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제주시 연동 농어업인회관 2층 대강당에서 열린 전국농민회총연맹제주도연맹 농민학교에서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이 강연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20일 제주시 연동 농어업인회관 2층 대강당에서 열린 전국농민회총연맹제주도연맹 농민학교에서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이 강연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식당에 가서 1만원짜리 육개장을 시켰어요. 그랬더니 1000원짜리 육개장 사발면이 나온 거예요. 음식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9000원을 손해봤다는 생각에 화가 나겠죠. 그런데 제주도민들이 매년 수천억원에 이르는 손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20일 오후 제주시 연동 농어업인회관 2층 대강당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이 농민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날은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이 제주도 예산 현황과 문제점, 개선방안 등을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지방정부 재정 ‘세입=세출’ 원칙

이 연구위원은 강연에 들어가며 지방정부의 재정 원칙이 세입과 세출이 같게 하는 ‘균형재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적자나 흑자가 나면 안 된다. 다시 말해 남는 돈도 모자라는 돈도 없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경기 조절을 해야 하는 중앙정부는 민간 경제가 과열돼 인플레이션이 우려될 경우 세금을 많이 거두고 지출을 줄이는 긴축재정 정책을 펼친다. 반면 경기가 침체될 땐 세금을 인하하고 지출을 늘려 통화량을 늘리는 확장 재정 정책을 실시한다. 이땐 소비를 하지 못하는 개인이나 기업 대신 국가가 빚을 져서 소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방정부의 경우 세입이 10조원이면 세출도 정확히 10조원에 맞춰야 한다. 올해 예산 계획상 제주도 수입은 약 5조8000억원이다. 이를 인구수로 나누면 도민 1인당 864만원이다. 이는 곧 제주도민 한 명이 올 한해 받아야 하는 행정서비스의 수준이다. 만약 4인 가구라면 올해 약 3500만원에 이르는 행정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제주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 (사진=제주도의회 제공)
제주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예산 심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주도의회 제공)

#예산-추경 편성은 조삼모사가 아니다 

“제가 꼭 사고 싶은 가전제품이 있어요. 가격이 300만원정도라서 지금 월급으론 사기 어려워요. 그런데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공돈이 200만원이 생겼다고 해봅시다. 어차피 이걸로는 그 제품을 못 사잖아요. 그래서 그 돈을 외식하는 데 써요. 그리고 몇 달 뒤에 100만원이 또 갑자기 생겼어요. 역시 못 사죠. 또 다른 데 그 돈을 탕진해요. 나중에 연말에 돈을 어떻게 썼나 봤을 때 실제로 300만원이라는 수입이 더 생겼는데도 제품을 못 사게 된 거예요.” 

제주도의 경우 매년 예산상 수입과 결산상 수입 차이가 크다. 예산은 다가오는 회계 연도의 수입과 지출을 ‘미리’ 계산하는 것이고 결산은 지나간 회계 연도의 수입과 지출을 마감해 계산한 것이다. 

지난 2019년 예산상 수입은 6조323억원이었으나 결산 자료에 따르면 수입은 6조2890억원이었다. 본예산을 편성할 때 예측했던 수입보다 2567억원을 더 벌어들였다. 일반 가정의 경우 예상보다 더 많은 돈을 벌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정에선 저축을 통해 예상치 못한 공돈을 모아 미래를 위해 쓸 수 있다. 하지만 지방정부는 다르다. 수입을 모두 써야 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본예산에서 편성하지 못한 사업은 추가경정 예산에서 편성하면 마찬가지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계획하지 못한 수입은 효율적으로 소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곧 제주도민들이 효율적으로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부정확한 예측으로 인해 도민들은 2500억원에 이르는 행정서비스를 적시에 받지 못해 그만큼 불편을 겪어야 한다. 

이 연구위원은 “본예산을 많이 잡고 추경을 적게 잡는 거나 반대로 본예산을 적게 잡고 추경을 많이 잡는 거나 뭐가 다르냐는 ‘조삼모사’ 논리를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전자가 당연히 좋다”며 “예산의 제약으로 필요한 사업을 못하게 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잘못된 재정 계획 때문에 못하게 된다면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일 제주시 연동 농어업인회관 2층 대강당에서 열린 전국농민회총연맹제주도연맹 농민학교에서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이 강연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제주도 순세계잉여금. (자료=이상민 수석 연구위원 제공)

#“순세계잉여금은 도민이 손해를 본 돈”

지방정부의 회계장부엔 ‘순세계잉여금’이란 항목이 있다. 순수하게 남은 금액이다. 앞서 설명했듯 지방정부는 수입 모두를 지출해야 하는 ‘균형재정’ 원칙이 있다. 벌어들인 수입을 모두 도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써야 한다. 그러므로 순세계잉여금은 해당 지방정부가 효율적으로 재정 운용을 하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는 척도 중 하나다. 

제주도의 경우 지난 2019년 순세계잉여금이 2869억원이었다. 이는 곧 제주도민들이 2019년도에 2869억원치의 서비스를 덜 받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제주도가 2869억원에 이르는 사업을 하지 않아 도민들이 그만큼 손해를 본 셈이다. 꼬박꼬박 세금을 내며 생활하는 도민들은 정당하게 받아야 할 서비스를 온전히 받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이 문제를 쉽게 체감하지 못한다. 

참고로 지난해 환경 분야에 편성된 도비 총액이 2434억원이다. 상하수도 관리, 폐기물 처리, 대기·해양 관련 환경 예산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2869억원이라는 순세계잉역금의 규모가 상당하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중앙정부는 순세계잉여금이 많은 지방자치단체에게 주는 교부세 금액을 깎는 등 페널티 제도까지 도입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지난 2018년 정부에서 내수를 부양하기 위해 부채를 써가면서까지 풀었던 돈이 3.5조원인데 같은 기간 지방자치단체의 순세계잉여금 규모가 35조원이었다”며 “아무것도 안 하고 어마어마한 돈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끔찍한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지난 20일 제주시 연동 농어업인회관 2층 대강당에서 열린 전국농민회총연맹제주도연맹 농민학교에서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이 강연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20일 제주시 연동 농어업인회관 2층 대강당에서 열린 전국농민회총연맹제주도연맹 농민학교에서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이 강연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기금’, 순세계잉여금 줄이는 ‘꼼수’돼선 안 돼

“정부가 순세계잉여금을 줄이라는 것은 행정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하라는 얘깁니다. 그런데 지방정부가 도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돈을 쓰는 게 아니라 기금이라는 또다른 저금통을 만들어 돈을 쌓아두는 경우가 있어요. 손쉽게 순세계잉여금을 줄이는 방법인 거죠.”

이 연구위원은 제주도 회계 항목에서 ‘기금’ 역시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금은 국가나 지방정부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적립하는 특정 자금을 뜻한다. 꼭 필요할 때 쓰기 위해 쌓아두려는 목적이지만 적립된 금액이 과도하게 높은 것은 문제가 된다. 

물론 재난관리·재해구호 기금의 경우 법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비율이 정해져 있다. 예상치 못한 재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이 같은 기금을 제외하고 제주도 기금 중엔 사용액과 비교해 적립금액이 불필요하게 많이 쌓인 항목이 다수 존재한다. 비효율적으로 관리되는 자산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복지기금은 지난 2019년 4억원을 사용했으나 적립된 금액은 15배가 넘는 62억원이다. 양성평등기금은 같은 기간 3억원을 지출했으나 적립된 금액은 20배가 넘는 70억원이다. 이 연구위원은 “20년 넘도록 사용할 수 있는 돈을 그대로 쌓아두면 양성평등이 이뤄지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며 “차라리 일반회계로 옮겨 실질적으로 양성평등을 위한 사업에 써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앙정부에선 기금 적립금이 사용액의 두 배만 넘어도 국정감사 때 난리가 난다”며 “상당한 금액을 쓰지 않고 그대로 쌓아둔다는 건 매우 비효율적이며 행정이 제대로 일을 안 한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조례 제개정을 통해서라도 기금 적립배율(적립금을 지출액으로 나눈 수치)을 제한해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8일 오후 제주도청 앞에서 제주지역 농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등 식량주권을 실현하는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해 10월 일 오후 제주도청 앞에서 제주지역 농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등 식량주권을 실현하는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농업 예산, 구조조정이 필수”

이 연구위원은 농업 분야 보조금 사업이 농민들의 직접적인 소득 증가에 이어지지 않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농업 생산성을 향상하는 사업 예산을 늘리면 농민 소득은 줄어드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 그 이유는 보조금 정책이 농업을 왜곡하는 부작용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농가들이 어떤 작물을 심을지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요. 만약 정부에서 고추 농가에 보조금을 주겠다고 하면 그 해엔 다들 고추만 심겠죠. 그러면 고추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고추 가격이 오히려 폭락하고 농민소득이 감소하게 되는 거죠. 보조금은 보조금대로 쓰면서 농민소득은 감소하는 사업이 너무 많습니다.”

이 연구위원은 작물별로 나눠진 보조금 정책을 통폐합해서 농민의 소득을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특정 작물의 생산성 향상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농민이 스스로 기술을 개발하고 향상시키도록 소득 자체를 직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일시적으로 농민수당을 주는 정책은 지속을 가지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위원은 “다른 분야 예산을 줄여 농민 예산을 늘여달라고 하면 정당성과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그보다는 지금 나가는 농업 관련 보조금 사업을 구조조정해서 덜 필요한 사업을 줄이고 농민수당으로 전환하자고 농민 스스로가 결의하는 과정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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