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로16길은 보행길이 따로 없어 시민들의 위험천만한 이동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오라로16길은 보행길이 따로 없어 시민들의 위험천만한 이동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2007년 '제주 올레' 생긴 이후 제주도는 걷고 싶은 지역으로 꼽히고 있지만 정작 시민들 생활권 내 보행환경 안전은 열악한 실정이다.

‘제주도 보행권 확보 및 보행환경 개선에 관한 조례’가 제정(2017)된 지 4년이 지났지만 도내 정책은 여전히 자동차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서다. 

국토교통부령인 ‘도로의 구조·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은 보도폭을 최소 2m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최근 삼양동 삼화지구 인근 도로는 환경개선 명목으로 보행로 유효폭을 2.5m에서 1.5m로 줄였다. 노형동이나 아라동 등 주택밀집 지역의 경우 보도폭이 1m가 채 안 되는 곳도 있었다. 

문제는 노면이 고르지 못하거나 좁은 보행로가 장애인이나 고령층 등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보행안전 및 편의 증진에 대한 법률'에 따라 전동보조기기는 보행자로 간주되지만 1m도 안되는 좁은 보행로의 경우 진입 자체가 어렵다. 

(사진=박소희 기자)
13일 어르신 두 분이 오라1동 경로당에서 종합운동경기장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데 차량 통행이 많아 한쪽으로 비켜서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보행은 지역 내 상품이나 서비스 각종 시설과 대중교통 수단 접근에 있어 가장 자유롭고 직접적인 수단이다. 따라서 모든 보행자가 얼마나 안전·쾌적·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느냐에 따라 도시의 인식 수준이 결정된다. 그러나 도내에는 보행로가 아예 없는 곳도 많았다. 

오라로16길은 보행길이 따로 없어 시민들의 위험천만한 보행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인근에는 제주시종합경기장과 오라1동 경로당이 있어 어르신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길이지만 양 방향으로 차가 진입하면 불법 주자된 차들 때문에 피할 곳도 없다.

밀려오는 차량을 피해 주차된 차들 틈에 서 있던 주민 A 씨(75)는 “차들 다니는 길은 늘어났는데, 사람 다니는 길은 어째 더 좁아진다”며 “종합경기장 공원에 기구가 많으니까 운동하러 자주 가는데, 늙은이 지나다닐 때마다 여간 아슬아슬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다른 주민 B 씨(72)는 "최근에 (오라로와 오라로16길이 만나는) 사거리에서 길 건너다가 차랑 부딪혀 사망하는 사고까지 있었다"며 "그나마 여기는 나은 편이다. 저는 신제주에서 왔는데, 골목은 좁은데 차는 많으니 상황이 여기보다 더 열악하다"고 토로했다.

최근 노형동 원랑로 인근 보도블록 파손으로 인해 가족이 낙상 사고를 당했다는 김 씨(64)는 "80세 고령에겐 노면의 작은 균열도 보행의 큰 장벽"이라며 "유니버설디자인을 실현한다고 하던데, 그럴라면 보행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세워야 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유니버설디자인이란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과 관계 없이 모든 사용자가 제약없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품·시설·서비스를 말한다.

14일 이도2동 한 주택단지 내에서 엄마와 아이가 보행로가 없어 차도로 걸어가고 있다. (사진=박소희)
14일 제주시내 한 주택단지 내에서 엄마와 아이가 보행로가 없어 차도로 걸어가고 있다. (사진=박소희)

보행은 어린이와 청소년, 교통약자,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통행방법이다. 더불어 모든 사람은 보행자기도 하다. 그럼에도 승용차 의존도가 높은 제주도는 자동차에 비해 보행 안전을 소홀히 취급해왔다. 제주도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도로 유지보수 예산은 280억 원이 넘는데 비해 보행 환경 관련 예산은 10억 원에 불과했다. 

자동차 중심으로 짜인 도로에서 사람의 지위는 교통사고 위험에 시달리는 약자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제주시 관계자는 보행권 확보가 중요하다면서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오라로16길 말고도 택지개발지구라든지 아라동 단지 등 도로폭이 좁아 위험이 상존하는 곳이 많다"며 "보행로를 확보하려면 도로를 확장하는 것이 최선인데 주택가 생활도로의 경우 토지보상 등 쉽지 않다"고 했다. 

도로확장이 아닌 기존 도로에서 보행로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은 없냐는 질문에는 "통행방법 변경(일방통행)으로 보행로를 확보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주민 70%가 동의해야 가능한데, 일방통행으로 도로를 변경하고 보행로를 확보하면 주차가 어려워진다. 그럼 주민들이 반대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애초 보행권을 염두하고 도시를 설계해야 하는데, 도로개설 이후 보행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며 "최근 도시계획은 보행로 확보를 많이 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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