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은 멀고 험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가시밭길이다.

험준한 산과 어둡고 깊은 계곡을 건너야 한다. 거친 물살의 강과 성난 파도도 견디어 내야 한다.

곳곳이 암초다. 불쑥불쑥 걸림돌이요 지뢰밭일 수도 있다.

비유하자면 ‘평화로 가는 길’이 그렇다. ‘평화의 봄’을 노래하지만 아직도 봄은 멀었다. ‘한반도의 평화의 봄’은 살얼음판이다.

28일 하노이에서 날아온 제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소식은 그러기에 더욱 안타깝고 불안하다.

합의문 없이 끝난 ‘회담 결과’는 유의미한 합의를 기대했던 많은 이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폭죽이 터지지 않는 ’실망의 불꽃놀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뒷말이 많다. 물론 추측과 상상력을 동원한 어림잡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역시 이름처럼 도박꾼’이라는 평가도 이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패를 어떻게 숨기고 언제 던질지를 아는 동물적 감각의 고단수 노름꾼이라 했다.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가 던진 ‘회심의 카드(?)는 ’영변‘이 아니었다. ’영변 이외의 핵 시설‘이었다.

와일드카드(Wild card)였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예측하지 못한 패였다.

트럼프는 포커페이스다. 무표정의 포커페이스가 아니라 현란한 포커페이스였다.

회담 결렬 직전까지 트럼프는 뭔가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은 말과 표정 이었다. 잔뜩 기대를 부풀려 놓았다.

그래놓고 막판에 와일드카드로 김정은의 뒤통수를 때린 것이다. 허를 찔린 김정은이 ‘맨 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트럼프에 대해 ‘정치를 비즈니스처럼 한다’는 말이 나온 지는 오래다. 정치를 장사처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40세 때 협상의 노하우를 묶어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이라는 책을 내놓은 바 있다.

‘‣ 크게 생각할 것 ‣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할 것 ‣ 언론을 이용할 것 ‣ 신념을 위해 저항 할 것 ‣ 희망은 크게, 비용은 적당히 할 것’ 등을 강조했던 내용이었다.

‘협상의 달인’이라는 별명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니 거래에 관한 한 산전수전 다 겪은 ‘너구리같은 트럼프’에게 김정은은 애송이 일 수밖에 없다. 적수가 되지 못한다.

여기에다 미국은 패권(깡패)국가나 다름없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비나 관용이나 인정은 필요가 없다. 힘의 행사만 있을 뿐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국가 간 협상을 함에 있어 뒤통수 때리기는 무도(無道)한 일이다.

정상회담 전 실무 팀끼리의 사전 조율은 상식에 속한다. 모든 의제와 의전, 일정 등을 논의하고 합의하는 것이다.

사실상 발표문(선언문․성명․기자회견문)까지 조율하고 정상 간 서명만 남겨놓는 것이다.

이번 미․북 정상회담도 이 같은 절차를 밟았을 터였다. 준비도 완벽하게 해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막판에 히든카드를 던졌다. 김정은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난 회담 결렬 이유다.

트럼프가 회담 결렬을 주도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알려지기로는 미국 내에서의 반(反)트럼프 정서는 넓고 견고해지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스캔들과 청문회, 코언의 폭로 등으로 트럼프는 궁지에 몰려있다.

이런 연유로 하여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슈는 미국 내 언론에서는 찬밥 신세였다.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탈출할 명분이 필요했다. ‘회담 결렬 카드’가 그것이다. 트럼프는 ‘회담 결렬 카드’를 위기 탈출구로 활용했을지도 모른다. 회담 결렬 후 미국 내 여론의 반전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를 통해 평화를 바라던 한국인들에게는 그것이 되레 돌팔매로 작용할 수도 있다.

아이들이 놀며 무심코 던진 돌이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듯이 트럼프의 돌팔매가 비핵화에 기대를 걸었던 한국인들에게 치명적 좌절과 불안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절망적 상황은 아니라는 일말의 기대도 없지는 않다.

미․북 정상회담 결렬이 ‘회담 중단’은 아니라는 시각의 존재도 여기서 비롯된다. ‘회담 결렬’은 ‘잠시 회담을 유예한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이다.

이들 긍정론자들은 미․북 정상회담 결렬로 미․북 양쪽의 카드가 노출 된 것을 ‘희망의 숨통’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는 상대의 패를 보면서 협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협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고 이로 인해 회담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는 논리인 것이다.

미국의 협상 테이블 위의 옵션은 영변 핵시설만이 아니고 그 외의 핵시설이다. 이에 대한 가시적이고 의미 있는 선제적 조치를 요구할 수가 있다.

북한은 사실상의 전면적 제재해제 조치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북이 제재해제 교환조건으로 내놓은 것은 영변의 핵시설 폐기에 국한 했었다.

영변 이외의 핵시설이나 이미 보유한 핵탄두나 핵물질은 숨겨놓았거나 쉬쉬하며 뒤로 빼놓은 상태다. 이것들이 이번 회담결렬 과정에서 노출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북한이 앞으로 미국과의 협상에서 원하는 바를 얻으려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내놔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미국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을 북한이 이번 회담 결렬과정에서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미․북 양쪽은 회담 결렬을 통해 자신들의 패를 보여줬다.

이는 새로운 대화의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는 시그널이기도 하다.

여기서 북핵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한국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크고 무겁게 요구되는 것이다.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다.

어느 한 쪽에 경도되거나 편향됨이 없이 대통령이 주장해 왔던 ‘운전자’론이나 ‘중재자’ 역할에 대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1일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준 대북 대화의지와 낙관적 전망을 높이 평가 한다”고 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상호 이해와 신뢰를 높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 했다.

국민정서와는 거리가 먼 ‘유체이탈 평가’가 아닐 수 없다. 인지부조화 현상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걱정이다. 사태파악을 제대로 해야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언어는 온통 ‘장밋빛 환상‘ 뿐이다.

‘신한반도 체제’라는 이름의 ‘경제협력 공동체’, ‘평화경제 시대’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북한 퍼주기’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대통령은 또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빨갱이’라는 표현을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 잔재’라고 했다.

‘빨갱이’는 남침으로 한국 전쟁을 일으켰던 북한 김일성 공산집단․남파간첩 등 한국사회를 붉게 물들이려는 공산 이념 집단에 대한 일반적 호칭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를 ‘친일 프레임’으로 매도하는 것은 새로운 색깔론이거나 신 매카시즘이다.

3․1절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할애기는 아닌 것이다.

대통령이 이념 논쟁에 불을 지펴 국론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27~28일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 소식과 대통령의 ‘빨갱이’ 덧씌우기 발언을 들으면서 암담하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도대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저절로 한숨만 나온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