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시장 매년 팽창…학원·교습소 1068곳
공교육이 충실하면 사교육이 발붙일 틈 없다

우리 교육, 이대로는 안된다. 초·중·고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한번쯤 마음속에 담아두는 불만이다.

왜 그럴까?  우선 떠오르는 게 암기위주의 교육과 입시우주의 교육, 그리고 콩나물 교실…. 교실은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장소일 뿐이다. 한 학급당 40명의 어린이를 한교사가 일괄적으로 통솔하고 일률적인 지도로 학습을 진행시키고 있다. 너무나 획일적인 구조다.

그리고 사교육비는 어떤가. 학생의 적성을 살리고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로 대학의 본고사를 없애고 내신과 수학능력 시험성적 반영비율을 높이는 쪽으로 대입 정책이 바꾸었지만, 오히려 사교육비 부담은 계속 가중되고 있다.

▲돈 없는 학부모 한숨만…=제주시 일도 2동에 사는 주부 K모씨(39)는 초등학교 3학년과 유치원에 다니는 두 딸의 사교육비 때문에 고민이 많다.
남편은 "형편에 맞게 키우자"는 입장. 그러나 K씨는 "아이의 재능을 조기에 발견하려면 무리가 돼도 어릴 때부터 다양한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남편도 두 손을 든 상태. ‘자식을 더 잘 가르치자’는 아내의 의견에 무조건 반대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능력을 넘는 지원을 할 수도 없어 고민하고 있다.

K씨의 한달 사교육비 지출내역을 보면 대충 이렇다. 두 딸의 미술학원 수강료 13만원, 종이접기 5만원, A학습지(국어·수학·한자, 2명) 각 2만5000원씩 13만원, 큰 딸의 특기·적성 교육비(서예·컴퓨터) 3만원, 피아노 개인교습(2명) 23만원 등 57만원 가량 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부부싸움 끝에 성악 레슨과 영어 학습지 구독을 뺀 결과다.

또 학습지의 경우 가정교사 방문지도 방식이 도입되고, 사전에 수십만원에 이르는 교재를 구입한 뒤 매달 일정액을 지불하며 가정 교사를 초빙, 반복 학습해 나가는 방식이기 때문에에 교재비도 간과할 수 없다.

게다가 사립 유치원에 다니는 딸의 경우 연간 수업료가 266만9000원 가량 된다. 매달 22만2000원이 추가로 드는 셈이다. 상대적으로 교육비가 저렴한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도 생각했었으나, 수업이 일찍 끝나 얘 맡길 곳이 없기 때문에 유치원 종일반을 택했다. 맞벌이 부부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러나 말이 종일반이지 오후 5시가 되면 얘를 데려와야 한다. 또 방학은 왜 그리 일찍 시작하고, 긴지…. 17일부터 방학에 들어가기 때문에 학원수강을 늘려야 할 판이다.

K씨는 "두 딸 교육비로 매달 100만원 가까이 들고 있다. 물론 이중에는 맞벌이 부부라는 현실 때문에 택한 경우도 있지만, 이 다음에 얘들이 중·고등학교에 가면 입시위주의 교육행태 때문에 감당해야 할 사교육비 부담을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또 오른 학원비=제주도내 학원 및 교습소의 수강(교습)료가 이달부터 3.8% 인상됐다.

이에 앞서 제주도교육청 학원수강료조정위원회는 물가상승률과 학부모 부담 등을 감안해 2002년도 대비 3.8% 범위 내에서 수강(교습)료를 인상키로 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외국어학원의 외국인에 대해서는 작년 인상효과를 감안해 제외했다. 이같은 위원회의 결정은 4.9% 인상을 건의해왔던 한국학원총연합회 제주도지회의 요구를 일정부분 수용한 것이다.

조정위원들은 "학원(교습소) 연합회의 4.9% 인상 요구가 공공요금과 인건비, 건물임대료 상승 등 나름대로의 이유와 타당성이 있다고 보여진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물가상승률 및 학부모 부담 등을 고려해 3.8% 범위 내에서 인상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도내 사설학원 수는 사교육 시장 팽창과 함께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 제주도교육청에 따르면 12월말을 기준으로 예능학원 361곳, 입시학원 155곳 등 학원수가 790곳이며, 예능교습소 256곳을 포함해 교습소가 278곳에 이른다. 사실상 학원수가 1068곳이며 도내 초·중·고 177개교의 6배나 많다. '학원 공화국'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부끄러운 1위=현재 우리나라 사교육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연간 수십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최근 한국무역협회가 낸 ‘203개 경제·무역·사회 지표로 본 대한민국’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위가 몇 개 눈에 띈다. 선박 수주량, 초박막액정표시장치 생산, CDMA 단말기 판매, 초고속인터넷가입자수 등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했고, 인터넷 이용자수, 인터넷 쇼핑 이용률, TV 수상기 생산 등에서는 2등을 했다.

1위 행진은 이어 진다. 민간 교육기관에 대한 지출, 이른바 사교육비의 비중 역시 세계 1위인데, 이는 자랑거리인가 아니면 부끄러운 일인가?
안타깝게도 '사교육비 1위'라면 '교육 선진국'이라는 용어가 따라올 법도 한데, 현실은 '사교육비 선진국'이란 오명을 쓰고 있다.

지금 학원은 학교보다 우위에 있다. 사교육에 가려 꽁꽁 숨어버린 공교육. 우리는 지금이라도 공교육을 찾는 숨바꼭질이라도 해야 하는 것인가? 

▲다시 공교육을 생각한다=사교육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은 무엇보다 복잡한 대입 제도의 영향이 크다. 갈수록 수능의 영역별 성적과 내신 성적이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져 주요 과목 이외에도 과외를 받아야 할 과목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입시 제도는 복잡해졌지만 공교육은 여전히 획일화 평준화돼 있어 사교육이 번창할 수밖에 없다.
시장논리로 보면 공교육에 부족한 점이 많아 사교육 시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교육개발원의 표본조사를 보아도 학생 1인당 연간 사교육비 지출은 초등학생 330만원, 중학생 206만원, 일반고교생 233만원이다. 여기에 공교육비(초등학생 75만여원, 중학생 230만여원, 고교생 216만여원)를 합치면 초등학생 1명 교육비가 연간 500만원이 넘는다.

이러니 한 자녀를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가르치는데 1억원이 더 든다는 교육개발원 조사결과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핵가족화가 더욱 가속화하면서 자녀 교육은 신세대 가정에서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때 외환위기에 따른 국제통화기금(IMF)의 여파로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4∼5년 전부터는 조기 영재 교육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새로운 교육 테마로 자리잡고 있다.

유치원 나이도 안된 유아 재능교육에 돈을 펑펑 쓰는 풍조를 더하면, 학부모의 목을 죄는 올가미라는 말에 이해가 간다.

지역감정과 함께 천정부지의 사교육비는 우리 사회를 좀먹는 또 하나의 망국병이다. 허리가 휘는 사교육비 때문에 많은 학부모들은 자녀의 조기유학을 생각한다.

학교교육이 바로 설 수 있도록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어려서 재능을 개발한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과외를 시키는 학부모들 극성 때문이라고 하지만, 공교육이 충실하면 사교육이 발 붙일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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