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는 강정마을 공동체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을 시작한 지 어느새 5000일이 되어간다. 흘러간 많은 날들 만큼,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위한 투쟁에 각각의 방식으로 함께 했다. 오는 23일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5000일을 맞아 강정평화네트워크는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에 참여해온 다양한 주체의 목소리를 모았다. 이들의 목소리를 4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 주>

임보라 한국기독교장로회 섬돌향린교회 담임목회 목사(사진=강정평화네트워크 제공)
임보라 한국기독교장로회 섬돌향린교회 담임목회 목사(사진=강정평화네트워크 제공)

임보라 

강정 투쟁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수도 없이 많으나, 레미콘 투쟁, 망치질과 전기톱 체포 사건, 그리고 삼거리 식당을 꼽고 싶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공사장으로 들어가는 수십대의 레미콘 차량을 막아서거나, 때로는 차량 밑으로 들어가거나, 위로 올라가서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투쟁이 장기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연행되는 일은 다반사였고, 용역, 경찰의 폭력적인 제지 과정에서 부상은 물론, 항의과정에서의 폭력상황은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경찰들의 고착 명령이 떨어지면 의자에 앉은채 들여올려져서 촘촘히 붙어 있는 경찰들이 만들어내는 아주 작은 평수의 감옥에 갇히는 순간, 몰래 때리거나 꼬집거나 하는 경찰들에 대한 항의가 이어지고, 레미콘이 들어간 후 고착이 해제되면 다시 공사장 정문 앞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는 질긴 투쟁의 장면들이 생생하다. 

그런가하면 망치질 체포와 전기톱체포는 끔찍한 사건이다. 폭력경찰들이 벌인 일이다. PVC파이프 안으로 팔을 넣어 서로 연결되어 있던 강정지킴이들을 떼어놓기 위해 경찰들이 망치질과  전기톱을 들이댄 것이다. 필자도 충격으로 인한 비명과 눈물이 한데 엉킨 그 현장 상황을 고스란히 목격한 바 있다. 셀 수 없을 정도의 경찰의 불법 폭력은 공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으며 이는 시민불복종 운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한편, 지난한 투쟁과정 속에서 삼거리식당은 지친 몸과 맘을 달래주는 사랑방이다. 

슬픔과 분노가 가득찬 상황이나, 누군가 석방되어 나오거나, 소소한 기쁨이 가득한 순간에도 따뜻한 밥한그릇을 먹으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온기를 품은 안식의 공간이다. 이 공간은 강정투쟁을 이어올 수 있는 힘의 뿌리이기도 하다. 근래 삼거리식당의 명셰프 종환삼촌의 병환소식이 들려와 마음이 아리다. 

강정투쟁은 나에게 ‘질긴 놈이 이긴다!’를 떠올리며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해도 감내하며 다시금 결의를 다지게 하는 현재진행형의 투쟁의 의미를 새겨주었다.  강정투쟁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 중에도 마치 강정투쟁은 이미 끝난 일로 여기는 이들이 더러 있다.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아침이면 해군기지 정문 앞 백배로 평화를 염원하고, 낮에는 전국각지, 떄로는 해외에서 온 분들까지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기운을 모아낸다.  해군기지가 들어섰다고 해서 평화의 섬 제주 실현을 포기하거나 체념하지 않았다는 것을 늘 우리에게 상기 시켜주는 모든 몸짓들이 평화 그 자체이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길이다.’라는 말처럼 강정투쟁은 평화가 곧 길임을 깊이 새겨주고 있다. 

이선자 씨는 한 달에 한 번 강정마을 삼거리식당에서 활동가들을 위해 밥상나눔을 하고 있는 '한살림 우렁각시'이다.(사진=강호진 제공)
이선자 씨는 한 달에 한 번 강정마을 삼거리식당에서 활동가들을 위해 밥상나눔을 하고 있는 '한살림 우렁각시'이다.(사진=강호진 제공)

이선자(한 달에 한 번 삼거리식당에서 밥상나눔 하는 한살림 우렁각시)

동네친구를 우렁각시 만드는 법.
1. 경치 좋은 데 보여준다고 하고, 강정천 주차장에 차를 댄 후, 멧부리로 숲길을 걸어간다.  천변에 오소록한 숲길이 예쁘다고 좋아하다가, 숲이 끝나고 강정천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도착한 친구는 멋지다고 탄성을 지르다 오른쪽에 해군기지 쇠창살을 보고 눈살을 찌푸린다. “미친 거 아니야? 이런 곳에 저런 거를 지을 생각을 하고. 아, C8. 욕이 절로 나오네..” 하고는 우렁각시 합류.

2. 맛있는 거 만들어서 활동가들이랑 같이 먹고 오는 거라고 얘기하고, 냇길이소를 먼저 간다. 신목 담팥수의 풍채에 한 번 놀라고, 냇길이소의 비경에 또 한 번 놀란다. 나오는 길에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로 강정천이 망가지고 있는 걸 알려주면, 말도 안 된다며, 평생 처음으로 인스타그램에 강정해군기지 반대 해시태그를 달게 되고 우렁각시 합류.  

강정에 와 보면 알게 된다, 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에 해군기지가 생긴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인지. 10년째 강정 언저리에 살고 있다 보니, 사람들에게 “강정은 요즘 어때?” 라던지, “해군기지 다 지어진 거 아니야?” 이런 말들을 자주 듣고 답을 하게 된다. 

강정에서는, 여전히 생명평화100배를 하고, 미사를 올리고, 인간띠잇기를 하고 삼거리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는다. (코로나로 잠시 멈춤...) 프코센터에서는 평화 워크숍이나 강연이 열리고, 강정천부터 멧부리, 바다 속까지 해군기지가 생긴 이후에 변하고 파괴되어가는 것을 모니터링하고 기록한다. 여전히 반대활동을 하고 있고, 재판이 진행 중이고, 연대하러 온다. 나 역시 한살림 조합원들과 밥상연대를 계속 하고 있다. 

강정해군기지반대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반전평화활동의 현장으로 여전히 여기 사람이 있고, 운동이 있다. 5000일의 경험과 시행착오와 웃음과 눈물이 있고, 아직 하지 않은 미래의 싸움이 있다. 섣불리 실패했다, 끝났다고 할 수 없는 이유는 강정에서 우리나라 평화운동이 지속되고 있고 진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떠난 사람도 많고, 새로 온 사람도 많다. 하지만 강정으로 스며든 사람들이 계주를 하듯, 벽돌을 쌓아올리듯 평화를 향한 시간을 살아내고 그런 일상이 이어진다. 문정현 신부님이 매일 부르는 노래처럼.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

 

서신심 씨.(사진-강정평화네트워크 제공)
서신심 씨.(사진-강정평화네트워크 제공)

서신심

2007년 2월에 서울에서 서귀포로 이사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따뜻하고 경관이 아름다우면서도 부동산 투기가 없어 내 집 마련이 가능한 곳을 찾아왔을 뿐이다. 제주의 군사기지화 문제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사하고 보니 위미리에 ‘해군기지 결사반대’ 깃발들이 촘촘히 펄럭이는 게 보였다. 대한민국 전체가 미군기지나 다름없는 나라에 살면서, 제주만은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곳으로 남아있으리라 착각한 나의 아둔함을 깨는 장면이었다.

그 봄이 지나자 해군기지 부지가 강정으로 확정됐다는 말이 들렸다. 처음엔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화순과 위미에서 그랬듯 주민의 반대로 또 무산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의 마을이장 중심 소수 주민만 모여 승인한 기지 확정은 취소되지 않았다. 양윤모씨를 비롯한 시민들의 처절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구럼비가 발파되던 때를 어찌 잊을까. 꽃샘추위 속에서 웃통을 벗고 절규하던 문정현신부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강정 해안가에 살던 붉은발말똥게며 강정 앞바다 속 연산호같은 비인간 생물체들은 저항조차 모르니 더 슬프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우리 자신의 안전을 위협할 뿐인 군사기지를 만드느라 생명을 파괴하고 세금을 낭비하는 이 미개함을 무엇으로 설명하랴. 시대의 야만에 부서진 강정은 뭇 생명에게 슬픔이고 분노고 절망이다. 그래도 저항은 계속된다. 매일의 미사와 인간띠 잇기로 해군기지 폐쇄를 외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제2공항을 막는 것도 공군기지로서의 군사기지 저지투쟁이다. 요즘은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를 막으려 싸운다. 해군기지를 폐쇄하고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해방되는 날까지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고권일
고권일 강정마을해군기지 반대주민회 공동대표(사진=강정평화네트워크 제공)

고권일

저는 강정마을 출신으로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어 지금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공동대표를 맡은 고권일입니다.

5000일. 13년 7개월에 해당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해군기지 건설부지가 강정마을에 유치된 것을 반대하기 위해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기자회견 한 날로부터 센 날짜입니다. 그날이 2007년 5월 18일입니다. 그리고 올해 1월 23일이 5000일이 되는 날입니다. 반대 싸움을 해 온 그 기간들 모두 기억이 흐릿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특정한 날짜가 되면 밀려오는 기억들이 있습니다. 1월 31일 군관사 저지투쟁 농성천막 행정대집행이 오면 아찔하게 아슬아슬 올라있던 망루에서 우리를 끌어내리려던 경찰들과 우리를 지키기위해 끝까지 우리곁을 떠나지 않던 사람들의 기억이 있습니다. 3월 7일 구럼비 발파일이 다가오면 새벽부터 울리던 사이렌 소리와 캄캄한 어둠을 뚫고 몰려와 강정천 다리를 막고 서던 사람들과 우리를 연행하던 경찰들과 그런 우리를 내려다보며 비웃던 해군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전후로 이어지는 치열했던 몇 달간의 기억들이 쏟아집니다.

6월 20일 강동균 회장 연행을 막으려 필사적으로 하루종일 해군기지 출입구들을 틀어막던 주민들의 눈물들이 기억납니다. 매년 7월 마지막 주가 되면 제주해군기지 부당성을 알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생명평화대행진의 열기가 뜨겁게 떠오릅니다.

9월 2일 구럼비 가는 길목이 육지경찰의 침탈로 영원히 막히던 날, 그 숨 막히는 순간순간들이 회한처럼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기억들 이전에 구럼비에서 지냈던 아름다웠던 기억들이 겹쳐집니다. 그 아름다운 기억에는 그 순간들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있기에 눈물처럼 가슴이 아픈 기억이 덮쳐와도 살아갈 수 있게 버티는 힘이 되어줍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은 제주도에 난개발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 되는지, 지역공동체가 얼마나 처참하게 부서지는지 산증인이 되는 사건입니다. 제주도는 오늘날 수많은 난개발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제2공항 건설계획이라는 거대한 악몽이 꿈틀거리고 있는 섬이 되었습니다. 부디 이 제주에 더 이상 강정과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주가 더 이상 망가지지 않도록 강정을 통해 부디 깨달음을 얻고 미래를 내다보면 좋겠습니다. 꼭 그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타카하시 토시오 오키나와한중민중연대 활동가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2012년 9월 5일, 제주에서 열린 IUCN과 동시 개최된 심포지엄과 강정 교류를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오키나와 참가자 10여명 중, 저를 포함하여 4명이 입국거부당하고, 마찬가지로 도쿄에서 도착한 1명도 입국거부당한 일입니다.

한국 정부는 도리에 어긋나는 제주해군기지 건설 문제가 전세계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기에 오키나와·일본에서 강정으로 향하는 저희의 입국을 거부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평화를 바라는 전세계 사람들이 마음을 보내는 강정 해군기지 반대 투쟁, 오키나와도 인권·평화의 국제연대로 헤노코 신규 기지 건설을 저지하겠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투쟁! 평화! 연대!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