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은 치사(恥事)했고 방법은 무도(無道)했다. 법과 절차를 짓밟아버린 법 집행은 파시스트적 무법천지가 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청구와 직무정지, 수사의뢰’에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최악사태, 사상초유, 전대미문, 상상초월 등 온오프라인에서 동원되는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는 최고의 높은음자리다.

추장관은 지난 24일 저녁, 윤 검찰총장에 대해 징계를 청구하고 직무를 배제했다. 그 다음에는 수사의뢰까지 했다.

추장관은 “윤 총장을 상대로 감찰을 진행한 결과 다수의 중대 비위 혐의를 발견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누구도 상상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야말로 군사작전 하듯 전광석화처럼 폭탄 급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검찰 안팎은 물론 법조사회 시민사회단체 언론 등에서는 난리가 났다. 부당성에 대한 시시비비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법적·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위법 부당한 처사라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이들에 의하면 직무배제는 비위 등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사실로 확인을 한 후의 최종적 조치인데도 불구하고 당사자에 대해 정당한 청문절차나 감찰절차도 밟지 않고 최강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민주국가의 법절차와는 전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혐의가 있어서 징계절차를 밟는 것이 아니라 우선 징계나 직무정지를 먼저하고 혐의를 찾아나서는 웃지 못 할 일을 버젓이 행해 졌다는 비판이다.

가령 “병원을 찾은 사람에 대해 여러 과정을 통해 진찰하고 처방전을 내야 하는 데도 사람을 먼저 수술대 위에 눕혀 칼질을 하며 병의 원인을 찾겠다는 돌팔이 의사보다도 못한 코미디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조롱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추장관의 위법·부당한 조치에 평검사, 부부장 검사, 부장검사, 지방검사장, 고등 검사장까지 망라한 사실상 전 검찰 조직이 분기탱천하고 있는 것이다.

현직인 한 부장검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최악의 사태”라고 했다. “정권의 말을 듣지 않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이익을 주겠다는 시그널”이라고 했다.

정권이 “권력 유지를 위해 검찰조직에 대한 협박과 공갈을 서슴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검사장 출신 법조인 34명도 입장 문을 냈다.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무시하는 위법·부당한 처사”라고 전제 한 후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남발과 아울러 전대미문의 위법·부당한 조치가 검찰개혁의 명목으로 자행되는 것은 심히 우려 된다”고 했다.

정치적 폭거, 법치주의 훼손, 명백한 직권남용, 광란의 칼춤 등 검찰 안팎의 비판은 거칠고 표현은 살똥스럽다.

“추미애가 터트린 폭탄이 정권말기 증상을 노출시키고 정권몰락의 신호탄”이 되고 있다는 독한 평가도 있다.

2만여 회원을 둔 대한 변호사 협회, 친여 시민사회단체인 참여연대도 정권비판에 가세했다.

언론의 논객, 사회·시사·정치평론가 등의 논평도 까칠하고 날카롭다.

“정의·법치·민주라는 최고 최대의 공적 가치를 권력 노략질에 이용 하고 있다”는 독한 주장이 있는가 하면 ‘민생에는 한없이 무능한 정권이 절대 권력 구축엔 무소불위로 거침이 없다“는 논평도 정권입장에서는 아픈 대목의 쓴 소리다.

이들의 비판과 주장은 검찰총장 개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법치와 정의라는 민주사회의 보편적 가치 붕괴에 대한 우려에서 나오는 것이다.

추장관은 왜 이러한 날선 비판과 해일처럼 밀려오는 정권 불신의 파장을 무릅쓰고 막가파처럼 막다른 몰락의 길로 달려가고 있을까.

여러 입방아가 있다. 본시 입방아는 소문을 근거로 한 민심의 목소리다. 그것이 사실일수도 있고 침소봉대일 수도 있다.

최근 추장관이 터트린 ‘검찰 총장 죽이기 폭탄’과 관련한 입방아도 그러하다.

그중 문재인 대통령이 차도살인(借刀殺人)도구로 ‘추미애’를 활용하고 있다는 소리도 있다.

살아있는 권력을 옥죄어 오고 있는 검찰의 수사를 차단하기 위해 추 장관에게 칼을 쥐어주고 검찰총장의 목을 치라고 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임기가 보장되고 임명장을 주며 “우리 검찰 총장”운운하며 살아있는 권력까지도 수사하라고 당부했던 대통령으로서는 직접 나설 수는 없었을 터였다. 그래서 추 장관에게 망나니 칼춤을 추도록 한 것이라면 참으로 비겁하고 옹졸하다.

“정권을 깊숙하게 겨냥하고 있는 검찰수사의 압박을 단칼에 잘라내, 공적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가 기구 전체를 영구 장악통치하는 지배체제 구축을 위한 친문 권력 카르텔의 고도로 계산된 작전의 일환이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권력의 지향이나 목적이 어디에 있든, 검찰 총장의 목을 비틀고 난 다음 추 장관에게 돌아갈 훈장은 어떤 것일까? 세속의 입방아는 그것이 알고 싶다.

법치 파괴의 공로로 ‘다음 총리직(?)’, 그걸 약속받은 건 아닐까. 정상적인 민주국가 시스템에서는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한 번도 상상할 수 없는 나라’를 만드는 문재인 정권이 아닌가. 염치를 외출 보내고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권으로부터 온갖 수모와 핍박을 받는 검찰 총장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백기투항인가, 죽음을 각오하고 불의한 권력과 싸워야 하는가.

입 방앗간의 촉새들은 법치와 정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권력의 폭거에 저항하기 위해서도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대의(大義)를 위해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를 다지라는 주문인 것이다.

이와는 달리 능욕을 참고 견디며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한때 동네 불량배 가랑이를 기어가며 비겁한 겁쟁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업신여김을 당했던 옛날 중국의 한신(韓信·BC230~196)이 후일 한나라의 명장으로 천하통일의 공을 세웠던 고사(故事) ‘과하지욕(跨下之辱)’을 인용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현재 검찰총장의 상황은 녹록치가 않다. 2천 몇 백 년 전의 이야기를 되씹을 만큼 한가하지가 않다.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고 절박한 것이다.

예부터 ‘사내대장부는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기보다 맞서 싸우다 죽는 길을 택하라’는 말이 전해온다. ‘죽기를 위해 싸우면 산다(死則必生)’는 말의 연결고리다.

당장 예리한 권력의 칼이 목을 겨누고 있다. 목젖까지 들이댄 형국이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굴종을 헤아릴 한가한 때가 아닌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절박한 시점이다.

대의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 윤 총장은 잘 알 것이다.

정의와 법치를 위해 목숨을 던질 것이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권력에 빌붙어 살 것인지의 선택은 순전히 윤 총장의 몫이다.

그래서 지금 국민의 이목은 30일부터 전개될 상황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윤 총장과 추장관의 진검승부에 거는 관심이다.

법치와 정의를 바로 세우느냐, 아니면 선출된 권력의 폭주와 횡포에 민주주의가 어떻게 망가지고 무너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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