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은 너무 불안했고 힘들었다. 삶의 리듬은 깨어져 버렸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노동 등 총체적 종합 생활패턴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우울하고 잔인한 여름이었다.

무더위에 지쳐 진한 녹음 숲속 계곡에서의 물맞이 피서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햇볕 쏟아지는 해수욕장에서의 파도타기 물놀이도 찜찜하고 겁이 났다.

재앙(災殃)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토로나 19)이 인류 문명을 헝클어버리고 있는 중이다. 인간사 모두를 초토화 하고 있다. 엄청난 문명의 충돌이다.

인간의 육안으로는 도저히 흔적을 식별할 수 없는 극 미세 바이러스 입자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뽐내던 인간의 존재 가치를 한방에 날려 버린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인류의 연대기(年代記)가 새로 써질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다. ‘코로나 19’ 이전인 BC(Before Covid)와 이후인 AC(After Covid)로 구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 19’의 충격파는 엄청나다. 세계 214개 나라에서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국제통계사이트 등의 자료는 30일 오전 현재 ‘전 세계 코로나 19’ 누적 확진자는 2천5백16만6천665명으로 집계했다. 이중 사망자가 85만2천291명, 격리해제는 1천7백50만529명이다.

한국의 질병관리본부도 30일 0시 기준 우리나라 확진 자가 299명(국내발생 283명·해외유입 16명)이 늘어 총 누적 확진 자는 1만9천699명이라고 했다. 사망자는 323명, 격리해제는 1만4천903명이고 4천473명이 격리중이다.

제주에서도 신규 확진 자 2명이 추가돼 누적 확진 자가 39명이다. 이중 26명이 격리해제 됐고 현재 13명이 격리중이다. 사망자는 없다.

얼굴 없는 죽음의 그림자 ‘코로나 19’가 얼마나 기세등등하게 지구촌을 휘저으며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아직 이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제는 개발이 안 된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 19’에 대한 일반의 공포는 더 크고 두려움은 더욱 소름끼치게 하는 것이다. 매 순간이 무섭고 매일 매일이 불안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죽느냐, 사느냐, 생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위기 극복을 위해 사회공동체가 하나 되는 일이다.

“나만 살겠다”는 이기심이나 분별없는 방역활동 일탈은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좀먹는 ‘바이러스 형’ 반사회적 행태다.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것이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 본부장은 심각한 수준의 경고를 보내고 있다.

“지금 코로나 19를 통제하지 않으면 의료시스템 붕괴와 사회 필수 기능 마비가 우려 된다”는 경고였다.

“이것이 막대한 경제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브리핑을 통해서다.

이에 대한 정본부장의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고 명료했다. 한마디로 ‘사람간의 접촉을 줄이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최소한 10일 정도는 출퇴근, 병원방문, 생필품 구매와 같은 필수적인 외출 외에는 모임이나 여행, 사람간의 만남을 취소하고 집에 머물러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표현은 절실했고 주문은 절절했다. 그렁그렁한 눈물의 호소로 읽혀졌다.

감염병 전문가 집단의 처방전도 그랬다. “코로나 19를 견뎌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두가 기본적인 방역지침을 지키는 것 뿐”이라고 했다.

“필수적인 마스크 착용, 철저한 손 소독과 사회적 거리두기, 옹기종기 모여 앉는 대면 접촉을 피하고 띄엄띄엄 거리두기 비대면 접촉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해법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총 칼 들고 밖으로 나가 싸우라는 것이 아니다. 절제와 자제력으로 자신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일시적인 재난 대응 수준을 넘어 일상적 대응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조언인 것이다.

‘코로나 19’ 대응의 최종 목표는 희생을 막고 피해를 줄이는 일이다. 사망자를 최소화 하는 것이다.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여 온전한 삶을 영위하는 일이다.

현시점에서 최선은 ‘최선의 방역활동’일 수밖에 없다. 방역 이상도, 방역 이하도 아닌, 처음과 끝, 알파와 오메가가 오직 방역뿐이다.

그리하여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런 연후에야 얼어붙었던 경제가 풀리고 막혔던 인간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네 탓” 싸움이다. 특정 상대나 집단을 과녁삼아 공격하거나 책임 떠넘기기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정 상대에 대한 무차별 적 증오심 발산은 공동체의 갈등과 분열만 부를 뿐이다.

‘코로나 19’를 특정 목적 달성이나 정략적 정치적 유지 수단으로 악용하지 말아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야 ‘코로나 19’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불안한 일상을 평상심으로 돌리는데 기여 할 수도 있는 것이다.

‘8월의 마지막 날’, 공포의 ‘코로나 19’ 위기 앞에서 위기 극복의 리더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고 사태가 위중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일한 4선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1882~1945) 이야기다. 루스벨트는 경제대공황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1933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경제대공황이라는 위기와 공포 속에 진행됐던 대통령 취임식에서 루스벨트는 “우리가 단 한 가지 두려워 할 것은 바로 두려움 그 자체(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라는 명언을 남겼다.

두려움에 떨지 말고 함께 위기를 극복하자는 다짐이자 독려였다.

“국가가 힘들고 어두운 시기일 때마다 솔직하고 용감한 지도력만이 국민들의 이해와 지지를 받아 왔으며 그것이 곧 성공의 필수요소가 됐다”는 루스벨트의 연설은 위기관리 리더십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교훈이다.

한국의 ‘코로나 19’ 위기관리 리더십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내일은 가을 단풍을 붉게 물들이는 9월의 시작이다.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 ‘가을’ 앞에서 목필균 시인의 시 ‘9월’ 중 한 소절을 차용해 본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한 계절이 가는데

온 몸 열꽃 피는 몸살기가 없을까‘

공포의 ‘코로나 19’ 위기가 계절병 열꽃 몸살기처럼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골라 본 것이다. ‘8월의 마지막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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