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마을을 잇는 도로로 들어서면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봉우리가 어깨를 맞대어

하나의 커다란 산체를 이루고 있는 여느 오름처럼 보통의 오름을 보게 된다.

고수치, 돔박이는 왕이메에 딸려있는 것 처럼 나란히 줄지어

오름 기슭 자락으로 이어지고

굼부리에 숨어 있던 봄은 절정으로 간다.

한라산 서쪽 자락에 위치한 '왕이메'

거대한 왕관처럼 생긴 전형적인 모습의 오름은

옛날 탐라국 삼신왕이 이곳에 와서

사흘 동안 기도를 올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왕이메오름은 원형 분화구를 가운데 두고

크고 작은 봉우리가 어깨를 맞대서 둥글게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전사면은 소나무, 삼나무, 상산나무 등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고

등성이에는 제주조릿대가 색바랜 모습으로 터를 넓혀간다.

등성이 따라 이어지는 큰 굼부리와 정상에서 진입이 가능한 작은 굼부리

두 개의 굼부리 사이에는 울창한 삼나무의 능선으로 이어진다.

이제 막 싹을 틔운 연녹색 '박새'가 길을 터 주고

황금접시 꽃길 따라 통바람이 부는 삼나무숲을 지나는 동안

하얀 거짓말처럼 시려오던 손은

굼부리의 따뜻한 기운으로 사르르 녹아내린다.

오름의 남부 능선에 2개의 수직 동굴이 있다.

화구바닥에서 부터 조림되어진 삼나무와

분화구 안쪽은 자연림의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녹색 잎을 만들기 전이라 사방이 삭막하지만

굼부리 바닥은 황금빛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세복수초'가 꽃길을 걷게 한다.

봄 기운으로 넘쳐나는 거대한 굼부리는

봄옷으로 곱게 차려 입고 화려한 가면무도회가 열렸다.

이사하느라 일찍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발톱'

보송보송 솜털을 달고 기지개 켜는 '새끼노루귀'

습기가 있는 그늘에서 잘 자라는 '벌깨냉이'

하얀 치맛자락을 살랑거리던 변산아씨 '변산바람꽃'은 봄바람 타고 흔적을 남기고

작지만 품위 있는 모습이 별을 닮은 노란별 '중의무릇'

고양이 눈을 닮은 '산괭이눈'

앙증맞은 이름도 별난 골짜기의 황금 '흰괭이눈'

종달새의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들리는 듯 '현호색'의 화려한 외출이 시작되고

이른 봄을 알렸던 원형굼부리는 야생화 꽃밭을 꿈꾼다.

바람도 멈춘 굼부리카페

길동무들과 잠시 수다떨며 마시는 달달한 커피는 

어느 화려한 카페가 부럽지 않은 자연과 함께 하는 휴식처이다.

아쉽지만 굼부리의 봄을 추억 속에 담아 두고

수직 정원 '삼나무'가 주는 편안한 길을 따라 고수치로 향한다.

쑥쑥 자라 쑥대낭

수직의 정원 삼나무의 사열을 받으며 내려오니

길 끝에서 빛이 그려낸 그림은 세월의 숲이 느껴진다.

광활한 초원에도 봄은 찾아오고...

고수치는 원형굼부리를 한

높이 558.7m의 예쁜 등성이를 지닌 오름이다.

오름 정상에서는 북돌아진오름, 괴오름, 폭낭오름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주인 잃은 새집은 갈 곳을 잃었고

제비가 돌아오는 봄에 피는 오랑캐꽃 '남산제비꽃'

바짝 엎드린 채 하얀 속살을 내보이는 봄처녀 '산자고'는 정상의 봄을 노래하고

어두운 삼나무숲을 밝혀주는 '황금흰목이'는

돔박이로 향하게 길잡이가 되어준다.

고수치 능선을 내려와 돔박이로 향한다.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길게 늘어선 숲길은 묵은 잎이 떨어져 푹신한 바닥을 만들어주고

가시덤불과 빽빽하지만 앙상한 나뭇가지를 헤치며 잠시 헤매는 동안

길게 늘어 선 삼나무가 보이는 시멘트길이 눈에 들어온다.

삼나무숲길 따라 내리막길의 끝 '만불사' 주차장

길 한 켠, 무리지어 두터운 털옷을 입은 귀화식물 '자주광대나물'

야생에서 왕성하게 퍼져나가는 흔한 잡초  

자주색 층을 이룬 특이한 모습으로 '봄이 왔어요'를 외친다.

한라산 중산간을 시작으로

봄의 전령사 변산바람꽃, 세복수초, 새끼노루귀가 일찍 봄을 알리더니

개구리발톱, 중의무릇, 벌깨냉이, 흰괭이눈, 산괭이눈, 현호색이 바턴을 이어가는 동안

길가로 한꺼번에 넘쳐 나온 들꽃들~

광대나물, 큰개불알풀(봄까치꽃), 별꽃은 벌써 봄의 한복판으로 달린다.

절정으로 가던 매화와 제주수선화는 이미 시들고

곶자왈 꽃대궐을 만들어가는 사각별 백서향의 은은한 꿀내음

동백의 낙화, 겨울 외투를 벗은 목련도 봄을 활짝 열고 

무더기로 피어 난 유채와 서서히 물오른 왕벗나무도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잠시 머물다 설레임만 남기고 봄바람 타고 사라져버리는 봄꽃들

봄봄봄, 제주의 진짜 봄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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