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들꽃이야기] 대정고을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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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들꽃이야기] 대정고을을 걷다~
  • 고은희 기자
  • 승인 2020.07.21 0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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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숨 쉬는 대정골

인성리, 안성리, 보성리의 세부락으로 이루어진 대정고을은

왼쪽 단산과 산방산, 오른쪽에 모슬봉, 뒤에는 넓게오름이 외곽을 이루고

지형은 해발 100m 이하의 용암평원으로 되어 있다.

대정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대정현을 설치할 당시 대정고을 서쪽에 '한괴'라는 이름에서

'한'은 크다, 많다의 뜻이므로 '대(大)'자로 하고

'괴'는 조용하고 정숙한 곳이므로 '정(靜)'을 사용하여 '대정'이라 정했다고 한다.

[대정고을]

크고 조용한 대정골~

잠시 소강상태인 장맛비

후덥지근한 날씨지만 구름 낀 하늘이 걷기에는 뜨겁지 않아

안성리 마을 '수월이 못'을 시작으로 '대정향교'까지

대정고을의 역사와 풍광을 담아본다.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밭담]
[풋귤]

마을 농로길에는

밭담 안으로 비에 젖은 설익은 초록의 '풋귤'

해를 향해 피는 여름바라기 '해바라기'

나리꽃 중에 가장 아름다운 왕 중 왕 '참나리'

해가 떨어지고 어둑어둑해지면 피는 달맞이꽃과 달리 낮에 피는 '낮달맞이꽃'이 

찾아와 줘 고맙다는 듯이 반갑게 맞아준다.

[해바라기]
[참나리]
[낮달맞이꽃]

버려진 운동화..

봄의 생명력은 여름의 싱그러움으로 이어지고

마음을 담은 보금자리에는 끈질긴 생명이 자라고 있다.

[수월이 못]

안성리 마을 북쪽에 위치한 수월이 못은

구전에 의하면 관기(기생) 수월이가 살던 집터로 수월이가 죽은 뒤

주민들의 분노로 집터를 파 버렸고 그 곳에 물이 고여

못을 이루어 '수월이 못'이라 부른다.

조선시대 후기에 만든 대정골에서 가장 큰 인공연못으로

큰 연못과 2개의 작은 연못으로 되어 있고

작은 연못은 식수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마름]

수월이 못에는 녹색의 아름다운 '마름'이 못을 가득 채우고

작은 못에는 '큰고랭이'가 자람 터를 넓혀간다.

[큰고랭이]
[기장:오곡(쌀, 보리, 콩, 조, 기장)]
[참나리]
[동문 돌하르방]

돌하르방은 제주의 삼읍성인

제주성·정의성·대정성의 성문(동, 서, 남문) 입구에 세워져 있던 석상으로

현재는 제주대학교, 시청, 삼성혈, 관덕정 등 제주시내 21기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12기

대정읍의 인성, 안성, 보성 12기 등 도합 45기가 있다.

주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주며 기원하는 수호신적 · 주술 종교적 의미와

도읍지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는 경계 금표적 기능을 한다.

대정성의 돌하르방은 대정성의 동문 입구 좌우에 각각 2기씩 세워져

성안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등 성을 지키는 수문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2018년 10월, 보성초등학교에 자리하고 있던 돌하르방 3기와

기존 동문지에 자리하고 있던  1기 등 총 4기를  

현 위치(대정성의 동문)로 이설, 정비하였다.

[대정 우물터(두레물)]

이 못은 두레박으로 떠올리는 물이라는 데서

'두레물'이라 불리던 것이 후에 한자표기에 의해서 '거수정' 이라 호칭하며

이 물은 옛날 대정골의 유일한 못으로

유력한 명관이 추대되면 물이 말랐다가도 용출하고

만약에 그렇지 못한 이가 추대되면

용출되던 물이라도 금새 말라붙어 버렸다고 한다.

[대정골 도담터]

동헌터는 대정현성의 동헌이 있던 자리라 해서 불려진 이름으로

지금의 보성초등학교에 있다.

[망종화(금사매)]

안성리 마을 안길을 지나 보성리로 가는 길~

바람에 날아갈까? 버려진 타이어는 지붕 위로 올라가고

여름 들판에는 장맛비에 쑥쑥 자라 버린

들꽃들로 가득 채워간다.

[가을강아지풀:강아지풀과 다르게 벼이삭처럼 고개를 숙인다.]
[노랑하늘타리]
[사상자]
[거지덩굴]
[며느리밑씻개]
[닭의장풀]
[좀닭의장풀]
[둥근잎미국나팔꽃]
[미국자리공]
[반하]
[까마중]

남문앞물(남문못)은 대정성지 남문 앞에 위치한 연못으로

원래의 못은 우마급수장으로 활용하였던 못으로

외부의 침략을 막고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축성 작업을 하던 중

모슬봉의 화기가 비치니 남문앞에 연못을 파서 화기를 누르면

백성들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하여 설치된 못으로

지금까지도 마을 주민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연못이다.

[남문앞물]

단산(바굼지오름)은 대정향교의 뒷동산으로

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매력적이다.

옛사람들은 마치 박쥐가 날개를 펼친 모습이라 하여 '바굼지오름'이라 불렀다.

부드러운 능선의 여느 오름과 달리

바위 봉우리가 수직의 벼랑을 이루는 뾰족한 모습이다.

[단산(바굼지오름)]
[인성리 방사탑]

방사탑은 마을 공동체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지역 주민이 공동으로 돌을 쌓아 세운 소중한 향토유산이다.

지역에 따라 '방시탑, 방사탑, 거욱대, 거왁'

등으로 부르며 인성 마을에는 4기의 방사탑이 세워져 있다.

(도내에는 30여 기의 방사탑이 있다.)

[개죽은 물:인성리 알벵디 농로길에 있는 못]

세미물은 옛날 주변 마을에서 물을 길어 먹었던 곳으로

'세미물 또는 돌세미(石泉)'라 불리기도 하고

추사 김정희가 이곳의 물을 길러다가 차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세미물]

배움을 찾아가는 순례지 '대정향교'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과 교화를 목적으로 세운 교육기관이다.

향교는 성균관과 더불어 오늘날의 중등학교에 해당하는 향궁으로

조선왕조 때 현에 있는 공자의 문묘와 거기에 부속된 중등교육기관인 관립학교로서

대정향교는 조선조 태종 16년(1416년)에 처음 설립되었다.

 

대정향교는 명륜당이 북향하여 자리 잡고

그 북쪽에는 대성전으로 가는 삼문(三門)이 있으며,

이 문을 들어서면 대성전이 남쪽을 향하여 서 있다.

경내에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의전당,

내삼문, 전향문, 퇴출문, 대성문, 동정문, 전사청 등이 있다.

'의문당(疑問堂)'은 동재에 걸려 있는 현판으로

추사 김정희가 나무판에 새긴 현판이다.

[대성문]
[대정향교(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4호)]
[대성전]
[전사청]
[대정향교]

장맛비 주춤한 농촌의 여름 들녘

 

대정고을의 크고 작은 습지와 자연과 어우러진 대정향교는  

울창한 소나무들이 둘러싸여 있는 돌담과 고즈넉한 한옥이 멋스럽다.

시작과 끝이 없는 길~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고 열려있는 제주의 이야기가 있는 곳

마음의 휴식을 찾아 걷는 대정고을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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