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가 있다. 덴마크의 극작가 안데르센(1805~1875)이 1845년에 발표했던 동화다.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내몰렸던 소녀의 처참하고 비극적인 삶과 죽음의 이야기다.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읽었거나 들었을 터였다. 그만큼 유명한 동화다. 대충 이러한 줄거리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추운 겨울 저녁이었다. 소녀가 성냥 몇 통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팔기 위해서였다. 성냥을 팔지 못하면 집에 들이지 않겠다는 술주정 아버지의 성화와 학대가 무서웠다.

옷은 얇았고 신발은 벗겨져 맨발이었다. 추위에 떨며 성냥을 사달라고 애원했지만 아무도 사주지 않았다. 오가는 사람들은 무관심했고 제 갈 길만 재촉했다.

손과 발은 꽁꽁 얼어 곱았다. 감각이 없었다. 더 이상 추위를 견딜 수가 없었다. 소녀는 어느 집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곱은 손을 녹일 요량으로 성냥 한 알을 그었다. 잠깐 불꽃이 일었다. 순간 얼굴을 갖다 댔다.

그때 활활 타오르는 난로가 보였다. 환상이었다. 소녀는 다시 성냥에 불을 댕겼다. 이번에는 케이크 칠면조 등으로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이 보였다. 크리스마스 캐럴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도 보였다.

성냥불이 사라지면서 환상은 사라졌고 멀리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별똥별이 떨어지면 누군가가 죽어가는 것’이라는 할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다음 번 성냥을 켰다. 성냥불길 속에서 할머니 환영이 보였다. 불길이 사라지면 할머니가 사라진다는 두려움에 소녀는 가지고 있던 성냥에 모두 불을 댕겼다.

밝은 빛에 휩싸인 할머니는 소녀를 포근하게 감싸 안고 하늘나라로 갔다. 소녀는 그렇게 숨을 거두었다.

그런 밤이 지난 아침, 눈밭에서 소녀는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죽어 있었다’. 타다 남은 성냥을 손에 꼭 쥔 채로.‘

‘성냥팔이 소녀’는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안데르센은 말했다.

어른들의 아동학대와 노동착취,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에 대한 무관심과 나만 살겠다는 사회적 이기심을 고발한 것이다.

동화가 나왔던 1800년대 유럽은 급속한 산업화와 자본주의 물결이 요동칠 때였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어린아이까지 가혹한 노동착취 현장으로 내몰렸다.

갑작스런 변화에 사람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생존경쟁에서 뒤처진 소외계층은 삶의 속박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성냥팔이 소녀’가 나온 지 175년이 된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사회현상이 그때의 시대상황과 오버랩 되고 있다. 당시 소외계층의 삶의 그림자를 밟고 있는 것 같아 여간 씁쓸하지가 않다.

그동안 일으켰던 산업화와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성냥팔이 소녀’ 같은 많은 사회적 소외계층이 신음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서울 서초동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숨진 지 반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는 60대(여) 시신이 발견됐다. 발달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36)은 어머니의 죽음을 주위에 알리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노숙생활을 하다가 한 민간 사회복지사의 신고로 사회에 알려졌다. 이웃과 행정과 사회적 무관심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방배동 모자 사건’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구축의 절실함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지난해 7월에는 42살의 탈북 여성이 여섯 살 아들과 함께 서울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굶어죽은 시신으로 발견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죽은지가 두 달이 넘었는데도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충격적 사건에 당시 외신(뉴욕타임스 9월21일자)는 ‘그녀는 굶주림을 피해 북한을 탈출했고, 부유한 나라에서 가난하게 죽었다’는 기사가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이는 분명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 만들어낸 비극일 수밖에 없다. 사회안전망에 구멍이 뚫렸고 소외계층 복지 사각지대가 곳곳에 널려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꿈은 환상에서 나타났던 몸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난로와 푸짐한 식탁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의 ‘성냥팔이 소녀’같은 힘들고 어려운 소외계층에게 건네는 사회공동체의 온정과 행정적 사회적 관심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러한 어른들의 따뜻한 손길과 사회적 관심이 있었다면 분명히 ‘성냥팔이 소녀’는 그렇게 처참하고 비극적으로 최후를 마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안데르센은 ‘성냥팔이 소녀’를 통해 이러한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예로 들었던 ‘방배동 모자 사건’이나 ‘탈북모자 아사(餓死)사건’도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촘촘하게 짜여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었을 것인가. 아쉬움이 남는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온정이 그리운 계절이다. 그래서 서로 서로 손을 내밀어 따뜻한 인정을 나눌 수 있다면 ‘코로나 19’ 확산으로 더욱 얼어붙은 서로의 몸과 마음을 녹일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 보는 것이다.

마침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김남식)가 지난 1998년 겨울부터 매해 ‘희망 나눔 캠페인’을 게속해오고 있다.

사랑의 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하며 목표액의 1%를 달성할 때마다 1도씩 오르는 ‘사랑의 온도탑’을 세워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번(2019년 2월 1일 마감)에는 47억8천만 원을 모금하여 ‘사랑의 온도’가‘100,1도‘를 나타내는 뜨거운 결과를 기록했다.

올해는 12월1일부터 캠페인을 시작했다. 내년(2021년) 1월 31일까지 62일간 37억3천 만 원 모금 목표를 세웠다.

20일 현재 모금액은 5억9천474만원으로 ‘사랑의 온도가 15.9도’다. ‘코로나 19’ 등의 악재로 사랑의 온도가 빨리 올라가지 않는다는 걱정의 소리도 있다.

그러나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말이 있다. 가진 것을 조금씩 덜어내 가난하고 소외받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은 더불어 사는 사회공동체의 몫인 것이다.

그것은 이시대의 많은 ‘성냥팔이 소녀들’에게 희망을 주는 관심이자 사랑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꿈의 참뜻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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