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는 강정마을 공동체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을 시작한 지 어느새 5000일이 되어간다. 흘러간 많은 날들 만큼,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위한 투쟁에 각각의 방식으로 함께 했다. 오는 23일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5000일을 맞아 강정평화네트워크는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에 참여해온 다양한 주체의 목소리를 모았다. 이들의 목소리를 4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 주>

국제 평화활동가 글로리아 스터이넘(우)과 크리스틴 안(좌).(사진=강정평화네트워크)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크리스틴 안 

우리는 다른 시대에 미국의 서로 반대인 해안에서 자랐습니다. 2011년 8월 두 사람 모두 뉴욕 타임즈에 남한 근해 제주도의 사실상 미국 해군기지 건설을 규탄하는 논평을 썼습니다. 보물섬 제주는 확실히 지구상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입니다. 글로리아가 ‘군비 경쟁이 천국을 침범한다’ 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썼듯 “이 해군 기지는 로드 아일랜드 섬의 2/3 크기도 안 되는 섬의  환경적 재앙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위험한 도발이 될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투쟁에서 졌습니다. 한 때 자연 그대로의 어촌이었던 곳은 순전히 대중국 보호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미군 기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해안의 천국과 따뜻한 화산암 비탈에 활짝 핀 야생화들의 섬인 제주도를  보호하기 위해 단결했습니다. 오랫동안 신들의 나라라고 불려진 섬은 지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세계의 새로운 7대 자연 경관의 하나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제주도를 보존하기 위한 투쟁에 참여하는 우리는 이 목표를 매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지에 의해 가장 위협받는 강정 주민들을 지지하기 위한 우리의 투쟁에서 형성된 우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되는 우정으로 제주도를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크리스틴은 강정에서 그가 임신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요. 당시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제주해군기지에 대한 반대 글을 쓴 것 때문에 남한의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가 항의하기 위해 주미한국대사관에 전화하자 그들은 “우리에게 전화하지 마세요. 미 국무부나 미 국방부에 전화하세요.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이 기지를 짓도록 압박을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글로리아의 우정은 크리스틴이 그 공격으로부터 살아남도록 도왔습니다. 그의 아름다운 딸이 태어났을 때 강정 주민들의 혼이 그녀의 뱃속에 기억되어 있었기에 크리스틴은 딸에게 제주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오랫동안 평화와 여성들의 섬으로 알려진 제주는 전쟁과 폭력으로부터 해방될 세계를 구축할 다음 세대 평화활동가들을 고무시키고 있습니다. 강정의 저항 덕분에 우리의 우정은 2015년 위민 크로스 디엠지의 도보를 조직했던 위민 크로스 디엠지 Women Cross DMZ 창설, 초국적 페미니스트 캠페인인 코리아 피스 나우Korea Peace Now!를 포함, 더 많은 혁신적인 평화 구상들을 태동하게 했습니다. 투쟁이 시작된 지 이 역사적인 5천일 기념일에 우리는 여러분들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삶과 평화운동과 세계에 끼친 믿을 수 없는 영향들을 돌아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박석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사진=강정평화네트워크 제공)
박석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사진=강정평화네트워크 제공)

박석진

강정투쟁에 대한 저의 기억은 눈물이에요. 2012년에 강정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지요. 해군과 시공사 측은 구럼비를 파괴하며 공사를 강행했고 당시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기지사업단 정문에서 스크럼을 짜며 불법공사에 항의하는 한편 공사를 지연시키고 있었죠. 그러다 그 해 12월 대선에서 박근혜가 당선이 됐어요. 사실상 제주해군기지를 막을 방법이 없어졌죠. 더 이상 스크럼을 짤 수도 없었고요. 이미 경찰들은 그 동안 공사 저지 행동을 해왔던 사람들을 정권이 바뀌며 전원 연행할 태세였으니까요.

그래서 현장의 사람들과 논의해 스크럼 짜는 것을 중단하기로 했죠. 힘든 결정이었어요. 그리고 얼마 후 현장의 지킴이들과 술을 한 잔 했는데 누군가 노래를 불렀어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옛날 노래였는데, 울음이 터지기 시작했죠.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과 손 잡고 참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저지 행동 과정에서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온 몸이 멍이 들고 다쳐가며 버텼던 시간들이 떠올랐던 것 같아요. 참 이상하게도 한 참을 울고 나니 왠지 다시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데 힘겨울 때 함께 울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우린 지지 않을 수 있을거에요. 

개인적으로 제주해군기지 반대 투쟁 외에도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이나 무건리 훈련장 확장 반대 투쟁 등 몇 번의 군사기지 반대 투쟁 현장에 참여했었습니다. 물론 시민사회단체라는 조직적 베이스에 의한 활동이었는데요, 강정 투쟁은 그런 점에서 제게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강정 투쟁 역시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 진행했지만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 현장에서 함께 한 사람들은 주되게는 개인 차원에서 결합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신문기사를 보고 온 사람들도 있었고 제주 여행을 하다 현장을 보고 머무르게 된 사람들도 있었지요.

그런 탓이었을까요. 강정 투쟁 현장의 활동방식이나 의견 수렴 방식은 좀 달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민사회단체 즉, 조직적 베이스에 의한 활동은 주로 시민사회단체들간의 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안을 실행하는 방식인데 개인적 차원에서 결합한 사람들은 그런 고정적인 형식의 회의구조를 갖기 어렵고 또 어떤 일을 하라고 강제하기도 어렵지요. 현장에 있는 각자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또는 하고 싶은 활동을 해나가는 양상이었지요. 그런데 강정에서는 그런 각자의 활동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또 조직적 차원의 운동에서는 보기 어려운 자발성과 창의성으로 가득했었습니다.

강정 투쟁을 겪으며 저는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조직적 운동이 갖는 전문성 및 지속성과 개인적 활동이 갖는 자발성 및 창의성이 잘 어우러지는 운동의 필요성 말이에요. 또 강정 투쟁은 군사주의적이고 반평화적인 국방정책에 반대한다는 의미 외에도 환경과 생태 등 그 전에 이슈화되지 못했던 우리사회의 다양한 가치들이 제기되는 과정이기도 했지요. 조직과 개인, 반미나 평화에만 매몰되지 않는 다양한 가치와 주장들의 전개 등의 경험은 이후 무분별한 기지 건설이나 확장에 반대하는 활동에 또 다른 운동의 가능성과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에코토피아는 생태주의적 지향에 공감대를 갖고 매년 연대하는 캠프를 꾸리는 등의 활동을 하는 작은 그룹이다.
동아시아에코토피아. 생태주의적 지향에 공감대를 갖고 매년 연대하는 캠프를 꾸리는 등의 활동을 하는 소규모 그룹.(사진=강정평화네트워크 제공)

동아시아 에코토피아

2018년 국제관함식 저항 행동 때 동아시아에코토피아에서 함께 참여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개인적으로, 또 친구들과 강정에 갔던 적은 있지만 에코토피아에서 같이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우리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드문드문 경험하고 들어왔던 강정 투쟁의 과정과 의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과정조차도 폭력적이었던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것 만이 아니라 평화의 섬 제주를 위한, 나아가 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위한 투쟁이라는 목적이 긴 시간 동안 굳건하고 끈질기게 싸워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5000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냥 흘러간 시간은 하루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매일매일 각자의 최선 속에서 꽉꽉 찬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다른 곳에서 싸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버팀목이 되고 영감을 줬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강정 투쟁에 연대하고, 강정 투쟁도 다른 사회운동을 지탱해주는 커다란 지지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김재훈 기자)
(사진=김재훈 기자)


딸기(강정평화네트워크 회원)

강정투쟁의 5천일에 대해 말하라 한다면, 저에게는 그것은 실패의 역사인 것 같습니다. 2016년 2월 26일 해군기지 완공의 팡파레가 울리는 순간. 우리가 함께 싸워왔던 동지들을 믿지 못하고 미워하기 시작한 순간. 하나둘 마을을 떠나간 순간. 이제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고 말한 순간. 어쩌면 사랑하던 동지들이 감옥에 갔던 순간. 레미콘이 기어코 들어갔던 순간. 경찰들의 손아귀에서 갈갈이 찢겨 나자빠진 순간. 구럼비 바위가 산산히 부서진 순간. 어쩌면 그 순간에 이미 실패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매순간 실패 해 온 나는 왜 여전히 이 실패를 지속하고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이 거대한 실패의 역사 속에서 배운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용기 입니다. 전쟁같이 싸이렌이 울릴때도, 차가운 시선에 등골이 서늘해 질때도, 무릎이 꺾이는 좌절이 있을때도, 매일매일을 지켜오는 인간띠잇기에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제가 낼 수 있는 용기였습니다. 세명이 있을때도 300명이 있을때도 그냥 그 자리에서 서 있는 것, 그것이 비겁한 저의 가장 큰 용기 였습니다. 그리고 이 용기를 이곳 강정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배웠습니다. 

생계를 뿌리치고 현장에 섰던 마을 삼촌들에게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에 와 이리저리 눈치보면서도 좌충우돌 살아가는 지킴이들에게서, 명예도 이름도 없이 연대해온 제주의 활동가들에게서, 끝없이 소식을 전해주고 연대하는 국제 활동가들에게서, 언제나 도움을 청하면 마다하지 않는 전국의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서 제가 배운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보여주는 용기 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만은 지지 않았다고 위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을 가슴속으로 공감할 순 없습니다. 오히려  실패했고 졌지만 우리가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다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실패의 순간에서 강정의 활동가들이 해온 최선의 선택들, 그 속에서 보여주었던 인간의 용기를 통해 활동을 넘어 삶을 대하는 방법을 배워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강정의 지킴이들은 단지 ‘해군기지’가 아니라 ‘군사주의’라는 거대한 뿌리와 싸우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투쟁의 대상은 해군기지, 군사기지에만 있지 않고 때로는 바로 나 자신, 우리 공동체 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무척이나 괴롭지만 분명한 것은 바로 성찰의 괴로움이 변화를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모든 것은 결국 ‘변화’한다는 것 아닐까요. 언젠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향한 괴로운 변화에 함께 하길 기대해봅니다. 그리고 언제나 먼저 용기를 내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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