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필자가 일본 사람들이 부러운 것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으뜸은 일본 사람들의 장인정신이다. 가끔 일본을 방문해 보면 몇 대째 내려오는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우리나라에선 3대를 내려오는 음식점도 드물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도예가 심수관씨 가문은 14대째 내려오고 있으며, 그 중에는 유명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인재도 있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우리나라가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렇기도 하지만 70년 이어온 기업들이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요즘 일본과 무역 전쟁이 벌어지면서 소위 ‘히든 챔피언(강소기업)’에 관한 기사들이 자주 보인다. 특히 부품을 만들어 내는 중소기업인 경우 일본에는 220개 업소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고작 22개소라고 한다. 이러니 싸움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일본 정부가 부품 수출을 제한하는 것이 무기가 되는 이유다. 우리 정부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쉽게 해결되기가 어려울 듯하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사소한 차이가 품질을 좌우하는데, 이 차이는 일이년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음악이나 미술에서 미세한 차이가 엄청난 수준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품에서도 아주 조그마한 차이가 커다란 품질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러면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물론 그것은 산업화를 이룬 시간의 차이에 의한 것일 수도 있으나 70년이란 기간은 이런 차이를 극복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필자는 그 이유를 다른 데서 찾고 싶다.

첫째는 우리 의식 속에 아직도 뿌리내리고 있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다. 물론 요즘 돈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그 순서가 좀 뒤바뀌긴 하였지만 ‘사’가 으뜸을 차지하는 것은 예전과 별 다름없다. 그리고 ‘상’이 ‘공’을 앞지른 느낌이다. 그러니 펜대를 쥔 직업을 우선시하고, 그게 안 되면 돈이라도 벌자고 ‘상’으로 가니 ‘공’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를 이은 장인정신을 찾기가 어렵다. 아버지가 어렵사리 공장을 일으켜 세워도 돈을 벌면 그 자식들은 펜대를 굴리는 직업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버지의 노 하우(Know-how)가 전해지지 않는다.

둘째는 대기업들의 자세다. 기업이란 게 애당초 이윤을 목표로 하고, 이윤이란 판매가에서 원가를 뺀 것이니, 많은 이윤을 남기려면 납품되는 물건들의 값을 적게 지불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렇게 원가를 줄이려고 납품가를 줄이다 보면 결국 품질이 나빠질 수밖에 없으니, 선진국에서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중소기업에서도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적정가로 납품가를 정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후려치기라는 말들이 나올 정도로 값을 깎으려고만 하니 좋은 제품을 만들기가 어렵다.

셋째는 중소기업들의 형편이 이렇게 어려우니 대기업과의 복지수준의에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또 우리나라 특유의 체면문화 때문에 우수한 인재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넷째는 제도적 문제다. 선진국에서는 마이스터 제도 등 고등학교 시절부터 장인이 되기 위한 다양한 코스를 밟고, 나중에도 대학 졸업생들과 대우 면에서 차별이 없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대학 졸업생들과 고등학교 졸업생들 사이에 대우나 진급에서 여러 형태의 차별이 있어서 실업계 고등학교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또 고등학교 졸업의 학력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을 꼭 대학을 마친 사람들만 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다섯째는 나라에서 중소기업들이 커나가는 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여러 가지 제도적 제한과 규제를 가하니 중소기업들이 발전하기는커녕 살아남기가 버겁다.

이제 우리도 튼실한 중소기업이 없으면 좋은 일자리도 없고 대기업도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아무리 분업화 사회라 하더라도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국제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 내실화 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든든하며 많은 특허를 가지고 있는 독일이 세계적 어려움도 잘 이겨내는 것을 우리들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국민들은 중소기업에서 묵묵히 일하는 젊은이들을 애국자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대해야 하고,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명성과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중소기업과 공생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중소기업의 개발의지를 높일 수 있도록 지원책도 마련해야 하며 아울러 대를 이어 발전하는 중소기업들에게 상속세 감면 등 유인책을 펼칠 필요도 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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