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용의 꽃, 승무' 한 장면. (사진=KTV 갈무리)
'한국 무용의 꽃, 승무' 한 장면. (사진=KTV 갈무리)

조지훈의 '승무'라는 시는 한국전통무용의 정수인 '승무'라는 춤을 섬세하게 묘사한 시다. 기다란 장삼이 하늘하늘거리며 사뿐히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처럼 우아하고 아름답다. 불교적 색채가 강한 이 춤은 기다란 장삼을 뿌리면 멀리 퍼져나갔다가 흘러내리는 곡선미가 백미다. 몇 해 전 이매방 선생님 제자 백경우 씨의 '승무'를 본 적이 있다. 동영상이 아닌 전문 무용수가 추는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본 것은 처음이다. '승무'의 첫 연과 마지막 연의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라는 시구가 떠나질 않았다.

승무는 한 개인이 창작해 낸 춤이 아니라 삶의 몸짓으로 출발해 오랜 세월 지나면서 서서히 완성된 춤이다. 민중들의 삶의 몸짓이 그대로 스며든 전통춤의 본질이며 핵심이라고도 한다. 승무는 보통 승려가 추는 불교적 춤이라고 알고 있지만, 조선시대 한량무나 탈춤에도 승무를 추는 승려가 등장한다. 

전통춤은 호흡에서 시작해 호흡으로 완성된다. 들이 마시기 내쉬기를 반복하며 박자를 만들어 나간다. 몸속 기의 흐름을 따라 호흡하면서 조절해 나가야 한다. 전통춤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하기 힘든 호흡법이다. 꼬리뼈에서 호흡을 끌어올려 정수리까지 들이마신 후 천천히 내쉬기를 몇 번 반복하다 보면 몸에서 땀이 저절로 흘러내린다. 서양 춤처럼 정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아하고 중후한 전통춤의 멋이 살아나지 않는다. 아마추어 무용수들이 제일 어려워 하는 부분도 바로 호흡이다. 호흡으로 춤의 강약을 조절하고 관객들을 들썩 거리게 하는 추임새도 호흡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전통춤은 쉽게 습득되는 게 아니다. 오랜 시간과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입춤이나 태평무를 배울 때 선생님께서 ‘동작은 예쁘나 아이들이 학예회 발표하는 것처럼 춤이 가볍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처음에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나름 호흡을 하면서 손동작이나 발놀림을 하는데 뭐가 문제이지? 라는 의문을 수없이 던졌다. 원인도 모른 채 꾸준히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선생님께서 춤이 진득해졌다고 하셨다. 가볍다. 진득해졌다. 뭐가 달라졌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호흡이었다. 어느새 호흡이 길어지고 어느 정도 완급을 조절하면서 춤을 출 수 있게 된 것이다. 

전통춤은 대체로 빠른 리듬이 아니다. 춤에 사용하는 음악이 전반부는 굿거리고 후반부는 자진모리가 대부분이다. 굿거리는 느리다. 느린 부분을 표현하려면 호흡을 쪼개야 한다. 음악과 함께 천천히 내쉬어야 한다. 전통 무용에는 멈춤이 없다. 관객들이 보기에는 멈춘 것처럼 보일지라도 미세한 움직임의 연속이다. 이것을 호흡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통춤은 숨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국악에 대해 중학생을 상대로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대체로 전통 음악과 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유는 너무 느리고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서양 리듬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는 전통춤은 낯선 리듬이다. 아이들의 말에 공감은 하지만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아이들이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고 여유로움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아이들마다 결과를 향해 달려가는 속도와 장애물이 다르다.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거나 이겨내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아이들도 있다. 어른들은 아이의 자존감을 살려 준다는 이유로 거들어 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오히려 아이들에게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인 인내와 끈기를 키워주는 동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전통춤은 오랜 인고의 세월동안 민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완성된 예술이다. 민중들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제주도도 제주도의 환경, 바다, 산 등 제주인의 삶 그 자체이다. 빠르게 변하는 글로벌 시대에 맞춰서 발돋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가장 제주다운 것이다. 제주 도민들이 제주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방법도 제주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승무'가 오랜 세월 민중들의 삶이 종교로 승화시켜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미래의 아이들에게 제주도 최고의 가치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천천히 한 걸음씩 호흡하면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공항문제도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양정인

뒤늦게 한국무용을 배우기 시작한 양정인씨는 전문 무용가가 아니라 춤을 즐기는 춤꾼이다. '방구석 노인'이 아니라 '푸릇한 숙인'이 되고 싶은 그에게 춤은 삶의 전환점이 됐다. 춤은 끝없이 익히는 과정이다. 그가 점점 겸손해지는 이유다. 춤에서 배운 이치를 가르치는 아이들과 나누기도 한다. 배움과 가르침이 뫼비우스의띠처럼 연결되는 세상은 이야기가 춤추는 교실같다. 독서지도사이기도 한 양정인의 '춤추는 교실'은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 제주투데이 독자들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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