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읍 의귀리 속냉이골
남원읍 의귀리 속냉이골 묘 일대를 벌초하고 있는 모습(사진=제주투데이 DB)

안녕하세요.

저는 제주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공부 중인 최혜영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번 4월 3일 오전에 남원읍 의귀리에 있는 송령이골(속냉이골)에 다녀왔습니다. 언젠가부터 매월 4월 3일이 되면 약속한 것처럼 그곳에 모여 제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곳은 1949년 1월 의귀국민학교에서 2중대에 의해 사망한 무장대 시신이 집단 매장된 곳입니다.

이 일로 군인 4명도 함께 사망했지만 그들은 현재 남원읍 충혼묘지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군인들이 죽었다며 보복의 의미로 의귀리 주민들 60여명 또한 보복살해 당한 것으로 알려졌죠. 그들은 현재 현의합장묘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무장대 시신만 의귀국민학교에 오랫동안 있다 토벌대의 지시로 이곳에 묻혔습니다. 이같은 일들이 알려지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송령이골에 가면 들쭉날쭉하게 세 개의 묘지가 있습니다. 무장대의 묘이기 때문일까요. 어떤 유가족도 아직 유골을 찾지 않고 또 의귀리 주민들은 그 일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들의 죽음에 크고 작음이 없다지만 같은 사건으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위치로 존재를 가늠해 봅니다.

73번째 제주4·3을 지나며 또 최근 4·3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온전한 봄이 오기를 바란다’는 말과 ‘우리가 또 다시 해냈다’는 목소리 뒤에 작게 들리는 목소리들을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2021년 2월 26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습니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4·3희생자에 대한 위자료 지급, 추가 진상조사, 불법 군사재판 및 일반재판 수형 피해자에 대한 특별재심, 4·3피해자 트라우마 치유 등 진상규명과 피해 회복 관련 조항이 신설 되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보상 조항에 ‘배상’이라는 표현 대신 ‘위자료’라는 표현으로 명문화됐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큽니다. 그 이야기는 뒤에서 가서 더 해보겠습니다.

특별법이 개정되면서 관련 내용들이 빠르게 시행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최근 4·3 행방불명 수형희생자 333명과 일반재판 2명에 대한 재심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4·3 피해자 배·보상 문제가 끝나면 4·3에 관련한 많은 논의들이 함께 빠르게 끝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진실 규명 없는 금전적 보상책과 피해자의 참여권과 처벌권을 존중하지 않는 과거청산이 어떠한 연쇄적인 사회 병리로 이어질 수 있는지 광주보상법을 통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2003년 채택된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서는 ‘제주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졌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보고서에서 ‘인정한’ 희생자는 ‘무고한 양민’, ‘죄 없이 죽어가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양민’으로 한정되고 축소되어 표현되어 있습니다. 배제된 희생자에 대해 여전히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2021년 현재 4·3특별법 개정 이후 여전히 정명의 문제, 3만으로 표현되는 4·3 학살에 대한 국제적인 책임 문제, 4·3 교육 등 세대전승의 문제, 희생자를 규정짓는 문제 등 여전한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2021년 개정된 4·3특별법 제2장 12항에 ‘추가 진상조사’ 조항이 있습니다만 이는 진상조사보고서 ‘수정’이 아닌 ‘추가’로 여전히 ‘무고한’ 사람들 뒤에 양적으로 추가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희생자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사람들과 방치된 무덤들이 아른거리는 이유입니다.

위자료라 써놓고 국가의 배·보상으로 읽지 말 것

4·3특별법 개정안에서는 '배·보상' 문제가 '위자료 등의 특별한 지원'으로 수정되어 개정되었습니다. 사전적 의미의 배상(賠償)은 '남의 권리를 침해한 사람이 그 손해를 물어 주는 일'을 뜻하고 보상(補償)은 '남에게 끼친 손해를 갚는다'는 의미입니다. 또 '법률 국가 또는 단체가 적법한 행위에 의해 국민이나 주민에게 가한 재산상의 손실을 갚아 주기 위해 제공하는 대상'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4.3과 관련해 배상과 보상을 묶을 수 있던 것은 국가가 이미 4.3진상보고서 발간을 통해 제주 4.3사건이 '국가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이었음을 정의 내렸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인정하고 제주도민과 4.3희생자 유족에 사과까지 한 국가의 행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위자료(慰藉料)의 사전적 의미는 '법률 불법 행위로 인해 생기는 손해 가운데 정신적 고통이나 피해에 대한 배상금'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단어에 포함된 위자(慰藉)란 '위로하고 도와줌'이라는 의미의 단어로 국가의 책임은 빠지고 시혜적인 행동으로 읽힙니다.

위자료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혹자는 이런 명명이 피해 금액을 줄이려는 의도가 아닌가 이야기 하지만 오히려 피해자만 주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하게 됩니다. 1990년 광주보상법이 호프만식 계산법에 의해 피해의 등급을 나누며,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게 하며, 피해자들에 대한 동정을 사라지게 해 5.18 관련 집단의 사회적 지지 기반을 훼손시켰다는 점(김명희, 『5·18 자살의 계보학』, 2020 : 103)에서 우려를 표할 수 있지만 그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현재 피해자당 8천만원의 위자료 지급, 총 1조 4천억원의 예산이 언급됩니다. 행방불명자와 사망자, 후유 장애인, 유가족 간에 차등이 발생합니다. 현재 4·3생존희생자 진료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해당 병원에서 진료비가 전액 지원 가능한데, 위자료 지급 이후 의료지원은 지속되는 지도 궁금합니다.

제주 가족 형태를 인지할 것

이번 개정안을 보다보면 보상의 대상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내온 사실상 양자들은 호적상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원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4·3희생자 및 유족복지 정책은 생활보조비, 생존자 의료비, 유족 진료비 및 며느리 진료비 등이 있는데 생존희생자 본인과 직계존비속을 대상으로 합니다. 직계가족만을 유족으로 한정하고 있어 위자료 지급 대상부터 또 누군가는 받고난 위자료 이후에도 복잡해질 가족 간의 갈등을 국가는 손 놓고 가족들에게 미룬 것은 아닌가 의심됩니다. 돈을 받는다는 것 자체에 대한 갈등의 시작도 살펴야 합니다.

또 4·3의 피해와 영향이 현재 20-30대 청년들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개인에게 지급될 위자료 명목의 예산을 제주도민들에게 확대하여 4·3특별법 개정안이 영향을 준다면 오히려 4·3의 문제가 ‘인정된’ 피해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오랜 시간 제주도민과 전 연령이 함께 영향 받아왔음을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제주도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제 부모는 제주 출신도 아닙니다. 홀로 이주하여 9년 넘게 제주에 살고 있는 제가 보기에도 이번 4·3 특별법 개정안을 보며 묻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특별법이 통과되고 난 이후 머지않아 제주에 닥칠 일들이 예상되기도 합니다. 완전한 봄을 골고루 맞이할 수 있을까요.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만 편지 줄이겠습니다.

김경훈 시인과 최혜영 '강정친구들; 사무국장.(사진=강정해군기지반대대책위 제공)
최혜영(오른쪽)(사진=제주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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