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대한병원협회에서 알려준 정부의 ‘지역 의료격차 해소 위한 의대 정원 증원 방안’을 읽어 보니 병원협회에서 이 정책을 지지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기본 틀은 지방에 있는 병원들과 특수 의료에 종사할 의사를 확보하기 위해 일 년에 400명씩 10년 동안에 4000명을 증원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발표하고 있는 정부 안 대로라면 의사협회에서 걱정하고 있는 의대신설이 아니고 그 동안 불합리하게 운영되어 온 과소학급의 학생 수를 적정선으로 늘리며, 의사가 모자라는 지역에 우선 배정하겠다는 것이어서 토론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

필자도 병원을 운영하고 있어서 의사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이 방안에 귀가 솔깃해진다. 그러나 국가 전체로 보면 그게 과연 바람직한가에 의문이 든다. 우선 의사 증원에 동의를 받기 위해 사탕발림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그리고 의료의 특질을 모르시는 분들이 짜낸 안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찌 보면 10년 동안에 4000명 증원이라는 것은 현재 정원으로 그 사이에 불어날 것으로 추정되는 의사 수 40000 명의 10%에 불과하니 그리 많다고 파업까지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현재 일반 대학에서 학생 수가 모자라도 입학 정원을 줄이기가 저렇게 힘든데, 10년 후에 원래대로 400명을 과연 줄일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이르면 그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추측을 당연히 하게 된다. 지원자가 없는 입학정원을 줄이는 것도 힘든데 지원자가 남아도는 학과의 정원을 줄일 수 있는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이 400명의 증원된 의사들 중 30명은 지역의사로, 50명은 감염내과, 소아외과 역학조사관 등으로, 그리고 50명은 의사과학자로 키우겠다는 것인데(나머지 270명은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이 안 보인다.) 이 분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에 그만큼 일거리가 있을 것인가 의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 그러면 왜 이런 분야에는 의사가 필요한데도 의사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울까? 그것은 왜곡된 의료보험 수가 때문이다. 힘들게 일하는데 보상이 따르지 않으니 기피하는 것이다. 국가에서 아무리 이런 의료 인력들을 배출해도 수가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병원에서 채용을 기피한다. 예를 들면 감염내과인 경우 내과 각 과에서 감염환자를 보는데 감염내과 전문의가 있다고 자기 밥벌이 할 만큼 환자가 없으면 병원 입장에서는 구태여 감염내과 전문의를 따로 채용하려 하지 않는다. 소아외과도 마찬가지다. 이런 과는 특수과여서 필요로 하는 병원이 한정되어 있어 취업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그러니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의사를 키우는데 드는 돈을 차라리 현재 애쓰고 있는 감염내과나 소아외과의 수가에 반영하면 더 쉽게 의사들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역학조사관 같은 경우는 전염병이 창궐하지 않으면 할 일이 없다. 만약을 대비해서 사람을 잔뜩 뽑아 두면 그게 모두 낭비가 된다.

지역의사를 뽑는 문제도 그렇다. 지금은 시장 논리에 따라 의사들이 자유롭게 이동한다. 그런데 만일 지역의사라고 하며 지역에다 의사를 꼽아놓으면 그리로 가려던 일반 의사들이 발길을 돌리게 된다. 결국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모양새가 된다.

많은 제주도민들이 제주도에 3차 병원이 없다고 투덜댄다. 그래서 제주대학교에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것에 대해, 현대아산병원이나 삼성의료원이 생기는 줄 알고, 쌍수를 들어 환영하였다. 그러나 제주대학교병원이 3차병원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인구가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골에 병원을 세워도 운영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정부가 돈이 많아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계속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곳에는 몇 명의 의사들이 힘을 합쳐 그 도시에 알맞은 병원을 세우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정부가 돈이 넉넉하면 이런 시골마다 병원을 짓고 의사들을 고용하면 좋으련만, 앞으로 계속 복지비용이 들어가야 하는 우리나라 실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필자는 자주 법학전문대학원의 증원에 대하여 반대하여 왔다. 변호사가 필요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이 국가와 국민들에게 얼마나 해로운지를 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의사가 필요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는 것을 국민들을 깨달아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그처럼 누누이 강조한 “선비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람이 이상적으로만 움직인다면 문제가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러나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의사들의 행동을 미리 짐작하기는 의료를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지난한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였으면 한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