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진/ 영화사 해그림(주) 대표 프로듀서

어릴 때도 그렇고 자라서도 그렇지만, 제주도에 대한 기억은 늘 이국적이라는 느낌이다. 공항에서 보이는 야자수. 야자수가 있는 공항과 멀리서 보이는 한라산. 대학시절 처음 가본 제주도는 나에게 무척 이국적이었다. 이후에도 몇 번 기회가 있어 가 본 제주도는 갈 때마다 또 다른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이번에 가는 곳은 거기서 배로 한 시간 남짓 가야하는 추자도라고 한다. 들어는 봤지만, 나와는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섬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혼란스럽고 기대가 되면서도 불안한 복잡한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추자도로 가는 여정은 출발부터 만만치 않았다. 첫 비행기를 타기위해 새벽에 일어나서 김포공항에 들어서자, 수많은 인파는 순간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코로나 시국이라는 이 시기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떠나기 위해 한 곳에 모이는구나. 묘하다면 묘한 감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어디를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건 얼마만인가? 비행기를 타기 위한 절차는 설렘을 줬다. 이륙하고 얼마 있다가 바로 내려야 하는 짧은 시간을 뒤로 하고 공항을 나서서 제주항 여객선터미널로 향했다. 낚시를 가든 그냥 관광을 가든 아니면 뭍에서의 일을 마치고 뭔가를 싸들고 섬에 돌아가는 주민이든 내 눈에는 바다를 지나 미지의 어떤 곳을 간다는 기대감이 맴돈다고 느꼈다.

만만치 않은 파도의 너울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한 시간 남짓한 쾌속선을 타고 상추자도에 입항을 했다. 그리고 기다리고 계시던 민병훈 감독님과 이번의 추 후 프로젝트를 주도한 문화조형연구센터의 하석홍 화가를 만나서 바로 하추자도 신양항에 있는 후풍갤러리에 갔다.

오기 전부터 궁금했던, 방치됐던 어류 가공공장에 어떻게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은 외관을 보는 순간 감탄으로 변했다. 각각의 색깔을 대비해 기하학적으로 배치한 건물은 말 그대로 갤러리였다. 주변의 항구, 조성된 공원, 다른 어촌의 풍경까지 이질적이라기보다는 무척 어울리고 세련되게 보였다. 갤러리에는 볼수록展의 다른 축인 김남표 작가가 있었고, 나는 이 세분들의 작품을 천천히 감상할 기회를 갖게 됐다. 돌을 주제로 한 설치미술이 평면의 그림과 결합된 형태의 <추자몽>은 벽면에 걸려 있으면서 그 자체의 입체감으로 여기가 추자도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았고, 갤러리에 들어서면 바로 있는 하석홍 화가의 <夢돌>은 서있는 그 모습 그대로 생동감을 전해 주면서 돌을 걸치고 보이는 김남표 화가의 백호의 모습을 더욱 생동감 있게 해줬다. 각각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서로의 조화로 보이는 배치된 작품들은 갤러리 내에 있는 그 모습 그대로도 하나의 작품이었다. 다른 쪽에 있는 실내공간에는 민병훈 감독이 추자도의 곳곳을 촬영하고 그 생동감을 미학적으로 보여주는 영상이 벽면에 각각의 주제를 담는 이름으로 상영되고 있었다. 영상이지만, 우리가 무심히 넘겨보던 풍경을 민병훈 감독은 좀 더 세밀하고 집요하게 보여주면서 예술적이고 회화적인 이미지를 재현해 낸다. 우리가 불을 보고 멍해지고 노을을 보고 바다를 보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연에 압도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마음을 민병훈 감독은 자신의 해석으로 영상을 만들어 냈다. 여기에 추자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으로 가려지고 조명이 없어서 어두운 공간이라기보다는, 깊은 공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자리에서 자연의 소리와 함께 그 영상들을 보고 있으면 스스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육지와 거리가 있는 제주도. 그 제주도에서 다시 뱃길로 달려와서 추자도라는 낯선 이름의 이 섬에서 나 같이 뭍에만 있던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온 보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후풍 갤러리만이 아니라, 후포갤러리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함께 보는 작품들의 느낌도 신선하고, 그 사이에서 보는 바다의 풍경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섬이면서도 산이 많아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추자도의 올레길과 바닷가에서 보여지는 기암절벽의 모습들은 이 섬이 다른 계절에는 어떤 변신을 할까 하는 궁금증을 들게도 했다. 가을 추자도의 매력을 흠뻑 느끼기에는 아쉬운 일정이었지만, 다음에 꼭 다시 와서 또 다른 추자도의 매력을 느끼겠다고 결심을 하기에는 충분한 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추자도의 매력을 한층 심화시켜준 후풍갤러리와 후포 갤러리의 볼수록展의 전시회는 놓치기에는 너무 이쉬운 전시회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