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이야기] 손수저 스가 수상 무임 승차 수상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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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이야기] 손수저 스가 수상 무임 승차 수상 자리
  • 제주투데이
  • 승인 2020.09.22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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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수상의 예기치 못한 도중 하차로 비어버린 수상 자리에 옆에 앉았던 스가 관방장관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겨서 정권을 물려 받았다. 아베 수상의 지병 재발로 인한 돌연변이 정권 교대극이었다. 모든 절차가 긴급사태라는 위기감 속에 생략된 자민당 총재 선출은 자민당 파벌간의 교통정리로 이뤄졌다. 최대 여당의 자민당 총재는 곧 수상 자리였다.

그 동안 아베 수상의 신임 속에 수상 자리를 향해 발판을 굳히던 기시 정조회장, 일본 국민의 수상 선호도 1위였던 국민적 인기의 이시바 전 간사장도 파벌의 벽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여러 파벌에 속했던 스가 수상이 파벌을 탈퇴하여 무파벌인 상태 속에 파벌의 논리에 의해 수상 자리에 오른 것은 아이러니였다.

파벌의 영향은 받지 않는다고 선언한 스가 수상이었지만 임명한 새로운 20명의 각료 면면은 저울질을 해도 별로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파벌 배려의 절묘한 바란스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아베 전 수상과 함께 7년 9개월간 관방장관을 역임했지만 수상 권리의 영향 배제론만으로는 역부족이어서 파벌의 요청을 들어야 했다.

아베 정치 노선의 계승이라는 대의명분 속에 수상이 된 그는 아베 주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20명의 각료 중에 신임 5명을 제외하고는 재임과 전 각료가 차지했다. 신임 중에는 아베 전 수상의 친동생 기시 노부오(61) 방위대신이 눈길을 끌었다. 안보 정책에 자신을 가졌던 아베 전 수상의 동생을 신임 방위대신으로 임명한 것은 아베 전 수상에 대한 최대의 예의와 배려였다. 아베 전 수상과 성이 다른 것은 동생은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의 장남 가정에 양자를 갔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함량 미달로 구설수에 올랐던 법무대신에는 두번이나 역임했던 가와카미 요오코 대신을 다시 임명하여 신 내각 출발의 발판을 굳히기도 해서 스가 정권에 대한 국민적 지지율은 70%를 넘고 있다. 

높은 지지율은 그가 아키다현 농가에서 태어나서 토쿄에 나와 스스로 학비를 벌면서 대학을 다녔다는 흙수저 미담도 크게 작용했지만 그는 결코 흙수저가 아니었다.

딸기 농가의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그 지역의 딸기농가조합 이사장을 맡으면서 그 지방의 죠카이 의원을 지내서 그 지역에서는 명문가였다.  어머니, 이모, 외삼촌과 누님 둘도 교사였으며 집안에서는 교사를 권해서 교육대학에 진학을 원했지만 교사가 싫어서 그는 토쿄에 상경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습의원이 압도적으로 많은 일본에서 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혈연, 지연 등 '3방'으로 불리우는 조직의 '지방(地盤)' 지명도의 '간방(看板)' 선거자금의 '가방'이 필수조건인데 이것이 하나도 없는 혈혈단신 속에 가나카와에서 의원 비서를 하다가 시의원에 진출하여 국회의원과 수상까지 올랐으니 입지전의 인물에는 틀림없다. 그는 흙수저라기 보다는 스스로가 개척한 손수저였다.  

16일 사임한 아베 수상은 15일과 16일 요미우리신문 단독 인터뷰에서 <공 줍는 역할>을 하고 싶다면서 앞으로도 스가 정권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외교특사 등의 의견도 제시했다. 지병이라지만 여력이 있을 때 사임 표명을 한 아베 전 수상의 마지막 지지율은 50%를 넘는 지지율을 남겼다. 동정적인 국민적 정서도 있지만 그에 대한 결단력의 평가이기도 해서 앞으로도 그의 영향력은 무시 못할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악화되는 경제와 내년 틀림없이 개최된다는 보장이 없는 토쿄올림픽 속에 지지율은 30%로 떨어진 아배 정권은 내년 9월 임기를 앞두고 레임덕에 빠지고 있었다. 임기까지 버티다가 지지율이 바닥나면 자신만이 아니라, 자민당 정권까지 하야 위기에 처할 지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 지병으로 인한 도중 퇴임은 위기를 찬스로 전환 시키는데 성공했다.     

지병으로 사임하는 아베 수상은 미국을 비롯한 각국 수뇌들과 그 동안의 노고와 병의 완치를 기원하는 전화 인사도 있었지만 가까운 이웃 나라라는 한국 대통령과는 먼 남의 나라 일처럼 지나갔다. 스가 수상의 취임 기자 첫회견에서도 한국이라는 단어는 단 한번의 등장도 없었다.

미국과 더욱 가깝게 강화하며 중국과 러시와와 근린 제국(諸國)들과도 협조해 가면서 외교정책을 펼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중국, 러시아, 북한까지 포함해서 동북아시아에서 자유민주주주의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인다. 이념적으로도 가장 가까워야 할 나라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한국은 일본 수상에게는 '근린제국'으로 소외되고 말았다. 너무 씁쓸하고 착잡하다. 그렇다고 이러한 일본 정치만을 비난할 수없으니 더욱 그렇다. 아직도 고국, 한국에서는 토착왜구 세력이라니 친일파 운운 논쟁 속에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묘들을 친일파라고 파묘까지 해야 한다고 의원 자격 미달인 김홍걸 의원등이 제기하고 있다니 너무 어처구니없고 기가 찰 노릇이다.

아베 전 수상도 한국의 이러한 세력과 다를 바 없었다. 사임 후 3일만인 19일 7년 9개월만에 A급전범들의 위패도 있는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영령들에게 수상 사임을 보고하기 위해서 참배했다고 한다. 7년 9개월 동안 장기 정권을 누렸던 그였지만 A급전범인 기시 노부스케 수상이 외할아버지인 그는 '태생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왜소한 극우 보수로서 각인될 것이다.  

70%를 넘는 지지율의 스가 수상은 자민당 파벌 영수로부터 국회해산의 압력을 받고 있다. <일하는 내각>의 구호를 들고 나온 그는 해산보다도 업적이 필요했다. 아베 전 수상의 임기였던 내년 9월까지인 수상 자리를 마치고 그가 그만둘 것이라고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관방장관 시절, 날마다 여는 기자회견 때마다 무표정 속에서 퉁명스런 답변과 가시 돋힌 역공의 질문도 때로는 구사하여 시청자들을 찌푸리게했던 그였다. 수상이 된 지금은  가끔 미소도 짓고 있지만 앞으로 장기 정권을 노리면서 어떤 정책을 펼칠런지 우방이라기 보다 근린제국으로 전락해버린 한국도 주시해야 할 것이다.

우선 미국 대통령과 오스트레일리아 수상관 전화 회담을 나눈 스가 수상은 앞으로 각국 수뇌들과 전화 회담도 갖겠다는데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도 전화 회담을 나눌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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