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특별법이 개정된 이후 4·3 이후의 과제에 대한 논의들이 시작되고 있다. 제주작가회의는 이번 <제주작가> 봄호(72호)에 지난 20년 동안의 4·3 특별법 체제를 반성하면서 향후 과제를 짚어보는 <'법-제도'에 감금된 4·3>을 특집으로 꾸몄다. 제주투데이는 저자와 제주작가회의의 동의를 얻어 특집 기사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 1회는 영화, 다큐멘터리 등에 드러난 기억의 문제를 연구하는 있는 소장 학자 허민석 연구자의 '제도화된 기억을 거부하는 4·3 다큐멘터리-임흥순의 작품을 중심으로'를 싣는다.(원래 제목은 동시대 4·3다큐멘터리 이미지와 아카이브의 정치-임흥순의 사례를 중심으로'이다. )

허민석 

1. ‘제주도 메이데이’의 신체(들)

1948년 미군정 소속 통신부대가 촬영한 기록영화 「제주도 메이데이」(May Day on Cheju-do)는 같은 해 5월 1일 발발한 오라리 방화사건 이후 제주도 현지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약 14분 길이의 이 짧은 필름에는 불타는 민가와 집 잃은 주민들의 표정, 마을로 진입하는 경찰대원과 희생자들의 시신, 섬을 시찰하는 미군 전투기와 미군정장관의 모습을 비롯해 대규모 토벌 작전이 본격화되기 직전 제주도의 여러 풍경이 담겨 있다. 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제주도 메이데이」는 본질적으로 방화사건의 책임이 무장대에게 있는 것처럼 사실관계를 왜곡함으로써, 소위 불순분자들에 대한 강경 진압의 필요성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파간다 영화였다. 4.3 초기의 현장을 기록한 자료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필름인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제주도 메이데이」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40년 후 다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쳤던 제민일보 4.3 취재반원들의 끈질긴 조사 덕분이었다.1)

새삼 「제주도 메이데이」의 사례를 언급하며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이 영화의 신뢰성을 다시 문제 삼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필름의 의뭉스러운 이면이 밝혀진 뒤에도, 제주 4.3을 기억함에 있어 여전히 「제주도 메이데이」 속 장면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러니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즉, 아직까지도 제주 4.3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인용되거나 재생산되는 이미지라는 의미에서 「제주도 메이데이」를 다시 살펴보는 일은 유효하다. 본래의 제작의도를 초과하여 무한히 복제되고 증식하는, 「제주도 메이데이」라는 필름의 ‘신체’야말로 동시대적인 증상을 나타낸다. 실제로 그간 제작된 4.3 다큐멘터리들이 많은 경우 「제주도 메이데이」의 일부를 잘라서 인용한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제작자들이 해당 자료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고려하지 않았다거나, 그것을 탈맥락화하여 사용한다는 점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탈맥락화 및 재맥락화의 과정은 동시대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존재론적 조건으로서, 그 자체로 비난받을 만한 요소라고 하기는 어렵다.2)

다만 더욱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제주도 메이데이」라는 원본의 신체에서 잘려 나온 이미지들이 어떠한 신체(아카이브)들을 새롭게 구성하고 있는지이다. 일례로 2018년 제주 4.3 70주년을 기념하여 방영된 KBS 제주 다큐멘터리 「그날」에서 「제주도 메이데이」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은 매우 징후적이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이 수많은 희생자를 야기하였음을 환기하는 가운데 인용되는 「제주도 메이데이」의 이미지들은 사실상 구체적인 사건의 내용을 지시하거나 설명하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이러한 필름이 실재한다는 점만을 가리키는 듯하며, 과거에 정말 중요하고 비극적인 무언가가 일어났음을 상기시키는 수준에서 다소 불투명하고 무맥락적으로 제시된다([사진1]). 제주4.3평화기념관의 상설전시관에서 「제주도 메이데이」의 이미지들이 제시되는 방식 또한 비슷한 의미에서 흥미롭다. 여기서 「제주도 메이데이」는 먼저 미군정이 사건을 조작하려는 목적에서 만든 선전 영화임이 설명되고, 이후 4.3 당시 무장대에 의해서도 적지 않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였음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일부의 이미지들이 다시 한 번 인용된다.3)

'그날'(2018)에서 '제주도 메이데이'의 이미지가 삽입된 장면
'그날'(2018)에서 '제주도 메이데이'의 이미지가 삽입된 장면

위 사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의 4.3 아카이브는 「제주도 메이데이」가 지시하는 사건의 내용이나 전후 맥락보다는, 사건 당시 발생한 무고한 희생과 죽음의 사실성을 담보하는 다큐멘터리로서 그것의 물질성을 빌려온다. 「제주도 메이데이」가 이처럼 탈/재맥락화되는 양상은 동시대 4.3 기억 담론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암시한다. 쏟아져 나오는 제주 4.3에 관한 다큐멘터리 이미지들은 분명 어떤 정보를 전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포인트는 그런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반복·재생산되어 우리 눈앞에 출현한다는 그 사실 자체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수히 반복 인용되는 이미지들은 우리에게 4.3을 기억하라고 말하며, 동시에 기억해야 함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이토록 4.3 다큐멘터리 이미지들이 증식하는 현상은 동시대 기억 담론의 특정한 경향에, 기억의 대상보다 기억이라는 의식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는 듯한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장에 조응한다. 「제주도 메이데이」의 파편화된 신체들은 ‘기억하고, 기억하라’는 시대의 명령 앞에서 기꺼이 공식적인 4.3 아카이브 속에 편입된다.

2.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의 조건

4.3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증식이 기억이라는 행위 자체에 더 몰두하는 듯한 동시대 기억 담론의 증상을 보여준다면, 이것은 어떤 맥락 위에서 발생하는가를 또한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의 범람은 과거사를 비롯하여 범사회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기억’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잘 드러낸다. 하지만 평화학자 정희진은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언설은 “고통 외부의 시각”에서 발화되는 것으로서, 은연중에 “일상이 고통인 이들(당사자들-인용자 주)”을 배제하기 때문에 문제적임을 지적한 바 있다.4) “기억이라는 의식은, 대체로 오직 기억된 행위에 대한 즉각적 책임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든다는 설명5)은 비슷한 문맥에서 기억 담론이 내포하는 한계가 무엇인지를 시사해준다. 요컨대, 잊지 말 것을 금과옥조로 삼는 과거사 인식의 함정은 본질적으로 기억이라는 행위가 기억의 주체와 대상, 제삼자(‘우리’)와 당사자(‘그들’) 사이의 분할을 전제하고 (재)도입하며, 양자의 분리를 고착시킬 수 있다는 점에 자리한다.

물론 억울한 희생과 죽음을 기억하려는 시민들의 의지가 없었다면 제주 4‧3을 지금과 같은 정도로 공론화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희생(자)을 기억해야 한다는 당위에 계속 머무른다면, 김동현의 지적처럼 우리는 “표백된 역사만을 기리게 될 것”6)이다. 이러한 문제의 씨앗은 노무현 정부의 출범 이후 국가 차원에서 4.3에 대한 기억 담론이 제도화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다.7) “4.3의 해결은 결코 정치와 이념의 문제가 아”8)니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암시하듯, 한국 정부는 제주 4.3의 본질이 정치와는 무관한 ‘무고한 희생’에 있음을 공인하고, 4.3의 역사를 사죄와 반성, 화해와 상생으로 이어지는 국가 정상화의 서사에 포섭하고자 노력해왔다. 그에 따라 공식적인 4.3 아카이브는 대체로 희생(자)의 기억과 장면을 수집하는 저장고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며, 4.3 다큐멘터리의 대부분은 희생자들의 증언과 이미지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제작된다. 제도화된 기억 담론은 이러한 다큐멘터리들이 (재)생산될 수 있는 콘텍스트를 제공하는 한편, 폭력의 기억을 흐릿하게 환기하는 다큐멘터리 이미지들은 공적인 4.3 기억 담론에 역사적 사실로서의 아우라를 부여한다.

아카이브가 “그 아카이브의 진술에 진실로서의 권위를 부여하는 특정한 진실 정치”9)를 따라 구축된다고 할 때, 한국 사회의 제도적인 4.3 아카이브는 이처럼 제주 4.3의 진실을 희생의 역사라는 추상적 이미지 안에 소급시키는 논리를 따라 구성된다. 다시 상기하자면,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아카이빙의 주체, 혹은 억울하게 희생당한 당신을 잊지 않겠다고 말하는 ‘우리’라는 정체성의 표지가 분명 누군가를 배제하는 과정 위에서 성립한다는 사실에 있다. 4.3 다큐멘터리의 젠더 이미지를 고찰한 권귀숙은 특히 “실제 여부와 상관없이 여성이 주로 피해자로 기호화”되어 있고, 이러한 영상 속에 “재현된 여성성은 페미니즘에서 발달되어 온 형태가 아니라 근대국가 형성에서 강화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의해 빚어진 것”임을 지적하면서,10) 제주 4.3을 무고한 희생의 역사로 기억하는 아카이빙 작업이 기실 국민국가적·가부장제적 시점에서 이루어져 온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이렇게 과거사를 다루는 기록물에서 자주 등장하는 ‘여성-희생자’라는 재현의 관습이 문제적인 이유는 그것의 반대 항에 위치하는 ‘남성-국민’이라는 정체성을 이른바 정상적인 것으로서 부지불식간에 자연화하기 때문이다.11)

희생자 표상에 의존하는 기억 담론, 그 이후의 정치적 미학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 존재한다. 거듭 당신들의 억울한 희생과 죽음을 잊지 않겠다고 말할 때, 그러한 기억의 주체인 국가 혹은 국민은 제주 4.3을 경험한 당사자들을 희생자라는 단일한 정체성에 정박시키고, 실은 ‘그들’의 증언과 이미지를 정상화된 ‘우리’의 얼굴을 비춰보기 위한 거울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 눈앞에 끊임없이 반복 출현하는 다큐멘터리 이미지들과 눈에 띄게 거대해진 4.3 아카이브의 현재는 기억 주체로서의 국민국가, 혹은 국민이라는 정상성의 범주를 계속해서 재확인하고자 하는 한국 사회의 강박증적 태도로부터 비롯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왜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지 않으려 하(였)는가를 문제 삼는 단계에서 나아가, 당사자들의 말과 이미지를 당사자가 아닌 다수자의 위치와 시선에서 ‘수취’하지 않는 형태의 아카이브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3. 아카이브로서의 한라산-임흥순의 경우

대안적인 아카이빙의 방법을 고안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미술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임흥순의 제주 4.3을 다룬 다큐멘터리들은 몇 가지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중에서도 첫 장편 다큐멘터리인 「비념」(2012)은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작가의 방법론이나 다큐멘터리 이미지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이 영화는 4.3 당시 학살이 발생한 장소의 동시대적 풍경을 담는 한편, 피해자들의 증언을 그 위에 함께 포개어놓는 방식으로 제주도 전역을 탐사하는 작품이다. 달리 말해서 「비념」은 영화의 시간 축을 따라서 희생자들의 기억을 수집함과 동시에, 한라산을 포함한 제주도 전체를 하나의 아카이브로서 공간화하는 방식의 작업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영화에서 제주도라는 아카이브적 공간이 결코 닫힌 전체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비념」이 수행하는 아카이빙의 주안점은 기념관이나 박물관처럼 공인된 ‘사실’로서의 역사를 제시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카메라는 겉으로는 학살의 기억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제주도의 비경을 비추며, 불변하는 역사적 사실을 제시하는 일은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능력 밖이라고 말하는 듯이 보인다.12)

 「비념」에서 「제주도 메이데이」의 이미지가 사용되는 방식 역시 비슷한 의미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내포한다. 영화에서 「제주도 메이데이」는 현재 제주국제공항이 자리한 곳에서 249명에 달하는 민간인 수용자들이 희생됐음을 설명하는 부분에 돌연 삽입된다. 그러나 여기서 「제주도 메이데이」는 앞서 지적한 사례들에서와는 달리, 단순히 무고한 희생과 죽음의 역사적 사실성을 보증하는 자료로 활용되지는 않는다. 작가는 「제주도 메이데이」라는 다큐멘터리 이미지가 과거의 장면을 있는 그대로 되풀이(replay)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도리어 「제주도 메이데이」를 되감아(rewind) 버린다. 실제로 「제주도 메이데이」가 삽입된 부분의 마지막에서 마을로 진입하는 경찰대원과 민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전부 거꾸로 재생된다([사진2]). 이 되감기 장면은 과거의 실제 상황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라는 관객의 믿음을 일시 정지시키고, 이러한 목격을 매개하는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매체성(mediacy)을 환기한다. 이처럼 임흥순의 아카이빙은 역설적으로 다큐멘터리 이미지가 과거의 사실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 위에서 이루어진다.

'비념'(2012)에서 '제주도 메이데이'를 되감기하여 보여주는 장면
'비념'(2012)에서 '제주도 메이데이'를 되감기하여 보여주는 장면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8)의 경우, 「비념」이 수행하는 아카이빙을 더욱 확장시킨 사례에 해당한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정정화(1900-1991), 4.3 때 한라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한 김동일(1932-2017), 한국전쟁 중 지리산에서 빨치산이 된 고계연(1932-2017), 이 세 여성 투쟁가의 삶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도 한라산이라는 공간은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비념」에서는 한라산이 “탈-이야기, 탈-역사”13)적인 ‘풍경’으로서 제시되었던 반면,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는 세 여성의 기억이 재연(reenact)되는 ‘배경’으로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산은 “여전히 과거의 희생 혹은 죽음이 충실하게 재현(represent)되는 장소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14)세 명의 실존인물을 대리하는 각각의 재연배우가 산에서 목격하는 것은 말 그대로 사건의 흔적에 불과하며, 죽음의 이미지는 오로지 꿈과 환상, 퍼포먼스 등 사실적 재현을 초과하는 재현의 과잉을 통해서만 제시되고 있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재연을 통해 구태여 정보를 전달하려 하지 않고, 다만 우리가 특정한 장소로부터 역사를 직관해낼 수 없다는 점을 계속해서 상기시킬 뿐이다.

임흥순 감독의 영화 '비념'의 포스터
임흥순 감독의 영화 '비념'의 포스터

우리가 역사를 직관할 수 없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역사를 기억한다고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재연의 공간 바깥을 비추는 영화의 후반부는 이러한 질문의 해답을 미술관과 광장 등 동시대 한국 사회의 풍경 속에서 찾아나간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작가의 동명의 전시 현장과 같은 해 박근혜 대통령의 복권을 외치며 광화문 광장에 운집했던 태극기 부대의 모습이 교차적으로 편집되어 있는 부분이다([사진3]). 동시적으로 존재하지만 매우 상이한 성격을 나타내는 두 공간에서 사람들은 모두 특정한 여성의 이미지를 바라보고 있으며, 여성의 이미지는 그들이 속한 장소의 역사성을 재구성하기 위한 자원으로 동원되고 있다. 임흥순의 전시가 ‘여성-희생자’가 아닌 ‘여성-빨치산’의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내셔널 히스토리에 대한 카운터 메모리를 구축하고자 시도한다면, 태극기 부대는 박근혜의 이미지를 스크린에 전시하며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이 ‘애국보수’라는 멘털리티에 있음을 강력히 주장한다.

참고

1) 양조훈, 「4‧28 평화 깬 오라리 방화범, 경찰관으로 변신하다」, 제이누리, 2015.5.4.

2) 히토 슈타이얼에 따르면, 다큐멘터리 이미지들은 탈맥락적인 스펙터클(‘앞면’)과 맥락화하는 주석(‘뒷면’)의 양면으로 구성되며, 언제나 이전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맥락 속에 배치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그는 “아카이브는 이미지가 상품으로 거래되고, 이미지 자체의 원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맥락 속에 편입되는 하나의 시장”이라고 설명한다. (히토 슈타이얼, 안규철 역,<진실의 색>, 워크룸 프레스, 2019, 63~64면.)

3)제주4.3평화재단,<제주4.3평화기념관 상설전시관 전시도록>, 도서출판 각, 2018의 130면, 200~201면을 살펴보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상설전시관 전시도록의 곳곳에서 「제주도 메이데이」의 이미지 일부가 활용되고 있음을 함께 발견할 수 있다.

4)정희진, 「정희진의 어떤 메모: 잊힐 것이다」, 한겨레, 2015.5.8.,

5)도린 매시, 박경환·이영민·이용균 역, <공간을 위하여>, 심산, 2016, 284면. 해당 부분은 원문에서 도린 매시(Doreen Massey)가 인용한 린 시걸(Lynne Segal)의 문장을 재인용한 것임을 밝힌다.

6)김동현, 「항쟁 그리고 개발-제주 4.3 문학의 현재성」, 제주투데이, 2018.4.27.

7)이와 관련해 몇몇 선행연구에서는 2003년 발표된 진상조사보고서를 기점으로 제주 4‧3이 ‘양민학살’이라는 관점에서 조명되기 시작했으며, 이 시기를 전후로 4.3에 관한 기억 담론이 점차 가해자(국가)와 피해자(주민)의 용서와 화해를 강조하고, 인권 및 평화 운동을 향해 나아가면서 점차 탈정치화되었다고 지적한다. 관련 연구사례로는 조명기·장세용, 「제주 4.3사건과 국가의 로컬기억 포섭 과정」, <역사와 세계> 제43집, 효원사학회, 2013; 김치완, 「4.3의 기억 주체와 방식에 대한 철학적 접근」, <인문학연구>제23집, 제주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7; 김동현, 「로컬리티의 발견과 내부식민지로서의 ‘제주’」, 국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3 등을 참조할 수 있다.

8)「제72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 추념사」, 대한민국 청와대 홈페이지, 2020.4.3.,

9)히토 슈타이얼, 앞의 책, 50면

10)권귀숙, 「4.3의 기억과 젠더 이미지: 4.3 영상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아시아여성연구> 제43집 2호,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원, 2004, 255면, 262면.

11)이와 관련해 들뢰즈의 아이디어를 참고하였다. 그는 <천개의 고원>에서 아이, 여성, 흑인 등 소수자의 “회상을 수취하는 ‘기억’은 어디까지나 다수성의 남성적 심급으로, 이들의 추억을 “유년기의 회상”, 결혼생활의 회상 또는 식민지 시절의 회상으로 다룬다”고 설명한다. (질 들뢰즈, 김재인 역, <천개의 고원>, 새물결, 2001, 554면.

12)이와 관련해 곽영빈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아름다운 비경과 대량 학살의 장소로 분기하는 천지연 폭포는 임흥순이 스스로 받아 안은, 혹은 발굴해낸 ‘감성학(aistheis)’의 관건, 즉 비경으로서의 풍경 그 자체에서, 이미지 그 자체로부터 ‘보는’ 것, 혹은 그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문제를 응축한다. 즉 이곳이 학살의 장소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아도, 자막 없이도 볼 수 있느냐고, 알아보지 않고 그냥 볼 수 있느냐고.” (곽영빈, 「페르/소나로서의 역사에 대한 반복강박-임흥순과 오디오-비주얼 이미지」, <한국예술연구> 제21호,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2018, 214면.)

13)유운성, 「무명(無名)의 역사-영화평론가 Y와 영상작가 P의 두 번째 대화」, <빨강, 파랑, 그리고 노랑>, 강수정 외 공저, 국립현대미술관·현실문화연구, 2018, 224면.

14)졸고, 「탈장소화되는 제주-4.3 다큐멘터리에서 재일제주인 여성의 재현을 중심으로」, <여성문학연구> 제51호, 한국여성문학학회, 2020, 332면.

15)김창후, <자유를 찾아서-김동일의 억새와 해바라기의 세월>, 선인, 2008, 172면.

<허민석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으로 한국현대문학 및 매체문화 연구자이다. 대표논문으로는 <탈장소화되는 제주-제주 4.3 다큐멘터리에서 재일제주인 여성의 재현을 중심으로>, <1980년대 텔레비주얼 쇼크와 공동체 감각의 변화-KBS이산가족찾기(1983)에 대한 재현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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