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지(사진=서군택)
혼인지(사진=서군택)

탐라국 창조자인 삼성(三姓)인 고을라, 양을라, 부을라가 솟아난 모흥혈(毛興穴) 현 삼성혈이 제주시 이도1동에 있다. 三神人이 태어나 한라산을 중심으로 수렵과 어로생활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나라를 정하지도 못하고, 배필을 만나지도 못하여 한탄하는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찬바람 다 거두고 봄바람 살랑살랑 부는 봄 어느 날, 3신인은 사냥을 하기 위하여 한라산을 올랐다. 꿩과 토끼 몇 마리 잡고는 백록담 언저리에 앉아 동해를 보고 있는데 바다위에 영롱하게 반짝반짝 거리는 이상한 물체를 3신인이 동시에 본 것이다.

​이상하다 생각하여 얼른 한라산을 내려서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물체 있는 곳(성산읍 온평리 쾌성개라는 바닷가인데 후일 황루알 바닷가가 됨)에 다다르니 옥함 3개가 바닷물에 둥실둥실 떠올라 오는 것이 아닌가. 거 참 이상도 하다 생각하며 가장 먼저 올라온 옥함을 고을라가 두 번째 올라 온 옥함을 양을라가 마지막 옥함을 부을라가 바위로 올렸다.

​삼신인은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알 모양으로 된 둥근 옥함(玉函)이 있고 관대(冠帶)를 하고 자의(紫衣)를 입은 사자(使者)가 있었다. 사자가 나와 작은 옥함을 열었는데, 그 안에는 푸른 옷을 입은 15∼16세 가량의 3공주와 우마(牛馬) 및 오곡(五穀)의 종자가 있었다. 지금도 쾌성개 바닷가 바위에는 공주가 내릴 때 찍혔다는 발자국이 남아 있다.

​사자가 3신인에게 말하기를, “나는 동해 벽랑국(碧浪國)의 사자요. 우리 임금께서 이 세 분 공주를 두셨는데, 혼기가 차도록 배필을 구하지 못해 안타깝게 여기고 계셨소. 그러던 중 서해 높은 산에 3신인이 있어 장차 나라를 세우고자 하나 마땅한 배필이 없다는 걸 아시고, 신(臣)에게 명하여 3공주를 모시고 오게 하였으니, 마땅히 배필로 삼아 대업을 이루소서.” 하고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사라져버렸다.

​3신인은 나이순에 따라 3공주를 각각 배필로 정하고, 너른(500여 평)암반위에 깨끗하게 고여 있는 물(현 婚姻池)로 목욕을 하고 혼례를 올렸다. 배필도 맞았으니 신방을 차려야 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 곁에 보니 동굴이 보였다. 동굴로 내려가니 방이 3개가 있어 첫날밤을 보내고(新房窟) 살 곳을 정하는데 고을라가 활시위를 하여 1도리, 양을라가 2도리, 부을라가 3도리라 정하였다. 그 때 활에 맞은 돌멩이는 현제 화북동에 삼사석비라고 하여 잘 관리되고 있다.

(사진=서군택)
신방굴(사진=서군택)

3신인은 그 함 속에서 나온 송아지·망아지를 기르고 오곡의 씨앗을 뿌려 태평한 생활을 누렸다. 이로부터 탐라국에 농경과 목축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고·양·부 삼신인과 벽랑국의 세 공주는 신방굴에서 첫날밤을 보냈다고... 동굴 입구에 들어서면 세 방향으로 가지굴이 나뉘어져 있는데, 이 3개의 굴에 삼신인이 각각 신혼방을 꾸몄다.

온평리는 고을라·양을라·부을라 삼신인이 벽랑국 3공주를 해안가 연혼포에서 맞아들여 혼인지에서 합동으로 결혼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스토리텔링으로 전해지는 마을이다.

연혼포(사진=서군택)
연혼포(사진=서군택)

​수렵생활을 하던 세력이 바다 너머에서 가축과 오곡의 씨앗을 가지고 들어온 농경세력과 갈등이나 전쟁이 아니라 평화롭게 결합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갔다는 것. 그 아름다운 만남의 장소가 온평리다.

마을 명칭은 열운이, 열온이, 열혼포 등 다양하게 불리어왔다. 해안선의 길이가 무려 6㎞로 제주도 해안마을 중에서 가장 길다고 한다. 취락은 일주도로변에서부터 바닷가를 따라 약 3㎞ 정도 길게 형성되어 있으며, 환해장성의 일부가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환해장성(사진=서군택)
온평리 환해장성(사진=서군택)
온평리 가옥들(사진=서군택)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온평리 가옥들(사진=서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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