장이 터질 노릇이었다. 더구나 의사들 입장에서는 약국에서 약을 어떻게 보관하였는지 모르는데 약에 의해 문제가 생기면 의사가 책임을 져야 하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 세 가지 문제는 의사라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런데도 당시 정부에서는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의약분업을 시행하려고 하였고, 시민단체들은 부화뇌동하여 의사들만 나쁜 집단으로 몰아 세웠다. 의사들이 파업을 하면서 차차 국민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자 의사협회의 주장이 옳다고 결판이 나서 지금 의사회 주장대로 진행되고 있다.

또 다른 큰 문제는 의약분업은 비용이 더 드는 제도이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비용이 더 들지 않는다고 하여 의료수가를 더 낮추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을 자초하였다. 병의원 경영에서 일익을 담당하던 약품에 의한 수익을 병원에서 앗아가면서 그 대책은 마련하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의사들 입장에서는 병원 경영이 불가능하리라는 예측을 하기에 이르렀다.

의약분업은 꼭 해야 하는 것이었다. 다만 의사회에서는 국민건강을 해치는 정부안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당시 정부나 시민단체에서는 의사회가 마치 의약분업을 반대하는 것으로 왜곡하였다.

‘문재인 케어’도 마찬가지다. 비급여 항목들은 우리 형편에 맞게 점진적으로 급여화해야 한다. 그것을 정부는 의사회가 반대한다고 왜곡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형편에 맞게 점진적으로’다.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정부에 의해 많이 왜곡되고 있다. 정부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현재의 의료보험수가는 원가의 70%를 밑돌고 있다. 이것을 의료 3대 부조리인 ‘특진비,’ ‘병실 차액,’ 그리고 ‘비급여’로 충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특진비’를 없애고 이제 ‘비급여’를 급여로 돌리려 하고 있다. 그리 되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병원 경영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이것은 짐을 잔뜩 져 헉헉대고 있는 노인에게 젊은 사람이 가지고 가던 가방을 더 얹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되면 노인은 결국 주저앉게 될 것이다.

공공병원들은 적자가 나더라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보충해 주니 유지가 되지만 민간병원들은 그 짐을 고스란히 의사가 져야 한다. 민간 의료기관들이 문을 닫으면 결국 의료를 국가에서 맡아야 하며 그리되면 시민단체들이 떠드는 것과 같이 의료공공성이 확보될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될 경우 전체 국민 의료비가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것이다. 현재 공공 의료기관의 지출이 같은 규모의 민간 병원에 비해 매우 높은 것이 이를 웅변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혹자는 우리나라도 영국과 같이 하면 어떨까 한다.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민간 병원을 국가에서 전부 인수하고, 의사들을 모두 공무원으로 채용하면 될 것이다. 민간 병원을 인수하는 데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는 차치하더라도, 다만 그렇게 할 경우 우리 국민들이 영국 국민들이 겪고 있는 불편(지정 의사의 추천이 있어야만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수술을 받으려면 몇 개월씩 기다리는 등)을 감수할 각오가 필요하다.

지금 ‘문재인 케어’의 시행을 앞두고 갈등이 생기는 것은 신의의 상실과 소통의 부재 때문이다. 만나서 얘기하고 불합리한 요구일 경우 논리적으로 반박을 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니 반발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왔기 때문에 차차 개선해 나가자는 말을 믿지 못 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것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은 현 정부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짐이 무거워 헉헉대는 노인에게 가방을 더 얹었다가 꺼꾸러지면 가방을 치워주겠다는 약속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국가에서는 의료보험 수가를 협의에 의해 결정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협의회의 구성을 공급자에서 1/3, 수요자에서 1/3, 그리고 나머지 1/3을 정부에서 지정하는 사람들로 하고 있으니, 이 협의는 몇 번을 해도 정부 의도대로 결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북한에서도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고, 그 대표들이 투표해서 정책을 결정한다. 그런데 북한에서 투표하는 것을 민주적이라고 여기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문재인 케어’를 제대로 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더 든다. 원가의 70%도 안 되는 의료수가 때문에 병원 경영을 3대 부조리에 기대어 운영하고 있는 병원 입장에서는 이미 특진비가 사라진 마당에 비급여까지 급여화를 하면 더욱 경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왜곡된 수가 조절은 시늉만 하겠다니 울화통이 터지고 걱정에 잠을 제대로 자기 어렵다.

지난 2000년에 벌어졌던 의료대란에서 정부는 차차 의료수가를 정상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사이 의료수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근로자 임금은 217.2% 올랐고 공무원 임금은 169.8% 올랐으며, 물가는 151.8% 올랐으나, 의료수가는 144.8% 올라, 결국 30% 이상 인하한 셈이 되었다.(의료수가는 대부분 기술료여서 인건비가 대부분을 차지함). 2018년에도 최저임금은 16% 인상하면서 요양병원의 수가는 고작 2.6% 인상하였다. 이것이 과연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일인가? 이렇게 하니 간호사 월급을 제대로 줄 수 없어, 세 군데 간호학과에서 수요의 200%를 배출하고 있는 제주도에서도 간호사 대란이 생기고 있다.

‘문재인 케어’는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제도를 무리하게 시행함으로 인해 병원이 문을 닫는다든가 국민 경제가 거덜 나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형편에 맞게 점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다. 더 이상 여인숙을 찾는 사람은 없으며, 비지떡으로 연명하는 사람도 없다. 우리의 국민소득 수준에 맞는 의료제도를 갖추기 위해 생각의 틀을 바꾸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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