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

동아일보 30504호(2019년 9월 18일)를 보면 서울시교육청이 내년부터 서울의 모든 초3 및 중1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키로 한 기초학력 진단검사 계획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진보 성향 교육 시민단체 30곳이 소속된 서울교육단체협의회(서교협)에서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의 계획은 초3은 읽기, 쓰기, 셈하기 능력을, 중1은 여기에 더해 교과학습능력(국어, 영어, 수학) 등을 진단하고, 학년별 기초학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된 학생들에게는 전문적인 지원을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교육청에서는 평가에 쓰이는 진단 도구는 서울기초학력지원시스템에 있는 도구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개발한 도구 등에서 학교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고, 학교별로 자체 개발한 진단 도구를 활용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교육청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중학생 중에서도 분수, 덧셈, 뺄셈도 헷갈려 하는 아이가 상당수일 정도로 기초학력 저하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하므로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면 교육으로 사람을 키워나갈 수밖에 없다. 기초학력을 든든히 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하며 끈기와 도전적 자세를 견지해 나가야만 자원이 풍부한 나라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그런데도 서교협에서는 강남과 강북의 비교는 물론 학급별 순위까지 매겨지니 낙인효과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평균성적이 뒤쳐진 학교에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개인 성적이 나쁜 것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서교협의 얘기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사회에나 뒤쳐진 사람은 있게 마련이고, 앞서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도록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적 사고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뒤쳐진 사람에게 동기부여를 하여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독립한 이래 세계 최빈국에서 한강의 기적으로 10대 경제대국이 된 것은 우리 부모세대가 입을 것 못 입고, 먹을 것 못 먹으면서도 자식을 교육시킨 덕이라는 것이 세계인의 공통적 생각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좀 잘 살게 되었다고 하향평준화를 초래할 정책을 시행한다는 것은 삼가야 할 일이라고 여겨진다. 누가 어느 방향에서 뒤쳐졌는지를 알아야 그것을 개선할 방도를 알 수 있는 것이고, 본인도 자기의 위치를 알아야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필자가 지방대학에 교수가 되어 내려갔을 때 그 대학병원의 수련의는 안하무인(眼下無人)이었다. 영상의학과 특성 상 2년차만 되어도 다른 과 교수들보다 판독을 더 잘 할 수 있으니, 자신의 실력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그 당시만 하여도 서울과 지방과는 시설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수련 받고 있는 같은 년차의 수련의보다는 많이 뒤처지고 있었다. 필자가 아무리 얘기해도 우물 안 개구리는 하늘이 넓은 줄을 알지 못 했다. 더구나 일류고등학교 출신이어서 제주도 고등학교 출신인 필자를 우습게 보는 것 같았다.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던 참에 학회 차원에서 처음으로 수련의 평가고사가 생겼다. 옳다구나 하고 그냥 시험 보게 하였더니 동기생 중에서는 꼴찌를 하였고, 심지어 2년 후배들의 평균 성적보다도 못 하였다. 성적표를 받고 나서는 필자가 아무리 야단을 쳐도 수긍하였으며,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하여 전문의 시험 때에는 그런대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

그때 만약 평가고사가 없었더라면 그 수련의는 전문의 시험에서 낭패를 보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대학 입시를 치르는데 서류 중에 전 학년 성적표가 있었다. 그때까지 필자는 성적표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고등학교 3학년 9월까지 대학을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성적이 3년 내내 반에서 2등인 줄을 몰랐다. 만일 내 성적을 알았다면 한번 일등 해보려는 욕심이 생겼을 것이고, 그랬다면 좀 더 열심히 공부하였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강조 하셨는데, 필자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결국 평가를 받아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제주도에서는 평가를 하지 말자는 주장이 나오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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