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열풍이 거세다. 뜨거운 바람이다. 남녀노소가 열광하고 있다.

트로트는 한때 록이나 팝송, 댄스 뮤직 등 서양음악에 밀려 천덕꾸러기였다. 찬밥신세나 다름없었다.

한국적 정서나 음감에 맞는 노래이면서도 ‘뽕짝’이니 ‘관광버스 노래’니 하며 홀대를 받아왔다. 구닥다리 흘러간 옛 노래 정도로 취급을 받았었다.

그러던 트로트가 최근 1~2년 사이 안방을 휘젓고 있다. 돌개바람처럼 유튜브는 물론 SNS영역에 까지 소용돌이 치고 있다.

트로트는 서민의 삶과 애환을 노래하는 민중의 노래다. 트로트 슈퍼스타 나훈아는 트로트를 ‘유행가’라고 했다. ‘흐를 유(流), 다닐 행(行), 노래 가(歌)’, 서민들이 물 흐르듯 공유하며 함께 부르는 민중의 노래라는 것이었다.

한국의 유행가는 식민지 시절의 서러움을 노래했다. 전쟁의 아픔과 고난도 담아냈다. 산업개발시대의 역경과 애환을 달래기도 했다. 사랑과 이별, 그리움과 희망을 엮어내기도 했다. 우리문화의 원초적 감성을 담아냈던 민중문화 장르가 트로트였다.

그래서 트로트의 유래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트로트는 이미 한국인의 정서에 체화되어 녹아있는 문화 현상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트로트는 지금 한국적 문화 트랜드로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자랑스러운 한국 노래 문화의 아이콘이다.

강하게 불어 닥치는 트로트 바람은 지난 2019년 2월부터 불기 시작했다. 종편 TV 조선에서 ‘내일은 미스 트롯(이하 미스 트롯)’이라는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였다.

참가자들의 뛰어난 가창력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붙잡았고 소탈하고 인간미 넘치는 출연자들의 드라마 같은 인생역전 사연이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송가인이어라”로 이야기되는 송가인이 트로트 가수 스타덤에 오른 것도 여기에서다. 홍자, 정미애 같은 묻혀있던 트로트 가수들이 계속 발굴되면서 트로트에 대한 관심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때마침 돌아온 나훈아의 트로트 콘서트가 트로트 바람을 일으키는 강풍으로 작용했다.

국민 MC라 불리는 유재석이 공중파 방송(MBC) 프로그램에 ‘유산슬’이라는 이름으로 트로트 신인가수에 도전하면서 SNS에 뜨거운 트로트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와중에 ‘미스터 트롯’이 트로트 열풍에 결정타를 날렸다. ‘미스 트롯’의 남자버전인 ‘미스터 트롯’은 2020년 1월 2일 첫 방송이후 3월까지 계속되면서 시청률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10회에는 시청률 33.8%까지 오르는 경이로운 대박을 터뜨렸다.

‘미스터 트롯’이후 지상파는 물론 종편, 케이블 채널 등 거의 모든 방송매체의 대다수 프로그램에 트로트가 등장했다, 그만큼 트로트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뽕짝’ 등 구시대 구닥다리 장르로 천시(?)받던 트로트가 양지로 나와 이제는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가장 매력 있는 상품이자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2020년 12월 31일 방송된 ‘미스 트롯 2’는 트로트가 종합예술의 경지에 진입했다는 신호였다. 종합예술의 장르에 트로트가 자리했음을 말해 줬던 프로였다.

포크와 록 음악, 비트박스, 봉 춤, 삼바 춤, 태권도, 마술, 아이돌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가 흡수되었기 때문이었다. 트로트의 흡인력과 블랙홀을 느끼게 했던 무대였다.

여기서 ‘효녀 제주 댁’의 감동 스토리가 등장해 트로트 무대의 눈시울을 적셨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서른두 살(89년생), 결혼 4년차인 두 아이의 어머니 양지은 이야기다.

양지은은 ‘미스 트롯2’ 마미부에 출전, 무대에서 자기소개를 하며 도전 동기와 이유를 밝혔다.

대충 이러한 내용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판소리에 입문했다. 21살 되던 해 아버지가 당뇨 합병증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래서 자신의 왼쪽 신장을 떼어 줬다.

그 후 아버지는 건강을 찾는 듯 했다. 그러나 수술 후 자신(양지은)은 배에 힘을 쓸 수 없었다. 슬럼프에 빠졌다. 그래서 음악을 포기해야 했다.

아버지는 많이 미안해 하셨다. 그 후에 간암이 생겨서 간을 절제하고 합병증으로 발가락도 자르게 됐다.

아버지는 방송에서 노래하는 제 모습을 한번이라도 보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소원이었다. 아버지의 세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소원을 이뤄 드리기 위해 ‘미스 트롯’에 도전하게 됐다“.

양지은의 감동 스토리다. 여기서 ‘효녀 제주 댁’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붙여졌다.

양지은은 오디션에서 ‘아버지와 딸’(온누리 작사·박현진 작곡)을 선곡 했다.

아버지에 대한 간절함과 애절함을 토해내는 노래였다. 눈시울 붉게 하는 감동의 사부곡(思夫曲)이었다.

심사위원 11명 전원이 올 하트를 눌렀다. 만점을 받은 것이다. 본선 진출권을 따낸 것이다.

그래서 1월 21일 본선 2차 경선을 치렀다. 일대 일 데스매치 였다. 앞으로 가느냐 주저앉느냐를 가르는 무대였다. 양지은은 잘나가는 현역 가수 아이돌 부 허찬미와 겨뤘다.

선곡은 박정란 작사, 공정식 작곡, 김용임 노래의 ‘빙 빙 빙’이었다.

음색은 맑고 고왔다. 암반 수 같은 무공해 청량감의 목소리라는 평가가 나왔다. 표정은 밝고 단아했다. 구김살 없는 깔끔한 매너는 심사위원과 시청자들의 눈과 귀와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심사위원 조영수(가수·작곡가)는 “양지은씨에게 정말 놀랐다. 성량, 음정, 박자, 너무 좋았다. 정통 트롯인데 거의 안 꺾었다. 특별한 기교나 꺾기 없이도 정통 트롯의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극찬했다.

‘빙 빙 빙’을 부른 가수 김용임도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래서 3라운드 진출권을 획득했다. 오는 28일(목요일) 밤이 진퇴를 가르는 도전의 무대다.

양지은 노래에 대한 조회수가 100만을 넘어섰다. 칭찬과 응원, 안타까움과 격려의 댓글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트로트 열풍’은 시대 상황의 반영일 수도 있다. 어렵고 힘든 상황의 고단함을 트로트에 의지에 위안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2020년 코로나 19 재앙’이 많은 이들에게 고통과 불안을 안겨 줬다면 또 한편의 ‘2020 트로트 열풍’은 이러한 고통과 불안을 잊게 하고 상처 난 마음을 다소 위로하고 다독거리는 힘으로 작용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노래하는 곳에 사랑이 있고 힘이 있다”는 말이 있다. ‘노래의 날개’ 위에 굳은 마음을 녹이는 힘, 서로를 하나로 묶은 힘,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오래전 영국의 유명화가 알프레드 윌리암 헌트(1830~1896)도 “음악은 상처 난 마음에 대한 약”이라고 말한 바 있다. 노래가 갖는 치유의 힘을 말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한국 사회에서 일고 있는 ‘트로트 열풍’이 ‘코로나 19’로 고통 받고 상처받고 불안 해 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상처를 감싸 안는 ‘치유의 묘약’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트로트는 애환을 달래고 다독거리는 손길이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묘약이며 희망을 담금질하고 분열과 갈등을 하나로 묶는 한국 문화의 버전인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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